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목수 Jul 29. 2019

자카르타에서 가난하다는 것

인도네시아 친구는 말했다. '여긴 사람 목숨 값이 너무 싸'


 인도네시아에서 4년째 NGO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지켜본 인도네시아는 한국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문화적으로 다른 것은 기본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의 차이가 유난히 내 주의를 끌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많은 제도와 규칙이 이 곳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자카르타는 식수부터 시작해서, 교육, 의료, 교통, 치안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하다. 


 자카르타에서는 수돗물을 마실 수가 없다. 상수도 수질이 형편없고, 보급률도 아주 낮다. 건물마다 자체적으로 지하수를 퍼올려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하수 오염에 대한 관리가 안 되어 이도 저도 마실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건기에는 지하수가 말라 수돗물이 안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카르타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생수를 사다가 밥을 짓고 국을 끓인다. 안 그래도 가난한데 집집마다 물 값으로만 하루에 몇 천 원씩 나간다. 식당에 가면 음식 주문과 음료 주문을 같이 받는다. 나 같은 한국 사람이 음식만 시키고 물을 안 시키면 식당 직원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음식점에서 나시고랭을 시키면 2,000원 정도 한다. 거기에 음료수라도 한 잔 추가로 시키면 1,000원 정도 더 붙는다. 밥과 음료를 합치면 3,000원쯤 되는 셈인데, 현지인들에게 한 끼 밥 값으로 2,000원과  3,000원의 차이는 크다.(아주 저렴한 길거리 식당 중에는 한 끼에 1,000원 정도 하는 곳도 많다) 자카르타 노동자는 월평균 급여는 약 30만 원, 즉 하루에 1만 원 정도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에 비해 체감 물가에 훨씬 민감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병원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아서 죽는 사람이 많다. 한 번은 현지 친구의 삼촌이 아파서 급하게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방금 퇴근했다며 진료를 해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의사가 출근했을 때 삼촌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단다. 현지 친구들은 이와 비슷한 사연을 다들 가지고 있다. 이들 주변에는 병원비가 없어서 간단한 병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이 꼭 한 두 명씩 있다. 의사가 환자를 눈 앞에 있는데 병원비를 결제하지 않아서 환자가 죽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단다. 인도네시아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하지 않은 걸까? 병든 사람을 먼저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은 정녕 안 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설마 인도네시아의 모든 의사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 


 인도네시아에서 돈은 이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민감한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돈에 민감하다. 단지 민감한 돈의 크기가 다를 뿐. 인도네시아 목수의 하루 일당은 1만 원 정도고, 한국 목수는 하루 일당이 18만 원이다. 그만큼 민감성의 정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초록색 점퍼를 입은 고젝 기사들 | 출처 - Kompas Indonesia

자카르타에는 500원 1,000원에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거리에 가득하다. 고젝(Go-jek)이라고 하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은 음식 배달부터 퀵서비스, 택배 배달까지 오토바이로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한다. 고젝 기사가 피자를 주문을 받으면 피자 가게에 가서 메뉴를 주문하고 피자가 다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픽업해서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그렇게 해서 받는 비용은 대게 1,000원 안팎이다. 이렇게 작은 돈을 벌기 위해 고젝 기사들은 위험한 자카르타의 도로 위에서 하루 종일 달리고 또 달린다. 



 자카르타의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킨 아수라장이다. 자카르타의 교통 체증은 오토바이만 가득한 베트남의 모습과 다르고, 자동차만 가득한 로스앤젤레스와도 다르다. 자카르타의 도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반반씩 뒤엉켜 있다. 이러한 도로 풍경은 이 곳의 경제 상황을 여실 없이 보여준다. 오토바이 수만큼 가난한 사람이 많고, 고급 자동차 수만큼이나 부자도 많다는 뜻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차와 차 사이로 오토바이가 기를 쓰고 파고들기 때문에 자동차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도로 위에서 조그만 틈만 보이면 서로 득달같이 끼어드는데, 끼어들기의 수준이 한국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인도네시아 운전면허도 있고 자가운전도 한다. 자카르타에서 드라이빙은 매 순간이 교통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이고, 오토바이를 피해 다녀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자카르타에서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 나는 1,000원을 벌기 위해 달리는 고젝 기사와 길 위에서 기싸움을 벌였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그것은 나에게는 전혀 승산 없는 싸움임을. 1,000원을 벌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들과 내가 무슨 용으로 싸우겠는가? 자카르타 도로 위에서 나는 마음을 비운다.


고가 도로에서 바라본 자카르타의 마천루


 자카르타에 처음 와서 언뜻 보면 전혀 가난한 나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심에 마천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있고 멋진 자동차가 거리에 즐비하다. 인도네시아 부자들에게는 하루 몇 천 원씩 사 먹는 물 값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부자들은 비싼 병원비를 내고 얼마든지 병을 고칠 수 있다. 부자들은 매연 가득한 꽉 막힌 도로에서도 에어컨 빵빵한 안전한 자동차에 편히 앉아 쉴 수 있다. 자카르타의 부자들은 자녀들을 1년 학비가 수천만 원씩 하는 사립 중. 고등학교에 보낸다. 인도네시아의 공교육과 사교육은 비용 면에서나 질적 측면에서 비교 대상이 안 될 정도로 편차가 크다.


 문제는 이 엄청난 빈부의 간극이 좁혀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 인도네시아의 현실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막연한 희망을 갖거나 무리한 꿈을 꾸지 않는다. 깊은 가난은 사람들을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한다. 깨끗한 물 조차 공급되지 않는데 국민들이 국가에 무엇을 얼마나 바랄 수 있겠는가? 신분 상승의 사다리? 기회의 평등? 그와 비슷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거리도 안 된다. 당장 눈 앞의 밥 한 끼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육중한 가난이 어스름처럼 사회를 소리 없이 억누르고 있다. 


 사람에게 꿈과 희망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되지 않고, 사회적 인프라가 없으면 꿈과 희망은 싹조차 틔우지 못한다. 인간에게 가장 불행한 삶은 희망이 없는 삶이 아닐까? 가난 그 자체보다는 그 가난을 당연하게 짊어지고 평생을 희망도 없이 그저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시스템이 내 눈에는 감옥처럼 보인다. 희망을 가질 수만 있다면 힘겨운 세상도 그나마 버틸만할 텐데......


 한 인도네시아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긴 사람 목숨 값이 너무 싸다'고. 


 가난한 사람은 목숨 값 조차 싸게 매겨지는 불편한 자카르타의 현실


 친구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뇌리에 박혀 잊을만하면 떠오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삶이 꿈인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