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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목수 Aug 31. 2019

목공 수업 #2 톱질

자기 팔꿈치와의 싸움

 톱과 대패, 그리고 끌은 예로부터 목수의 필수 연장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수공구를 쓸 줄 몰라도 어디 가서 나 목수입네 하고 말할 수가 있다.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수공구를 손에 한 번 들어보지도 않고 가구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패와 톱, 끌과 같은 수공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에 의미가 있다. 가구를 맵시 있게 만들어주는 정교함은 육중한 목공 기계만 작동시켜서는 쉽게 길러지지가 않는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장을 손에 들고 나무와 씨름을 하는 시간만큼 목수는 나무와 친해지고 연장에도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수의 감각은 더 정교해지고 성숙해진다. 


 잘 드는 톱을 손에 쥐여 주고 나무토막을 잘라 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잠깐 삐그덕 거리다가 곧 잘 자른다. 그런데 절단면을 직선으로 깨끗하게 자르라고 하면 이때부터는 잘 안 된다. 끌도 마찬가지다 끌과 망치를 손에 들고 나무를 마구 파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나무토막에 네모를 그려놓고 그 부분만 깨끗하게 파내라고 하면 어렵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수공구를 정교하게 다를 줄 아는 학생이 목공 기계도 더 잘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절단기로 나무를 자르면 누구나 깨끗하게 자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공구를 다루는 실력에 따라서 기계 가공 결과물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것이 신기했다. 


 학생들에게 톱질을 내가 배운 대로 가르쳐 보기로 했다. 각재를 준비한 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칼금을 긋고, 선에 맞춰서 톱질 연습을 하는 것이다. 30x30mm 각재에 그은 칼금을 옆에서 보면 대략 이런 모양이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연습용으로 사용하는 톱은 등대기 톱이다. 톱날의 두께가 0.3mm에 불과해서 톱날을 잡아주는 등심이 없으면 날이 너무 낭창거려서 톱질을 똑바로 하기가 어렵다. 톱날에 등을 대고 있다고 해서 이름이 등대기 톱이다. 이 톱은 아주 얇은 만큼 아주 적은 힘으로도 나무를 자를 수 있다. 손에 힘을 빼고 톱날을 나무에 걸친 채로 슬쩍 당기기만 해도 나무가 잘리기 시작한다. 등을 잡아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톱날 자체가 워낙 얇아서 톱날을 비튼 채로 조금만 힘을 잘 못 주면 날이 쉽게 휘어버린다. 한 번 날이 휜 톱날로는 나무를 깨끗하게 자를수 없기 때문에 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드라가 등대기 톱으로 세로 톱질을 연습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아주 열심히 설명하고 주의를 줬는데도 불구하고 한 시간 만에 교실의 모든 톱날을 남김없이 망가뜨려버렸다. 힘 조절이 안돼서 힘껏 톱을 잡아서 밀고 당기다 보니 톱 날이 팍팍 구겨져버린 것이다. 목수들 세계에서 톱과 끌 그리고 대패 같은 수공구는 개인 별로 준비하고 각자 자기 연장을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톱을 남에게 빌려줬는데 톱날이 휘기라도 하면 펴 줄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새로 사달라 하기도 애매하다. 대패를 남에게 빌려 줬는데 대팻날이 왕창 나가기라도 하면 날을 이만큼 갈아내지 않고서는 복원도 안 된다. 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개인적으로 연장을 구비할 형편이 안된다. 그래서 모든 기자재는 KOICA 예산으로 구입해서 여러 학생들이 함께 쓴다. 그리고 한 번 구입한 연장은 한 학기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음 연도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물려서 쓴다. 그런데 등대기 톱은 너무 민감해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자기 톱이 아니라서 망가져도 손해 볼 일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구부러진 톱으로는 제대로 된 톱질을 완성할 수 없다. 눈물을 머금고 새 톱날을 주문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새 톱날을 갈아주지는 않았다. 망가진 톱날로 계속 연습을 시켰다. 어차피 한 번 망가진 톱날, 연습하다가 좀 더 구부러져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다만 힘 빼고, 천천히 톱질을 하라고 수업시간 내내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지겹도록 타일렀다. 

 

깨끗하게 톱질된 각재 | 당기면 낭창낭창 휘어진다

초보자들이 톱질을 할 때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는 톱을 똑바로 잡아당기지 못하는 것이다. 톱을 잡아당길 적에 팔꿈치가 몸 쪽으로 붙으면서 톱날의 방향이 자꾸 몸 쪽으로 틀어지기 때문이다. 직선운동으로 톱질을 깨끗하게 하려면 자신의 팔꿈치가 몸 쪽으로 붙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자기 팔꿈치랑 싸워야 하는 것이다. 같은 10 시간을 연습해도 의식적으로 연습 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실력 차이가 뚜렷하게 난다. 손상된 톱날로 어느 정도 반듯한 톱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이 된 학생들에게는 새 톱날을 쥐어줬다. 0.3mm 두께의 톱날을 가지고 그만큼 정교한 톱질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의 눈에서 빛이 났다. 


 학생들에게 톱질을 가르치는 이유가 단순히 목공 기술을 익히는데만 있지는 않다. 우리 학생들은 정교한 작업의 의미와 필요성을 알지 못한다. 살면서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짜 맞춘 고급 가구를 써 본 적도 없고, 그런게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이렇게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통해 정교한 결과물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일깨워 줘야 한다. 


 한국 사람에게는 당연한 '고퀄이 더 좋다'는 인식은 이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적당하면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5성급 호텔에 가도 장롱 문짝이 틀어져서 제대로 안 닫힌다. 그만큼 마감 퀄리티에 대한 기준이 낮다. 내가 지내는 숙소만 해도 한국 사람 눈에는 하자가 될 만한 부분이 가득하다. 몰딩이 비뚤어지고, 벽 모서리에서 시멘트 가루가 계속 떨어지고, 화장실 세면대는 자꾸만 밑으로 쳐지고 아주 난장판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정도 품질이 표준이다. 더 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학생들에게 자꾸만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내 방식이 인도네시아의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든 배울 때 제대로 배워놔야 오래 두고 편안하다. 그렇게 믿으면서 오늘도 사서 고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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