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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Aug 26. 2019

목수의 자질

조선시대 목수와 21세기 목수


 현대의 목공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건축 목공과 가구 제작, 그리고 인테리어 목공이다. 각 분야마다 쓰는 연장이나 기술도 조금씩 다르다. 집 짓는 목수가 가구는 못 만들기도 하고, 가구 만드는 목수가 집을 지을 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짓는 일을 대목이라 하고, 가구를 만드는 일을 소목이라 했다. 인테리어 목공은 대목과 소목의 중간쯤 위치한, 현대에 들어서 새로 자리 잡은 장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목수라는 호칭이 대게 인테리어 목수를 칭할 정도로 현장에서 인테리어 목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이 중에서 내가 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목공은 가구제작, 즉 소목에 해당한다.


 제품 생산에 있어서 많은 과정이 자동화된 세상이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원목 가구'는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로 합판에 필름을 붙이는 형식으로 만드는 '사무용 가구'는 자동화된 생산 시설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원목 가구'는 숙축. 팽창하고, 뒤틀리고, 갈라지기까지 하는 나무의 물성 때문에 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쉽지 않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으면 다들 알만한 손꼽히는 가구 회사가 원목 가구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철수한 일이 있었다. 판매한 원목 가구가 자꾸 갈라지고 하자가 생겨서 반품과 교환. 수리 요청이 많이 발생했더란다. 불량품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원목 가구를 만드는 목수는 나무 다루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원목 가구는 숙련 목수가 일일이 손으로 나무의 상태를 확인해가면서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격도 비싼 편이다. 민간인이 우주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원목 가구를 만든다. (물론 일본의 K 모 회사처럼 원목 가구의 생산 시스템을 거의 자동에 가깝게 구축한 회사도 있다. 목재 회사를 모태로 한 이 회사는 나무의 상태를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제품 하자가 거의 안 생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과는 가구를 만드는 방식이 아주 많이 달랐다. 나무를 구하는 방법부터 달랐는데, 조선시대 목수는 벌목과 목재 건조 과정을 잘 알아야 했다. 우선 나무를 베는 시기만 해도 중요해서, 아무 때나 함부로 나무를 베면 안 되었다. 여름과 가을에는 나무에 물이 잔뜩 올라 나무에 수분 함량이 매우 높다. 나무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수분 함량이 높은 나무는 건조하는 과정에서 나무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변형이 생겨서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목재로 사용하기 위한 나무는 대부분 늦은 겨울이나 건조한 새 봄,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베는 것이 가장 좋다. 요즘은 대형 오븐과 같은 목재 건조기가 있어서 계절의 영향을 덜 받고 나무를 베어서 큰 손상 없이 빠른 시간에 건조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나무를 언제 베고, 어디서 어떻게 건조할 것인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참나무 토막


 지금도 종종 쓰는 목조 건조 방법으로 침재 법이라는 방법이 있다. 베어낸 나무를 물에 담가서 물을 먼저 먹인 다음 다시 건조를 시키는 방법이다. 나무를 말리기 전 짧게는 1~2달에서 길게는 3년 씩이나 물에 담가 둔다. 어차피 나무를 말릴 건데 왜 물을 먹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살아있는 나무에는 수액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수액은 다양한 성분이 포함된 유기물이라서 그냥 말리면 나무가 잘 마르지도 않고 나중에 진액 때문에 나무에 문제가 생긴다. 고로쇠 수액이나 송진을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나무를 물에 담가 놓으면 진액이 서서히 빠지고 평범한 물로 치환되어 이후 나무가 훨씬 깔끔하게 잘 마른다. 옛날에는 이 침재 법을 써서 나무를 말리느라 목재 건조에 10년씩 걸리기도 했다.


 나무는 수종에 따라 자라는 환경이 달라서 강원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전라도에서 찾을 수 있는 나무의 종류가 다르다. 과거에는 나무를 운반하는 것도 아주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 지방에 살고 있는지도 목수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21세기 목수는 침재 법이니 목재가 서식하는 환경이니 하는 내용을 몰라도 된다. 목재상에 가면 잘 건조된 나무를 종류별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미국산 월넛도 있고, 아프리카산 흑단도 있다. 취향껏 나무를 쇼핑하면 된다.

 

 조선시대 목수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옛날에는 목수가 쓰는 연장이 그 목수의 실력을 말해줬다. 쓰임새별로 다양한 종류의 연장과 잘 관리된 상태는 목수의 자부심이었다. 과거에는 좋은 연장을 새로 하나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연장을 다루는 법도 어려웠다. 조선시대에는 목수가 되기 위해서 장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대팻날만 몇 년 동안 갈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조선시대에는 손이 투박하면 대팻날을 제대로 갈 수가 없었고, 대팻날조차 갈지 못하면 목수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뛰어난 손재주가 목수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던 것이다.


