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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05. 2020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인생에서 여행이란 무엇일까?


   연말 시드니에서 멜버른까지 5일간 로드트립을 다녀온 뒤 읽은 [여행의 이유]는 여행 뒤에 읽어서 일까 밀려오는 공감은 상당히 위력적이다. 저자의 여행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김영하' 그의 단편 소설 [옥수수와 나]를 읽은 적이 있다. (서평도 적었다.- 링크 참조) 그의 독특한 문체를  경험했다. 이 에세이(산문)를 읽고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주제로 쓴 책 속에는 그의 과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 편의 자전적 회고록 같은 느낌이다.

김영하 작가

김영하와 나


   주제넘은 건진 모르겠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우연찮게 저자와 나의 적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했다. 책 속에서 발견한 것도 있고 궁금해서 찾아본 그의 인터넷 호구 조사를 통해서 알아낸 것도 있다.


   그는 나와 동갑(띠동갑)이다. 같은 성씨(金)다. 피가 같다(B형). 안경을 썼다. 유년시절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녔다. 삼국지(KOEI) 게임에 중독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글쓰기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뒤늦게 우연한 계기로 글쓰기에 입문). 어린 시절 오랜 기간 개를 키웠다. 가족과 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다. 소설(에세이도 포함)을 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여행을 대하는 그의 생각과 태도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우연의 일치겠지만 현재 글쓰기에 심취해가는 나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가 나랑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 기분 나쁘진 않다. 이전까지 국내에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손꼽을 만한 인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 그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잘 읽히는 글은 무엇일까?


  바로 내가 쓴 글이다. 내가 쓴 글은 조사(助詞) 하나하나까지 그 느낌이 전달될 정도로 깊이 있는 읽기가 가능하다. 과거 연애편지를 적어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편지 속에 적은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읽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모든 문장이 기억될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과 기억력이 동원된다.


   나 또한 내가 쓴 글을 퇴고할 때 그 느낌을 받는다. '여기 조사를 이렇게 바꾸면 느낌이 어떨까? 의문문으로 하면 좀 더 여운이 있지 않을까' 등등 내가 쓴 문장의 전체에서 세부까지 술술 읽히며 그 의미와 느낌 또한 생생히 전해진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내가 쓴 글처럼 잘 읽힌다. 그의 문장은 뭐랄까? 내가 꼭 듣고 싶었던 혹은 들었을 때 '와!'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문체이다. 나도 글을 쓸 때 사건(경험)이나 현상 혹은 팩트를 서술한 후 그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메시지나 생각 혹은 또 다른 연결을 이끌어내는 식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의 주관적이고 편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시도가 나의 글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는 인간

인간은 왜 여행할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 나가는 여행객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14억 명 돌파, 18년 기준) 인류(사피엔스)는 유인원과 97%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런데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의 활동량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떨어진다. 유인원은 한 지역에 머물며 무리들끼리 몸에 붙은 이나 잡아주며 낮잠을 자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만약 인간이 그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각종 대사증후군과 심혈관 질환 등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다. 러닝 머신 위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가지도 않는 길을 반복해서 뛰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의 역사는 이동의 역사였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구의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인간에게는 탁월한 이동 능력과 끈질긴 지구력이란 유전자가 심어진 것이다. 농경시대가 시작되고 뱃살이 생기기 시작한 건 불과 일만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의 출현이 20만 년 전인 걸 감안하며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다. 이동하는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정착 생활 속에 갇힌 이동의 본능이 여행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여행 자체가 인생이었던 것이다. 현재도 유목생활을 하는 소수의 원주민들은 그 본능을 십분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여행은 항상 예측 못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저자 또한 그걸 강조한다. 알 수 없다. 떠나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기대된다. 약간의 두려움과 걱정도 없진 않지만 그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시드니에서 멜버른(캔버라, 그레이트 오션 포함)까지 왕복 2,400km 넘는 로드트립(자동차 여행)은 예상치 않게 계획되었고 동행자 역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시작부터가 우연이었고 그 과정도 온통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겪은 실망과 갈등 또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행운이 여행자의 기분을 수시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은 일종의 도망 행위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들 얘기한다. 그건 여행의 표면적인 목표일 뿐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을 벗어나려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는 이유는 일상이 고통과 연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익숙한 일과 인간관계 속에는 익숙한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그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 고통을 피하려는 행위가 바로 여행인 것이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이 있다. 도망치는 것 또한 일종의 전략이다. 인생은 짧지 않다. 강력해진 고통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면 비겁할지라도 잠시 현실을 도피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 모른다. 정공법을 통한 전면전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여기 먼 타국 땅에서 현실을 벗어나 장기간의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어떤 일이 멀어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옛 과거 사피엔스의 변화무쌍한 능력을 재발현(發現) 중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계속 변해가고 인간도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정주하는 인간보다는 이동하는 모바일 휴먼(Mobile Human)이 미래형 인간이길 바라본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처럼...

작가는 여행 중

작가는 항상 여행 중이다.


