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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Aug 18. 2019

인도네시아 현지 목공 강사 채용기

목공반을 잘 부탁해. 리코와 젠다


 학생이 점점 늘어나면서 수업 시간에 안전을 비롯하여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다. 교육은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주 5일 수업으로 진행된다. 전공을 새로 만들어 이제 막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니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잘해야 할 텐데 모든 것을 혼자 도맡아서 하려니 점점 힘이 부쳤다. 기계와 연장 관리부터 학생 관리와 수업 준비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아 과부하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일반 중. 고등학교 교사도 이렇게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또 하지는 않을 텐데, 나는 어쩌다 인도네시아까지 와서 매일같이 기계처럼 수업을 해나가고 있다.


 NGO 현지 직원에게 가구 제작을 함께 가르칠 현지 강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두어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적절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단다. 인도네시아에서 목공 강사 찾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한국에서는 목수 카페에 구인 글을 올리면 하루에도 수십 통의 이력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달리 '네이버 카페'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가 발달해있지 않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정보는 그냥 구글에서 찾는 듯했다. 꼭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 없이 대충 찾아보고는 못 찾았다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부탁한 입장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NGO 활동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긴장감 없이 일을 해서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일처리가 일반 사기업처럼 빠릿빠릿하지 못한데,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눈을 부라리며 직원들을 재촉하는 사장이 없어서 편하기는 한데, 뭐랄까... 업무 효율성 측면에 있어서는 글쎄다. NGO라고 너무 늘어져서 일하는거 아니야? 뭐, 그런다고 월급을 내가 주는 것도 아니고, 나도 같은 활동가 입장이라서 다른 활동가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형편도 못 된다. 나 스스로도 가끔씩 나태해지곤 하는데, 그럴 때면 마음을 다잡고 파이팅하는 것도 셀프로 해야 한다. NGO 활동가는 당근과 채찍도 셀프다.


 현지 목공 강사를 수소문한 지 몇 달이 지나 드디어 지원자가 있다고 해서 곧 면접을 봤다. 그런데 이게 왠 일? 한꺼번에 면접을 보러 예닐곱 명이나 몰려왔다. 자카르타에 있는 한 공업고등학교 가구과에 연락이 닿아서, 담임교사가 졸업생 중에 구직 상태인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온 것이다. 대부부의 지원자들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티가 났다. 대부분 가구 제작을 가르친 경험은 고사하고 자기 손으로 제대로 된 가구를 스스로 만들어 본 경험조차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아이들이 찾아와서는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가구반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아이들은 정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정도.


 통역을 통해 몇 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면서 지원자들의 말투와 자세가 바른 지를 우선 보았다. 이력서의 주요 경력은 현지 NGO 직원이 영어로 번역해서 전해 주었다. 눈에 띄는 경력이 없었다. 지원자들의 태도를 보고 나서, 연장을 다루는 스킬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면접이라기보다는 실기시험에 가까웠다. 톱을 줘서 나무를 바르게 잘라 보라하고, 끌을 줘서 끌질을 해보라고 했다. 대패는 우리가 쓰는 것과 많이 다른 것을 알기 때문에 패스하기로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이들의 연장 다루는 수준은 거의 일반인과 다름이 없었다. 공고 가구과를 3년 동안 다녔으니 가구에 대해 익숙하긴 할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가구 강사로 일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지원자는 없었다. 


학생들에게 열심히 설명중인 리코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몇 달 만에 어렵게 발견한 지원자라는 것. 그리고 이후 찾아 올 추가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NGO 로컬 직원은 오늘 온 친구들 중에서 뽑자고 했다. 난감했다. 가구에 대한 지식을 아이들에게 현지 언어로 설명해줄 현지 강사가 절실히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원자 중에서 가장 태도가 의젓하고, 짧게나마 가구 공장에서 일 한 경력이 있는 친구를 뽑기로 했다. 이 친구가 공장에서 했던 일은 합판에 필름을 붙이는 사무용 가구 제작이라, 원목을 자르고 다듬는 목공예 경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관련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과 체격이 커서 든든해 보이는 점이 가점으로 작용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리코'.


