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려 기다리던 호주 시드니의 기차 플랫폼 위에서 내려다본 바닥의 주의 문구(MIND THE GAP)을 보고 문득 생각이 떠올라 몇 글자를 덧붙여 보았다. 플랫폼과 기차 사이의 갭이 크면 위험하듯이 너와 나의 간격도 멀어지면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얼마 전 읽고 있던 책의 내용과 연관성이 깊어 그 사진을 삽입해 보았다.
세대차이(Generation gap)는 시대를 떠나 항상 존재해 왔지만 지금처럼 세대 간의 거리가 멀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대차이를 극복하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의 살아온 관점에서 다른 세대를 바라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다른 세대가 살아온 세상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며칠 전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다. 90년생이면 한국 나이로 서른(2019)이다. 90년 대생들은 이제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들이다.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 대부분이다. 책은 90년대생들이 사회로 편입되면서 겪는 기성세대들과의 마찰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잘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9급 공무원이 향한 90년생
노량진 고시촌 가득 메운 대부분이 90년생들이다. 그들은 공무원 고시에 목을 맨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걸까? 많은 기성세대들은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그들을 나약하고 도전정신이 사라진 세대들이라며 손가락질한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며 혀를 찬다.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90년생들은 70년생들의 IMF 외환위기(97년)와 80년생들의 글로벌 금융위기(08년)를 지켜보며 성장해 왔다. 사상 최악의 저성장과 고용 불안정의 시대를 맞이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기업은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일삼고 비정규직의 정상화 속에 그들이 선택한 길은 성공이 아닌 생존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나은 삶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더 이상 기업은 그들의 미래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청년의 성장이나 미래의 이익보다는 현재의 이익과 실적이 우선시된다. 신입보다는 경력 위주의 채용을 선호한다. 더 이상 과거 인력개발원의 역할을 자처하지 않는다.
과거 내가 첫 직장에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글쓴이는 80년대생) 신입을 교육시켜 인재로 성장시키는 것이 기업의 역할처럼 여겨지던 시기다. 기업과 사람이 같이 성장하던 시대였다. 이제는 실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고 바로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인력을 원한다. 신입사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그저 비용일 뿐이다.(대기업들이나 정부 눈치를 보느라 마지못해 공채 신입을 뽑는 형국) 기업은 대리 혹은 과장급의 실무 경력자들을 선호하며 그들이 취업시장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90년생들은 언제 내던져 버려질 환경 속에 그들의 인생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 세대들이 겪어온 기업 내 부조리와 불합리를 충분히 들어왔고 수긍하고 싶지 않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대기업과 공무원만 선호하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어차피 힘들 거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안정이 담보되어야 한다. 힘들고 수입도 적으며 안정도 담보되지 않은 중소기업은 그들에게는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워라밸, 주 52 시간 등의 그들이 우선시하는 가치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도 힘들지만 중소기업이라면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
대기업이나 공무원은 퇴직 후 갈 곳 또한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대기업 출신이나 간부나 고급 공무원은 퇴직 후에도 인맥이나 협력업체 등에서 모셔가는 경우가 많다. 그의 인맥과 정보가 경쟁업체 혹은 협력업체(중소기업)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애 직장에서의 근무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중소기업이라면 갈 곳은... (본인이 창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당신을 환영할 회사가 많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금 청년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탓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정경유착(대기업과 정치인)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은 그저 대기업 하청일뿐이며, 이익은 대기업으로 흡수되고 개발된 기술이나 고급 인력은 대기업에 착취당하는 구조이다. 난 그런 현실을 지난 10여 년간 현업에서 보고 겪어왔다.
간단함을 좋아한다.
나에겐 사촌동생들이 많다. 90년생들이 많다. 녀석들과의 대화에서 당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나를 노땅이라며 놀리는) 녀석들이 쓰는 단어들이 의미를 도통 알아채기 힘들다. 축약하다 못해 자음 초성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세대가 90년생들이다. 세종대왕님이 아신다면 거품 물고 쓰러지실 노릇이다. 그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온 첫 세대이다. "투자 대비 회수"라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손안에 쥐어진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들은 빠른 시간에 많은 정보를 소화해내어야 하는 시대를 살아온 결과이다. 10분 이상 장문에 쏟아부 울 인내심은 이미 바닥났다.