초보 목수 시절에 가지고 있던 대패와 끌 한 세트 매우 조악한 상태 | 현장에서 통째로 잃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돈만 있으면 좋은 기계와 연장을 종류별로 갖추고 아주 쉽게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다. 기계의 전원을 켜서 대패질을 자동으로 할 수도 있다. 요즘 연장들은 워낙 잘 나와서 대팻날을 갈기 위해 보조 도구를 사용하면 초보자도 대팻날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무엇 보다도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대패 같은 섬세한 연장을 손으로 직접 다루는 작업 시간은 그리 많지도 않다. 전기를 연결하고 기계의 작동 버튼을 누를 줄만 알아도 목수 일을 벌써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CNC 같은 기계는 가구의 각 부위를 자동으로 깎아서 서로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될 정도까지 만들어 주기도 한다. CNC를 넘어 3D 프린터까지 상용화된 세상이 아닌가.


 이제는 뛰어난 손재주가 더 이상 목수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좋은 목수가 되기 위해 손재주가 전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도 좋은 목수에게 섬세한 손은 중요하다. 그러나 21세기 목수에게 손재주보다 더 중요한 자질은 따로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심미안이다. 패셔니스타는 옷맵시가 있고 핏이 좋은 옷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듯이, 좋은 가구를 만드는 사람은 가구를 보는 나름의 감각이 필요하다. 가구는 내구성과 표면 마감과 같은 것도 좋아야 하지만 비례와 비율, 그리고 선의 두께와 각도 같은 것들이 분위기를 좌우한다.


여러 가지 모양의 원목 식탁들, 상판과 다리의 두께와 기울기 등이 제각기 다르다


 비싼 기계와 좋은 연장을 이용하면 목공 초보자도 조선시대 목수가 울고 갈 만큼 튼튼하고 정교한 가구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툭하고 못 생긴 가구를 만들어내는 목수들이 요즘 세상에는 많다. 가구를 만드는 즐거움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지만, 못 생긴 가구를 자꾸 만드는 목수의 재능은 딱 그만큼이다. 부족한 것은 손재주가 아니라 안목이 아닐까? 나무를 깎아서 가구를 만들 때 모서리가 너무 날카롭지 않게 사포로 갈아야 하는데,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것이 부드러워 보이고 안전하다며 사정없이 갈아버리는 경우를 봤다. 각재의 모서리가 날카로우면 위험할 수도 있지지만, 적당히는 살아 있어야 가구의 맵시가 산다. 그리고 이 맵시라는 것은 손기술과는 다르다. 맵시는 사람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온다. 좋아하는 음악, 즐겨 읽는 책과 좋아하는 전시회를 비롯해 보고 듣고 느끼는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성격과 맵시를 구성한다.


 서울에서 목공방을 운영할 적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취미 목공 강좌를 했었다. 100명도 넘는 사람이 목공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뛰어난 성능의 목공 장비를 활용해서 만드는 가구 제작 실습에서 남녀노소의 실력 차이는 없었다. 물론 손이 특별히 무딘 사람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평균 정도의 손재주만 있으면 수업을 충분히 따라왔다. 목공 기계와 좋은 장비가 작업을 편리하고 정확하게 해 주기 때문에 하나하나 침착하게 만들다 보면 어느새 멋진 가구가 완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과 다소 낮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대개의 경우 그 차이는 손기술이 아닌 성격과 맵시에 따라 달라졌다.


효창동 목공방 취미 목공 과정에서 일반인이 1개월만에 제작한 원목 스툴


 자카르타의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직업학교 특성상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개성이 매우 강한 아이들이다. 성격도 천차만별이고, 교육 수준도 편차가 아주 심하다. 아쉽지만 우리 직업학교에서는 좋은 가구에 대한 안목과 맵시를 가르치기보다는 기초적인 지식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1mm 미터의 두께 차이에서 오는 느낌의 차이를 익히려면 먼저 cm와  mm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mm가 뭔지도 모른다. 맵시를 키우기 위해 옷도 사고 책도 읽고, 전시회 같은 데도 가보고 해야 할 것인데, 제 돈 주고 옷 한 벌 직접 사 본 적이 없는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학생들이 멋진 가구 디자인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가구를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은 익혔으면 좋겠다.



 좋은 목수에게는 어떤 재능이 필요한지 생각하다가 쓸데없이 사설이 너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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