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와 흑백 사이

[만약에 우리]를 보고 난 후...

by 글짓는 목수

"사랑의 부재는 흑백이었다."


흑백은 무미건조하며 무표정하다.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지만 생동감이 없다. 빛과 어둠만으로 세상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 표현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슬픔도 기쁨도 없는 경계에서 서 있는 관조자의 시선 같다. 컬러는 다채롭고 생기 있다. 다양한 색감이 가져다주는 느낌으로 황홀하고 또한 어지럽다. 어둠이 사라지고 하얀빛이 변신하면 세상의 여러 가지 표정들이 드러난다. 기쁘고 설레고 즐겁고 슬프고 화나고 괴로운 다양한 색깔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빛은 사랑이다. 사랑은 프리즘이라는 삶의 시공간을 통과하며 다양한 색깔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 모든 색깔을 다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하얗지만 컬러로 보인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겨울은 창백하다. 회색 빛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의 겨울은 더욱 그렇다. 마음을 데우고 싶었다. 그럴 땐 멜로가 필요하다.

[먼 훗날 우리, Us and Them] 2018

[만약에 우리…], 영화는 ‘먼 훗날 우리’(원제 :后来的我们, 2018)라는 원작을 리메이크했다. 관람평이 아주 좋다. 평일 저녁 한적한 영화관에서 본 멜로 영화는 나의 청년시절로 나의 기억을 되돌려 놓았다. 감미롭고 익숙한 추억의 노래와 영상이 순수했던 나의 대학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회색 빛으로 물들어 가던 나의 가슴에 컬러가 스며들었다. 그 엔딩에 울려 퍼지는 여운이 나를 노래방까지 이끌었다. 감성은 언제나 음악이 필요하다.


영화의 시작은 흑백이었다. 비행기에서 오래전 옛 연인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흑백은 현재이고 컬러는 과거이다. 이 설정이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영화감독은 일반적으로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연출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연출에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되더라. 그리고 그 의도는 영화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영화 관람 후 한 곡, [사랑은 봄비처럼]

흑백은 회색의 도시에서 화려하게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두 남녀의 마음에 사랑이 부재함을 의미하는 듯했다. 울고 웃고 화내고 괴로워하던 청년시절에 둘의 모습은 컬러로 묘사된다. 사랑이 함께 했던 시절이다.


“돌아갈 곳이 없어질 것 같아 무서워.”

– 문가영 (한정원 역) -


정원은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사랑을 두려워한다. 사랑을 인정하는 순간 다가올 미래의 이별을 암시한다. 우정은 멀어져도 돌아갈 수 있지만 사랑은 멀어지면 돌아갈 수 없다. 여자는 그것이 두려웠다. 버려진 존재로 자라온 자(고아)는 그 느낌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예감이 틀리지 않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선택한 둘은 뜨겁게 달아오르지만 뜨거웠던 만큼 또한 차갑게 식어간다.


대학 캠퍼스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자 차가운 회색 빛의 도시와 사회가 그들에겐 크나큰 시련이다. 따스한 캠퍼스의 사랑은 순수할 수 있지만 차가운 도시는 더 이상 그 순수한 사랑을 유지할 수 없다. 차가운 세상의 시련은 둘의 설레고 기쁘던 사랑을 슬프고 괴로운 사랑으로 바꿔간다. 둘은 그것이 사랑이 사라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사랑이 다른 모습으로 색깔을 바꾸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인간은 항상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의 모든 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연히 주변의 시선이 사라진 해외의 낯선 땅에서 만난 둘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의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만약에 우리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 내가 지하철에서 널 붙잡았더라면…?

“그럼 우린 영원히 함께 했을 거야.”


남자는 알고 있다. 잡아야만 했던 순간을… 하지만 그는 붙잡지 않았다. 사랑을 시작하는 타이밍은 알았지만 사랑을 붙잡아야 하는 타이밍은 몰랐다. 우리는 때론 알면서도 그럴 수 없을 때가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다. 삶의 현실은 너무도 가혹해서 우리는 이상의 끈을 놓아야만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너무 많은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

현실의 사랑은 많은 인내와 시련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빛 :모든 색깔)을 사랑하지 못하고 조건(선호하는 색만)에 맞는 욕망을 사랑한다. 하지만 모든 표정과 감정을 품지 못한 감정은 빛의 부재를 항상 느끼게 된다. 왠지 모르게 허전하다. 모든 색이 다 모여야만 순수한 흰 빛(사랑)이 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차가운 회색 빛 도시에서 끊임없이 욕망을 쫓으며 그것이 사랑이라 믿지만 끊임없이 공허함이 밀려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도시에서의 성공은 사랑을 멀리해야만…


차가운 도시의 회색 빛에서 빛나려면 그 도시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성공의 빛은 사랑의 빛보다 더 달콤해 보인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성공을 위해 전념해야 한다. 도시의 빌딩 숲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가 자신의 분야와 직업과 학업에 몰두하며 살아간다. 사랑도 우정도 소망도 접어두고 현실의 성공을 위해 달린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그때에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것을 다시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세상과 현실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자신의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놓아버린 사랑을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이유이다. 현실은 삶은 사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잊히면 흑백 기억되면 컬러이다.


둘은 돌아온 공항에서 마지막 포옹을 나누며 헤어진다. 하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서로가 사랑이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를 미워했던 것이 아니라 그때의 사랑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몸이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닌 마음에 살아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현실의 화면은 다시 컬러 빛으로 바뀐다. 회색 빛으로 물들어 있던 세상이 다시 컬러로 물든다. 사랑이 다시 살아났다.


빛과 어둠만 존재하는 우주 공간은 공허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곳에 너와 나라는 존재(물질)와 물질이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삶의 무대 위에서 빛은 서로를 볼 수 있게 만든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빛이 반짝인다. 어둡게만 보이던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다. 사랑하면 사람이 밝아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물질 세상은 그 사랑을 순수한(흰) 상태로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사랑은 삶을 만나 또 다른 수많은 색깔(감정)들로 분화되어 울고 웃으며 화내고 고통스러워하며 어둠으로 향해 간다. 빛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제 빛의 부재인 어둠으로만 세상을 표현할 수 있다. 다시 우주의 공허함 속에 놓인다. 그곳에서 우연히 다시 너를 만나 하얀빛이 생겨났고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다시 다양한 빛깔로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가?


만약에 우리


P.S.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같은 ‘비’지만 그 느낌이 다를 뿐이다. 이별이 사랑의 다른 모습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인증샷 ㅋ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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