이 점은 많은 기성세대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의 뇌는 책을 읽을 수 없는 뇌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콘텐츠를 장시간 집중해서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 길러질 리 만무하다. 필요한 팩트와 정보만 추출해내는 서칭 능력에만 집중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원제 : The Shallow>에서 니콜라스 카는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와 소셜미디어는 청년들에게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뇌를 만들어 간다고 우려한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너무 생각이 많은 기성세대들보단 차라리 단순한 것이 나을 경우도 많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 복잡한 세계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재미를 추구한다.
병맛?! -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 나도 노땅이 확실한가 보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들의 '병맛' 문화는 왜 생겨났을까? 저자는 저성장과 경기침체 속에서 자기 비하에 빠진 청년층이 스스로를 병맛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전무결함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요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실증일까? 아님 획일화된 교육 현실 속에서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길만을 따라가는 것에 대한 반항일까? 비범한 인물의 성공 스토리는 이제 그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지겹다. 허술하지만 뼈가 있는 어색하지만 당연한듯한 병맛으로 세상에 외치는 자들이 인정받는 시대다. 저자는 박준형의 <와썹 맨>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외국에서 자란 그의 말과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결코 그냥 웃어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콘텐츠를 사랑한다. 일단은 재미있어야 한다. 교과서나 대학 전공서적 같은 지식은 더 이상 전달되지 않는다. 풀어서 재미있게 핵심과 요점만 추출해 콘텐츠로 만들어 내어야 한다.
정직함을 요구한다.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을 거부한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이미 신물이 났다. 70년생은 그런 시스템에 빨리 순응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 믿었고, 80년생은 그런 시스템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표현할 수 없었던 반면, 지금 90년생들은 정면으로 그것을 부정하고 철저히 개인에게 맡겨졌던 정직이라는 가치를 사회 시스템화 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성세대들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기성세대 고위층(정치인, 기업인)들이 보여왔던 언행의 불일치에 질려버린 것이다. 공정과 정직을 강제시킬 시스템을 요구한다.
그들은 회사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부당함을 속으로 삭히며 쓴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과거 회사 생활 중 빠질 수 없는 추억이 회사에서 당한 부당함을 늦은 밤까지 동료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풀었던 기억이다. 덕분에 뱃살과 고지혈증을 남기는 부작용을 초래했지만...) 그들 때문에 난처한 건 가운데 끼여있는 80년생들이다. 정부의 주 52시간 시행과 기업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가장 큰 수혜자는 90년생들처럼 보인다. 가운데 중간 관리자(대리, 과장급)인 80년 생들은 시대의 변화에 선두에 선 90년생들과 꼰대(60년생, 임원 혹은 경영진) 문화를 떠 받들고 있는 70년생 고급 관리자(차장, 부장)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위에서 해왔던 방식대로 90년생들을 다룰 수도 없다. 다뤄질 리도 만무한 것이 그들이다.
과거 회사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일 때 가장 힘든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밑에 직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이었다. 위에서는 밑에 직원들을 강압적인 방식(그들이 해왔던)으로 대신 통제해주길 바랬지만 주 52시간, 워라밸 등을 주창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그 방식을 강요할 수 없다. 퇴근시간에 퇴근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세대는 정시에 퇴근하려는 그들을 이해해야만 하는 변화가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그들을 무시하면 서서히 죽어간다?!
90년생들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주요 소비계층으로 등장하고 있다. 면전에서 얼굴 붉히며 불만과 환불을 요구하지 않는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발길을 끊어버린다. SNS와 메신저로 반격한다. 기업과 생산자는 영문도 모른 채 서서히 죽어간다. 그들을 호갱으로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치게 된다. 정직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는 기업은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광고도 하지 않는 스타벅스의 매출(17년 기준, 1조 2634억)이 국내에서 다른 커피 업체(투썸, 이디야, 커피빈, 엔젤등)들을 다 합친 매출(8200억) 보다 더 크다. 왜일까? 인간에 대한 인사이트로 브랜드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닐까?
90년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 시대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든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자라온 90년생들에게 이제 와서 왜 요즘 애들 이 모양이냐 고 말하는 격이다.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 스티브 잡스 -
스티브 잡스가 졸업 연설 때 했던 말이다. 지금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머지않아 시대의 뒤편으로 물어 나고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세상은 또 다른 세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전 세대는 지금 세대의 거울이다.
거울을 바라보라!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조금이라도 부끄럽다면 그들(90년생)에게 손가락질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