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 사이

[신과 나눈 이야기 book 2] 닐 도널드 월쉬

by 글짓는 목수

"투명성이란 단지 진리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다.... 계몽된 사회에는 비밀이란 게 없다."

- 닐 도널드 월쉬 [신과 나눈 이야기 2] p320 -


투명성은 공정성과 함께 현 MZ세대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 출산율이 반등했다. 인구 소멸로 가던 한국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야 할 세대가 MZ세대이다. 난 결혼과 출산에 관한 의구심과 거부감을 가지기 시작한 세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의 친한 친구들의 혼인율은 반반이다. MZ세대는 그 의구심과 거부감이 증폭되어 그것들로부터 멀어진 세대이다. 무엇이 그들은 그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나?


위대한 개츠비, 독서 토론에서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기가 생기지."

- 스콧 피츠 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한국은 미국의 산업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모방해서 발전했다.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 세대들은 이제 똑똑하다. 스마트 정보 검색과 AI 활용도도 높다. 그들이 생각이 짧아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스템의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가난의 굴레에 한 번 발목을 잡히면 가진 자들의 노예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야 , 넌 결혼 안 하냐? 나이도 있는데..."


나는 과거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심심찮게 들었다. 보수적인 제조 회사의 분위기 속에서 결혼적령기를 넘긴 미혼 남성은 항상 윗사람들의 입 담아 오르곤 했다. 난 왜 다른 개인사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자들이 왜 나의 결혼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별로 개인적으로 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그건 상하 이해관계에서 충성도와 복종에 익숙해지는 관계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 동료들은 나와는 달리 팀장이나 부장들 앞에서 순종을 넘어 복종적으로 보였다. 가족을 가진 수컷은 그렇게 책임감이라는 당시 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의 조건을 갖추어 간다. 그럼 자신은 사라지고 가장(家長)이라는 역할을 위해 개성보다는 순종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순종은 어느새 복종으로 바뀌어 있다.


“@과장이 좀 얘기해 봐요. 난 처자식이 있잖아.”


아닌 걸 뻔히 알지만 얘기하지 못한다. 개성이 아직 살아있었던 나는 종종 그들의 개성을 대변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개성은 계속 조금씩 깎여 나가고 나의 충성도도 함께 깎여 내려간다. 조직의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 사실상 상사(인사권자)가 자가 그것을 정한다. 다행히 난 깎인 신임도를 야근으로 더 많은 시간 일하는 것으로 채워 넣었다. 나는 그리 영리하지 못했다. 나는 투명과 공정이 통하지 않는 조직에서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대가였다. 동료들은 영리했다. 동료들은 아직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회사는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린 이걸 사내 정치라고들 말한다. 일터에서 왜 그리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사내 정치에 치인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받는 곳이 바로 종교이다. 왜 그렇게 일요일마다 교회를 찾아가 기도를 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찬양하고 기도하니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용서하라'는 목사의 말이 진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듣다 보면 그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익숙해진다. 원수에게 복수는 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예수는 정말 대단하다. 목사는 자신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왜 다른 이들에게 말하는 것일까? 예수는 말과 행동이 같아서 성인이 되었지만 그 말을 목사가 계속하니까 목사가 마치 예수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예수를 대신해서 말을 하는 목사를 존경하게 된다. 말이 삶으로 실천하는 자인지는 알 길은 없다. 프라이버시다. 일요일만 보는데 어찌 알리요. 말의 힘은 실로 위대하고 강력하다. 그래서 발언권(말할 수 있는 자격)은 권력이 된다.

정치와 종교 사이

정치인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대중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공약과 정책을 내걸고 호소력 있는 언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자신의 물질적 삶의 풍요를 가져다줄 것을 믿고 그들을 따른다. 그럼 종교인은 자신의 정신적 삶의 풍요를 위해 믿고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말은 Ctrl+C로 Ctrl+V 복제되어 TV와 인터넷을 통해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말과 행동의 괴리를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프라이버시다. 누구나 개인 프라이버시를 노출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정치인과 종교인은 공인이다. 공인이 비공인처럼 행동하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오픈되고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세상에서는 그들의 부조리와 모순적인 행동도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인과 종교인은 아직도 그 생각이 과거에 그런 식으로 부귀영화를 누렸던 자들을 답습하려 하는 것 같다. 그들은 국민과 성도들의 믿음으로 밥을 먹고사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초심은 분명 그들에게 봉사와 헌신을 하기 위해 선택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초심은 그처럼 지속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그들은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지속적으로 평가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보다 낮은 자들로부터의 충언과 평가를 불충과 비난으로 생각한다. 국민과 성도들에게 귀 기울이고 일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그것에 눈과 귀를 닫는 것은 자신이 신이 되고 독재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나는 사내 정치에 지치면 예배당에 앉아 기도하며 위로받고 또다시 새로운 한 주를 사내 정치에 시달리고 또 기도하며 위로하는 삶을 사는 자들을 오랜 시간 보았다. 순종하라는 말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말이었다. 말과 행동이 계속 같다면 알아서 스스로가 순종하고 존경한다. 순종과 존경을 억지로 받아내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 기어코 받아내려고 한다.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하다 보면 돈 봉투가 담긴 바구니가 눈앞에 나타난다. 무언가를 받아내려 한다. 정치인은 세금을 종교인은 헌금을 받아내려 한다. 헌금은 자발적이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헌금은 기록되고 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자 척도로 작용한다. 돈이 없으면 장로나 권사가 될 수 없다. 그렇게 거둬진 돈은 투명하지 않다. 나라로 종교로 귀속된 돈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 들어가는지 국민과 성도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계몽된 사회들에서는 아무도 다른 누군가를 희생하여 뭔가를 얻거나 뭔가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 닐 도널드 월쉬 [신과 나눈 이야기 2] 320p -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누군가가 한 이 말이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퍼졌던 시기가 있었다. 계몽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한 말일까?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계몽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 노력이 사라진 사회와 노력하는 사회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의 의미

모든 것이 투명하고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문명은 무언가의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룩된 것이다. 물질문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것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세태를 보고 있으면 물질문명이 진보된 국가에서 인간성 말살과 인구 소멸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그들이 더 전쟁과 분쟁을 부추긴다.


가려진 것이 드러날까 두려운 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투명과 공정이 자신의 자리와 지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결혼과 출산율의 반등이 다음 세대를 낳고 키워도 더 가난해지고 피폐해지지 않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는 미래다.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 누구나 부모는 아이의 밝은 미래를 희망한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자신이 살던 세상보다 더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아이를 낳는 자는 죄인과 다름없지 않은가?


정치와 종교 사이


정치와 종교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투명성이 아닐까? 정치인은 진실을 외치고 종교인들은 진리를 외친다. 진실과 진리는 계속 변하고 왜곡된다. 절대적인 진실과 진리는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물질세계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난 차라리 그들이 투명성을 외치길 바라본다.


당신의 진실과 진리는 투명한가?


[신과 나눈 이야기 book 2] 닐 도널드 월쉬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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