 리코를 채용하고 약 한 달 뒤, 자카르타 주정부에서 목공반 예산이 나왔으니 강사 한 명을 추가로 뽑으라 했다. 리코의 급여는 KOICA 예산으로 지급한다. 그런데 자카르타 주정부에서도 새로 만든 목공 교실 운영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어 강사 한 명을 더 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번 실기 면접 당시 톱질을 가장 깨끗하게 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마른 체격에 꽤나 섬세한 감각을 가진 이 친구의 이름은 '젠다'다. 이렇게 해서 우리 목공반에서 인도네시아 현지 강사 2명이 나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팻날 가는 자세를 봐주는 젠다


 리코와 젠다를 채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급하게 한국에 갈 일이 있었다. 짧은 기간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리코와 젠다는 모든 목공기계와 연장을 막 다뤄서 대부분 망가뜨려버렸다. 목공 기계를 험하게 다뤄서 기계 대팻날의 이가 빠져 못 쓰게 됐다. 12인치 수압 대패와 24인치 자동 대패 날을 모두 새 걸로 교체하는데 20만 원 가까이 들었다. 대패와 끌도 막 쓰고 함부로 갈아서 못 쓰게 됐다. 대패와 끌을 고쳐서 처음부터 다시 갈아야 했다. 공고를 졸업한 애들 두 명에게 교실을 맡기고 자리를 비웠으니 모든 잘못은 내 탓이다. 학생들도 잘 가르쳐야겠지만 그보다 리코와 젠다 먼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에 직면했다. 리코와 젠다는 그래도 교육의 기본기가 있었다. cm와 mm 같은 단위 변환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인도네시아에는 대학을 나왔는데도 mm와 cm를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아무튼 리코와 젠다는 본인들이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내가 설명하면 귀담아 들었다. 또 이 친구들은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가르치기가 수월했다. 


 리코, 젠다와 함께 수업을 하니 훨씬 수월했다. 내가 먼저 시범을 한 번 보여주고 뒤로 빠지면, 리코와 젠다가 부연설명을 하면서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돌봤다. 리코와 젠다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본인들 실력도 점점 좋아졌다. 목공 수업에서는 학생이 기계를 안전하게 다루는지, 연장을 제대로 잡고 바른 자세로 쓰는지 일일이 봐주어야 한다. 그래서 혼자 수업을 할 적에는 매 번 수업을 마칠 때마다 진이 빠지곤 했다. 리코, 젠다와 함께 수업을 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수업에서 완전히 빠지고 커리큘럼을 모두 리코와 젠다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리코와 젠다는 초보자답게 가구를 만드는 방식과 순서가 제 멋대로였고, 가구의 퀄리티 관리와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았다. 


자카르타 직업 학교 목공 교재


 그즈음부터 목공 수업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다. 명목은 학생들을 위한 교재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리코와 젠다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참고하는 지침을 만든 것이다.(리코와 젠다에게는 비밀이다) 대략 한 달에 한 가지 가구를 만드는 커리큘럼으로 1년 동안 수공구 사용법을 비롯해 총 7가지 가구를 만드는 내용으로 교재를 구성했다. 수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시간에 따라 어떤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는지를 꼭지별로 설명했다. 리코와 젠다도 교재 제작에 조금씩 참여했다. 먼저 교재를 영어로 만들어서 리코에게 넘겨주면, 리코가 인도네시아어로 다시 번역해서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출력해서 제본까지 했다.


 리코와 젠다는 새로 만든 교재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조금씩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됐다. 2017년 한 해 동안은 모든 수업을 나와 현지 강사들이 함께 진행했다. 그리고 2018년도에는 내가 수업을 시작하면 리코와 젠다가 학생들 자세를 봐주며 수업을 서포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리코와 젠다는 수업을 조금씩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수업 참여도를 조금씩 줄여갔다. 


젠다(좌)와 리코(우) / 목공반 졸업 전시회


 NGO의 개발원조에서는 잘 짜인 출구 전략이 중요하다. 출구 전략이 미흡해서 번듯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도 부서지는 창문과 버려지는 교실이 전 세계에 수두룩하다. 나는 개발원조가 끝난 이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다. 처음에는 어수룩하던 리코와 젠다는 이제 제법 선생 티가 난다. 교재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2019년)부터는 리코와 젠다가 수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나는 옆에서 거드는 식으로 수업의 주도권을 현지 강사들에게 넘겨주었다. 현지 강사들이 진행하는 목공 수업은 100%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빠져도 큰 문제없이 진행이 된다. 앞으로 한국 NGO가 철수하고 나서 자카르타 지방 정부가 목공실 설비를 유지. 보수하고 교보재를 잘 보급해준다면, 수업은 리코와 젠다가 충분히 알아서 잘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4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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