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EA, 비싸고 좋은 유럽 가구(?)
이케아 견학을 가는 날이다. 가구반 학생들은 말끔한 옷을 입고 아침부터 학교 현관 앞에 모였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라 다들 설레는 표정이 얼굴에 역력하다. 우리 시설은 기숙형 직업훈련 기관이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고, 외출 허락이 없으면 밖으로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 학생들 중에는 집도 절도, 그리고 수중에 돈 한 푼도 없어서 주말에도 밖에 안 나가고 몇 달째 학교 안에서만 지내는 아이들도 많다.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하게 됐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명목은 '가구 시장 견학'이지만 실제로는 소풍 가는 분위기다. 가구쟁이가 이케아에 가는 것은 그림 좋아하는 사람이 전시회를 보러 가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콘서트장을 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사실 나는 이케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케아에는 내 맘에 드는 가구가 별로 없다. 이케아 가구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기 때문에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내구성이 약한 물건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은 물건은 나름 괜찮다. 그리고 이케아에서도 괜찮은 물건은 가격이 결코 싸지가 않다. (내가 집에서 쓰는 의자는 IKEA+ HAY 콜라보 의자다. HAY 디자인의 의자인데 가격이 15만 원에 불과하다.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깔끔하고, 퀄리티와 내구성도 썩 괜찮다!)
유럽에서는 신생아의 2/3가 이케아 침대에서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신혼부부들이 신혼집 살림을 이케아에서 그만큼 많이 장만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케아가 서민들의 가구 브랜드라는 시각은 OECD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견해다. 인도네시아인 입장에서 이케아는 꽤나 비싸고 멋진 유럽 가구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형편이 아주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이케아가 어떻게 보일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치 소풍을 가듯 즐거운 기분으로 갈 수 있으니 우리 학생들에게 이케아는 좋은 곳임이 틀림없다.
직업학교에서 이케아까지는 차로 약 1시간 반이 걸린다. 넓은 공간이 필요한 특성상 이 곳 인도네시아에서도 이케아는 자카르타의 위성 도시인 땅그랑 시에 위치해 있다. 마치 한국에 이케아가 광명시에 있는 것처럼. 가구반 학생들은 '로한'이라 불리는 관용 봉고차에 뒷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이케아로 향했다. 곧 멈출 것처럼 낡은 봉고차는 시트가 지하철 좌석처럼 양쪽이 서로 마주 앉게 배치되어 있다. 좌석은 나무 판때기를 붙여 놓은 것이라서 아주 딱딱하다. 엔진 소리가 웅웅 하고 울리는 시끄러운 낡은 봉고차의 딱딱한 시트 위에 옹기종기 앉아서도 마냥 즐거운 아이들이다.
아침 9시쯤 출발한 우리는 11시가 거의 다 되어 이케아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잠깐 숨을 돌리고, 오늘 일정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현지 강사 리코, 젠다와 학생들은 기도를 하러 가야 한단다. 무슬림은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는데, 이 곳 인도네시아는 종교가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아서 기도를 빼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금요일만큼은 기도를 철저히 한다. 마침 오늘이 금요일이라서 이케아까지 와서 기도를 하러 가야 한단다. 오케이! 기도를 해야 하면 해야지! 나는 의도치 않게 개인 시간이 생겼다. 혼자서 느긋하게 먼저 이케아를 잠깐 둘러보았다. 12시가 다 되어 기도를 마친 학생들이 돌아왔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점식부터 먹기로 했다. 이케아 메뉴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메인 요리 하나, 사이드 메뉴 하나, 그리고 음료 하나씩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케아 음식은 정신줄을 놓고 담다 보면 너무 많이 담아서 종종 남기게 된다. 하지만 나도 학생들처럼 메인 요리 하나, 사이드 메뉴 하나, 음료 하나를 골랐다. 먹어 보니 이 것만 해도 충분하다. 음식을 먹는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직업훈련소의 급식 메뉴는 양도 적고, 맛은 음... 솔직히 나는 음식 맛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못 된다. 현지인들 입맛에는 급식이 맛있을 수도 있다. 외국인인 내 입 맛이 다른 것일 테니까.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부터 이케아 견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같았으면 오전에 벌써 2시간 정도 둘러보고, 이제 곧 오후 타임이 시작되었을 테지만, 인도네시아는 모든 것이 느려서 많은 일을 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느리고, 굼뜨고, 기도도 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에 목표한 바를 달성하려고 하는 태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시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것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포기하는데 한 2년 걸렸다.)
이미 6개월 넘게 정도 가구 만드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이케아 가구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은 넓고 이렇게 멋진 가구도 많구나 하는 눈치였다. 다양한 기능과 다양한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접합 방식을 눈여겨보는 모습이 기특했다. 우리 학생들은 일반인들이 가구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가구의 구조와 형태를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였다. 학생들에게는 2가지 미션이 있었다. 하나는 오늘 본 가구 중에서 마음에 드는 가구를 하나 고르고, 왜 마음에 들었는지 그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미션은 본인이 자유 주제로 만들 가구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우리 가구반은 1년 동안 기술을 가르치는데, 연말에는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자유롭게 만드는 과정이 있다. 스툴, 식탁, 의자, 케비넷 등 다양한 가구를 한 달에 하나씩 만들어본 아이들은 연말에는 본인이 만들고 싶은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해서 개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완성품은 '졸업 전시회'를 열어 전시를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도무지 만들고 싶은 가구가 없고, 또 어떤 가구가 좋은 가구 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 이케아 견학은 개인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기에 아주 적절한 기회인 셈이다.
학생들이 가구를 집중해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려고 미션을 주었더니 아이들은 아주 열심히 그리고 정말 즐겁게 가구를 구경했다. 어떤 아이들은 가구의 형태와 디자인을 종이에 메모도 하면서 아주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케아에 가면 일회용 종이 줄자가 있다. 아이들은 그 줄자를 제품의 치수를 실측하는데 적극 활용했다. '아이고, 누가 보면 가구 제작자가 시장조사 나온 줄 알겠네!' 아이들도 나도 즐거운 이케아 나들이다.
이케아 넓은 공간을 돌아서 출구 쪽으로 나오면, 계산대 앞 스낵 코너에서 아이스크림을 판다. 몇 시간 동안 이케아를 헤매고 나면 다리도 아프고 뭔가 단 것이 당기는데, 이때 아이스크림이 딱이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 나도 하나 입에 물었다.
나의 부족한 실력으로 학생들을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이렇게 밖에 나와서 아이들에게 진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다. 학생들에게 넓은 세상을 좀 더 자주 보여주고 싶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 가끔 자책감이 들 때면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잘 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간다. 그렇지 않으면 뜬구름만 잡다가 이도 저도 못 하게 될 테니까.
이케아 소풍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