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69
“우아~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준비했냐?”
“내가 했겠냐? 내 와이프가 했지. 니 온다니까 이렇게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더라”
“아이고, 고맙습니다 윤아씨”
“별말씀을요, 오늘 그래도 특별한 날이잖아요”
“그러게 진짜 너랑 내 마누라랑 생일이 같을 줄 누가 알았겠니? 참! 너는 감사해라! 우리 마누라가 너 온다고 어제 문어까지 잡아가 삶았다 아이가, 맨손으로 잡다가 문어한테 물려서 손등에 상처까지 났다 아이가”
“헐, 진짜예요? 윤아씨 손은 괜찮아요?”
수호의 말에 택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어를 썰고 있는 윤아의 손을 바라봤다. 왼쪽 손등에 붙어있는 앙증맞은 미키마우스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요, 그이가 헛소리가 심하네요, 사실 어제 모처럼 주말에 가족끼리 바닷가에 놀러 갔거든요, 송이가 바위틈에 있는 문어를 발견했는데, 잡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주변에 뭐 잡을만한 도구가 없어서 급하게 그냥 손으로 잡았지 뭐예요 별거 아닐 꺼라 생각했는데 팔을 휘감더니 손등을 물더라고요. 살짝 따끔했어요.”
“따끔 정도가 아닌 거 같더구먼, 내가 보니 물린데 살점이 다 뜯겨 나갔더니만, 문어가 무섭더라.”
문어에 물리지도 않은 수호가 윤아보다 더 겁을 냈다. 윤아는 항상 남들이 보면 큰일이나 위험한 일도 자신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무표정하게 얘기하곤 했다. 예전에도 택건은 수호네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윤아가 뜨거운 냄비를 맨 손으로 들고 오면서 ‘조금 뜨겁네요’ 말했는데 손에는 수포가 올라올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던 기억이 있었다.
“윤아씨는 손바닥에 못이 박혀도 비명은커녕 앗 소리도 하나도 안 낼 것 같아요, 정말 하하하”
“큭큭 그래 맞다. 맞다. 네가 울 마누라를 잘 아네. 아마 ‘어 뭐지?’ 이러면서 다른 손으로 못을 뽑을걸”
“하하하, 왜들 그래요. 저도 사람 이에요.”
윤아는 참을성에 있어서 만큼은 사람이 아닌 로봇과도 같았다. 윤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무용과 생활을 하면서 혹독한 연습과 선배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냈다. 힘들고 괴롭고 아픈 것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일상처럼 살아왔다. 그게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이었고 그렇게만 계속 배워왔다. 집에서도 언니들 사이에서 항상 이리저리 치이며 강하게 자라왔다. 참고 견디는 것은 그녀에게는 어쩌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예술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도 카페나 식당에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은 스스로 벌어서 썼다. 그녀는 무용실력이 남다르게 뛰어나 선생들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기에 서울의 유명 대학으로 진학하길 바랐지만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이 아닌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지방 공립대학에 진학했다.
“택건씨도 참을성은 뭐 남들 못지않은 것 같은데요”
“제가요? 왜요?”
“수호씨랑 여태껏 친구로 지내는 것 보면요 하하”
“뭐여? 마누라! 지금 내 디스 하는 거가?”
“하하하”
사실 택건도 참을성이라면 남들 못지않았다. 처음 호주에 와서 목수 일을 배울 때 처음으로 하우스 공사장에서 팀버 프레임을 만들 때였다. 데모도인 택건은 팀버를 손으로 받치고 기술자 목수가 네일건으로 팀버를 고정하는 작업을 할 때였다. 목수가 네일건으로 비스듬히 쏜 못이 팀버의 모서리를 관통해 팀버를 잡고 있던 택건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택건의 눈앞에 손등으로 튀어나온 못이 보였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엄청한 통증이 엄습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네일건을 쏜 목수도 깜짝 놀라 택건을 바라봤지만 택건은 미간만 살짝 찌푸렸을 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손바닥에서 못을 빼내고는 흐르는 피를 닦으며 지혈을 했다. 다행히 신경을 다치지 않았지만 목수는 그런 택건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택건은 아픈 것을 참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택건은 윤아를 잘 몰랐을 땐 그녀가 그저 둔감한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보니 그녀가 자신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은 아픔과 상처에 익숙해지고 무뎌져 있었다.
택건은 타지에서 오랜 시간 홀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인상 쓰고 화내고 아프다고 징징거려 봐야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어린 시절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또 울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던 무의식의 기억을 가지고 자랐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 일을 수습하고 이미 생긴 상처는 치료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감정소비나 몸부림에 힘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빼고는 너무도 닮아 있었다.
“어제 잡은 그 문어 너도 줄 거라며 조금만 먹고 얼려놨다 아이가.”
“조금만 기다려요 택건씨, 문어숙회 금방 썰어드릴게요”
수호는 마치 어제 먹은 문어가 모자랐는지 불만 섞인 생색을 표시했다.
“감사해요, 가족들 먹을 것도 모자랐을 텐데…”
“아녜요, 그래도 생일인데, 타지에 혼자 나와 계신 택건 씨도 저희가 챙겨야 줘, 생일도 같은데… 어찌 안 챙길 수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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