  여행과 글쓰기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특히 소설을 쓰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저자는 수많은 소설을 써오면서 그것을 경험했고 나 또한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이 여행은 아닌 것이다. 오감으로 받아들인 정보는 결국 뇌를 거쳐서 인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뇌 속에서 내가 새로운 세상과 인물을 만들어내고 여행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면 뇌는 그것을 여행으로 인지하게 된다. 다른 점은 현실의 여행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머릿속의 여행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사실 오랜 시간 글을 쓰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체험 하게 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고 또 그 경험이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는 현상을 뇌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여행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평생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글을 쓰면서도 여행을 하니 인생 자체가 여행이 되어버린다. 과거 사피엔스가 평생을 여행하며 생을 마감한 것처럼 작가도 몸과 머리로 평생 여행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여행과 글쓰기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물론 저자처럼 전업 작가로서 생계유지가 되어야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여행은 나를 현재에 잡아둔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밥을 먹으면서, 샤워를 하면서, 잠자리에 들면서 과거와 미래에 얽매인 상념들로 고통받는다. 여행을 떠나면 그 상념들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당장 내비게이션의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고 지금 눈앞에 닥친 돌발 혹은 위기 상황들을 헤쳐나가야 하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로부터 숙식과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여행 후 찾아오는 후유증은 견디기 쉽지 않다. 현재에만 머물던 나를 다시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는 상황 속으로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서

타인을 통한 여행


   생계와 일상에 얽매인 현대인은 수렵인(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행하는 원초적 본능을 충족시킬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통한 간접적인 여행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독서이다. 책은 한 인간의 머릿속을 여행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많은 인간들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책을 통해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돈과 시간을 최소화하는 가성비 최고의 여행이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24시간, 1달, 혹은 1년의 경험을 단돈 1만 원도 되지 않는 돈과 몇 시간으로 엑기스만 뽑아서 여행할 수 있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다양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 다른 인생을 많이 경험한 이는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타인을 삶과 생각을 공감하기 힘들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 영역 안에서 아집과 편견 속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다가 떠난다. 한국 사회가 양극화, 분열, 혐오로 가득한 것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는 즉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독서가 생활화된 북유럽의 국가(핀란드 - OECD 가입국 중 독서율 세계 1위)들에선 한국과 같은 심각한 사회 분열과 혐오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은 그 나라의 경쟁력이다. 그 밑바탕에는 독서가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독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달에서 본 지구 - 출처 NASA -

지구별 여행자


   인류는 여태껏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45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고작 100년도 채 살지 않고 사라지는 여행자에 불과하다.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여행자는 다음 여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듯 보인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채워가는 인류는 결국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다음 여행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줘야 할 여행지(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청정지역이라 자부하던 여기 호주도 현재 온통 불바다가 되어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다. 이상 기온과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극심한 가뭄으로 국가적 재난 사태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자연 재앙은 결국 인간에서 비롯된 것이고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진 속 푸른빛을 띠고 있는 맑고 영롱한 지구는 조금씩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지구별에 여행 온 사람일 뿐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은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법이다. 여행자의 정신을 탑재해야 한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 되는 순간 어떤 재앙이 닥칠지 알 수 없다.

방랑자

방랑자의 삶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인용해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소중함을 얘기한다. 그림자는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 그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없어지면 사회적 존재(성원권)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그림자를 잃고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려는 소망을 버리고 방랑자로 세계를 떠돌며 산다.


   여기서 얘기하는 그림자는 돈, 명예, 권력, 인맥 등등 인간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닐까?(저자의 생각과는 다른, 소설 속 주인공은 돈을 위해 그림자를 팔았다) 인간은 그 잡히지 않는 가치에 얽매여 그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평생 발버둥 친다. 그것이 없어지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소외받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한다. 만약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방랑자(여행자)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존재는 그림자가 없다고 고통받지 않는다. 저자(김영하)는 그런 방랑자의 삶을 동경하는 것 같아 보인다. 소설가로서 사람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찾기보단 그 세상을 바라보는 관조자(觀照者)의 태도로 살아가길 원하는 것 같다. 관조하며 기록하는...


인생은 여행이다


   삶을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지나간 과거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쌓아두고 사는 삶은 무겁다. 여행자는 가벼워야 한다. 무거울수록 그곳에 안주하는 법이다. 쌓아두는 삶 속에서 내 것을 뺏기지 않고 더 가지려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역사는 전쟁과 약탈로 얼룩져 왔다. 물론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은 이렇게 발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않는다.


   인간은 과거 여행을 통해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이제 미지의 우주를 향한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찾으려 하는 것 같다. 현재의 여행지(지구)가 허락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국 계속 여행할 곳을 찾아다니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라는 여정을 시작하는...


   책은 여행이라는 주제로 인간의 외면과 내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통찰력과 깊은 사고가 돋보인다. 여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여행을 기대한다. 아니 현재 지금도 글을 쓰며 여행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인간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책이다.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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