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없는 작가

[심플릿] 수기 공모전 응모작

by 글짓는 목수

“무슨 책을 쓰셨어요?”


작가라고 말했다. 그러면 항상 돌아오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책을 써야만 작가라는 말이 신빙성과 신뢰성을 가진다. 모든 것이 온라인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아직도 오프라인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전자책으로 작가의 책을 읽지만 종이책이 없다면 스스로 작가라고 입에 담기 어렵다. 책 없는 작가는 미덥지 않다. 글은 읽을 수만 있으면 된다. 책에 있는 것과 화면에 있는 것이 다르게 읽힐 수는 없다. 그럼에도 30만 년을 오프라인 세상에 살아온 인간의 유전자는 여전히 종이 위의 질감 있는 글에 익숙하다. 그래서일까 온라인 작가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7년이 넘게 써온 원고들이 먼지 하나 없이 공간도 없는 공간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 글들이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이미 500만 자가 훌쩍 넘었다. 누군가는 10만 자만 적어도 책을 내고 책을 내기 위해 10만 자를 꾸역꾸역 써내려 가기도 한다.


“근데 왜 책을 내지 않았어요?”


기회가 없었다. 해외에서 살면서 써온 원고들이었다. 해외에서 출판사에 투고도 하고 공모전도 응모했지만 출간의 기회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더 이상 ‘무슨 책 쓰셨어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리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내 책을 내주려 하지 않으면 내가 내면 된다. 그러다 알게 된 ‘심플릿’이었다.

페소아리즘 북 커버

“세상이 많이 바뀌었구나.”


책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쉬운 것인 줄 몰랐다. 이제 글만 있으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상용화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곳이 ‘심플릿’이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그리 어렵지 않은 이용법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지 글의 장르에 따른 양식들 중 마음에 드는 그릇에 나의 글을 담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책은 오랜 시간 마음먹고 준비한 것과는 달리 출판사의 이름답게 심플하게 빠르게 만들어졌다. 물론 이건 이미 원고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는 브런치와 블로그에 산적해 있던 나의 글들을 장르와 테마에 맞게 골라내고 카테고리화시켜서 책의 목적과 색깔 그리고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글이 작품이지만 책에 담겨야만 상품이 된다. 모든 작가는 상품성 있는 작품을 쓰길 원한다. 그건 우리가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 걱정 없이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자에겐 상품이 아닌 작품만 써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실 그런 자들이 글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첫 출간 북토크 in 롯데리아

상품은 말 그대로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에 독자가 더해진 소비독자이다. 독자가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때, 책 표지와 표지의 문구 그리고 책의 목차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책을 판단하는 것과 소비자가 진열대에 전시된 상품의 가격과 포장지에 표시된 정보를 통해 상품을 파악하고 구매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


포장과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이다. 나는 작가이자 또 하나의 소비자로서‘심플릿’을 선택했다. 그건 가격과 속도가 주요한 결정 사유였다. 아쉬운 점은 나는 마케터가 아니다. 작가가 책의 디자인과 구성 그리고 색깔을 입히는 일에 능숙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글을 책으로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그래서 작가는 항상 출판사와 편집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작품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들이다. 심플릿은 작가가 그런 편집자의 큰 도움 없이도 스스로 책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심플릿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모든 작가들의 취향과 색깔을 만족시키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하면서 책이란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달가량의 작업으로 내 생애 첫 책이 탄생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만약 심플릿의 출판 프로세스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들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국 작가와 편집자의 협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글은 원석이고 책은 보석이다. 원석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원석이 가공되지 않는다면 많은 독자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글짓는 목수님”


독서 모임을 하는 친한 지인들과 조촐하게 북토크를 열었다. 유명 작가들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처음으로 내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기분 또한 아마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첫사랑이 영원히 잊히지 않는 것처럼 첫 책도 그런 존재가 되었다.

어린 왕자

“네가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야.”

–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중에서 -


유명작가들이 낸 책과 그 가치를 비교하긴 힘들지만 내 정성과 손길과 시간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너무 소중하다. 그 시간이 가능했던 것은 그 기회를 준 출판사‘심플릿’ 때문이었다. 마음속에만 있던 나의 첫 책 [페소아리즘]은 심플릿 출판사를 통해 현실의 장미꽃으로 피어났다.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꽃이 되었다. 오랜 시간 페소아의 글을 읽고 사유하며 썼던 에세이가 드디어 옷을 입었다. 글을 읽고 쓰고 책을 만드는 그 모든 과정이 나의 역사가 되었다. 그 역사를 남기는 조력자가 되어준 심플릿에 감사하다.


나는 책 없는 작가에서 이제 ‘출간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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