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현장 스케치
우리 수업의 목표는 학생들을 목공 기술자로 키우는 것이다. 수업은 직접 디자인한 멋진 가구를 만드는 취미 수업이 아니라 목공 노동자가 되기 위한 직업 훈련이다. 평생 목수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기본기가 부실하면 일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같은 일도 어렵게 풀어내느라 작업 시간이 곱절로 걸리기도 한다. 기본이 부족하면 일 하는 내내 두고두고 고생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기본기부터 한 번 차근차근 가르쳐 보기로 했다.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세!
대패는 목공 작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나무를 사그락 사그락 깎아서 두께를 맞추고,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시장에 나가서 알아보니 인도네시아의 일반적인 대패는 가격이 5천 원 정도 했다. 더 싼 것도 있다. 아무리 잘 갈아도 몇 번 쓰면 금방 날이 무뎌져서 날을 다시 갈고, 또 갈고, 날만 갈다가 세월이 다 가게 생겼다. 좋은 대패의 대팻날 너무 단단해도 안 되고, 너무 물러도 안 된다. 너무 단단한 것은 깨지기 쉽다. 유리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무 단단한 쇠는 숫돌로 잘 갈아지지도 않아서 날을 세우는데 너무 힘이 든다. 반면에 대팻날이 너무 무르면 한 두 번 쓰면 날이 무뎌져서 일을 할 수가 없다.
5천 원짜리 인도네시아 대패는 꼭 양철을 잘라다가 대팻날을 만든 것 같았다. 쇠붙이라고 다 같은 쇠가 아닌데 이건 정말 막 갖다 만들었다. 도무지 쓸 수가 없어서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당 4만 원 정도 하는 보급형(?) 동양 대패(?)를 구해다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로 했다. 좋은 대패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알아야 나쁜 대패로 할 수 없는 것도 알 것 아닌가? 이 곳에서 4만 원이면 꽤나 비싼 축에 속하니 보급형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동양의 모든 대패가 한국 대패처럼 생긴 것도 아니다. 동. 서양의 대패를 구분하는 것도 내가 임의로 정한 방식이다. 내가 동양 대패라고 일컫는 한국과 일본에서 쓰는 대패는 당겨서 사용한다. 반대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양 국가에서 사용하는 대패는 밀어서 대패질을 한다. 인도네시아의 일반적인 대패는 서양식처럼 밀어서 쓰는 방식인데, 음... 뭐랄까 굉장히 투박해서 대패를 친다기보다는 나무를 긁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품질이 형편없었다. 하나에 5천 원, 음 그래 이렇게 생긴 대패도 있구나 싶어 기념품으로 하나 사뒀다. 5천 원이면 흔한 기념품 열쇠고리 가격이 아닌가!?
대패만 투박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곳 아이들은 더욱 투박하다 할 수 있겠다. 우리 학생들은 대부분 평생 정교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곳에 와서 보고 알았다. 한국 학교에서는 그래도 기본적인 것들은 제대로 다 알려주는구나. 길이와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 같은 것들 말이다. 아무튼 이 곳 아이들에게 대패를 가르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통역 선생님이 있지만 이 민감한 연장의 절묘함을 말로는 풀어서 설명해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직접 대패를 사용해보면서 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정교함이나 세밀함 같은 단어는 우리 학생들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
처음에는 대패로 나무를 깎는 시범을 먼저 보여줬다. 너무 얇아서 반투명한, 보드라운 대팻밥이 나온다.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대패질이라고 직접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이론적인 설명도 살짝 덧붙였다. 세상에는 밀어서 쓰는 대패와 당겨서 쓰는 대패가 있다는 것. 대패는 날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 대팻날 관리만 잘하면 밀어서 쓰는 것과 당겨서 쓰는 것 정도의 차이는 금방 적응할 수 있으니, 동양 대패니 서양 대패니 하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대팻날부터 갈아보자고 했다. 이론 수업은 너무 길게 하면 안 된다. 내용이 길어지면 지루하고 이해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정규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수업 집중도가 아주 낮은 편이다. 그나마 목공 수업은 대부분이 실습이라 정말 다행이다.
대패를 가르치기 시작한 처음 한 달 동안 나는 지옥을 맛보았다. 수업을 시작하고 며칠 되지 않아 우리 학생들이 대팻날을 모조리 망가뜨려버렸기 때문이다. 날만 망가진 것이 아니다. 숫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패를 가르치면 처음에는 좀처럼 날이 서지 않아 힘들어한다는 것을. 날 갈기를 배우기 시작하면 10시간 정도는 채워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날이 서기 시작한다는 것을. 대패를 처음 만져 본 사람들이 날을 잘 갈아보려고 낑낑대면서 조심스럽게 연습을 하는 것이 내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날을 숫돌에 대고 과감하게 비벼댔다. 자세는 내가 가르쳐 준 날 가는 자세가 맞는데 날을 잘 갈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는 않아 날도 바로 망가지고 숫돌도 망가졌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망가진 대패 날은 다시 쓸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수선을 해서 학생들 손에 다시 쥐여줬다.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대팻날 가는 손을 같이 잡고 자세를 고쳐줬다. '쁠란 쁠란' '쁠란 쁠란!'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쁠란 쁠란'은 인도네시아 말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숫돌은 조금만 파여도 숫돌끼리 서로 갈아서 평평하게 만들라고 지겹게 타일렀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한 아이가 마법처럼 대패 날을 제대로 갈았다. 그 한 명이 시작이었다.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나름의 요령을 자기들 언어로 알려주고, 그러면 다른 친구에게 또다시 요령이 전파되었다. 물론 아무리 오래 연습해도 끝까지 잘 안 되는 친구도 있다. 과정도 순탄치 않고, 시간도 예상보다 몇 곱절은 더 걸렸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아이들이 대패를 제대로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패질을 제대로 할 줄 안다는 것은 대패를 들고 나무를 잘 깎는다는 것이 아니다. 대패를 제대로 칠 줄 안다는 것은 스스로 대패 날을 갈 수 있고, 대패 관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투박한 아이들이 마법처럼 고운 대팻밥을 만들어내는 순간은 내게는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아이들에게 말해줬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대패는 상당히 거칠어서 이렇게 얇고 곱게 대패를 치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에는 대패질을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뜻이지. 우리 친구들은 이제 고작 한 달 정도 목공을 배웠지만 벌써 인도네시아에서 대패를 가장 잘 치는 뚜깡 까유(목수) 일거야! 베테랑 뚜깡 까유도 대패질만큼은 너네만큼 멋지게 못 할 걸? 너네 정말 멋지다!"
마음을 감추지 않고 진심으로 기뻐했고, 열심히 칭찬을 해줬다. 우리 학생들은 많은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칭찬에도 아마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칭찬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들은 쭈뼛쭈뼛하면서도 같이 즐거워했다. 사각사각 얇은 대팻밥을 만들어 내는 대패 질은 중독성도 있다. 한 번 제대로 대패를 치기 시작한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패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