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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20. 2019

숨어서 하는 이야기

[인생 학교 - 섹스편] 알랭드 보통

  섹스는 왜 숨어서 할까?


   호기심은 자주 나의 생각과 행동을 엇갈리게 만드는 것 같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보려고 마음먹었던 책은 뒤로 한채 섹스를 주제로 한 책(인생학교-섹스)이라... 호기심은 바로 풀어야 병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호기심은 풀었는데  쓰려니 난처함을 피할 길이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성인 비디오를 훔쳐보는 그런 느낌이랄까? 주변에서 누가 볼까 몇 번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서야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다른 이가 볼까 다른 책으로 덮어 구석진 곳으로 간다. 성인 비디오를 빌릴 때랑 별반 다르지 않다. (비디오 대여 너무 오래전인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돈, 일, 사랑, 가족 등등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는 서로가 항상 같이 고민하며 의견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섹스(Sex, 性)에 대해서만은 같이 들어내어 놓고 고민하는 주제가 되기 힘까? 그건 아마 섹스라는 행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며, 이것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몇 백 년간 이어져 온 유교적 가치관에 빗대로 볼 때 나를 저급스럽고 수치스러운 인간으로 낙인찍혀 버릴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섹스에 관해서는 내 것은 알려주기 싫지만 또 남의 것은 은밀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떠올리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조물주가 아담과 이(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할 때 벌을 내렸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육체를 부끄러워하는 수치심이라고 한다.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장 창피한 곳을 상대방과 공유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존재하며 그것을 극복해야만 한다. 일상에서의 규범화된 정상적인 자신의 모습으로는 섹스에 임할 순 없다는 말이다.


  사랑과 섹스는 따로국밥?!


  남녀가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의 마음이 항상 일치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남녀 간에 항상 엇갈림이 생긴다. 한쪽은 사랑을 갈구하고 한쪽은 섹스를 갈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을 원하는 자는 사랑을 얻기 위해 섹스를 허락하고 섹스를 원하는 자는 섹스를 위해 사랑을 원하는 척해야만 하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사랑과 섹스를 따로국밥처럼 주문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금기시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불티나게 팔리는 시대이다.

 

   비라그라의 발명은 세상에 많은 섹스리스(Sexless) 부부들과 커플들을 구제해 줬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욕실에서 몰래 숨어 알약을 삼키면서까지도 남성성을 되찾고자 하는 수컷들의 갈망은 멈추지 않는다. 저자(알랭 드 보통)는 주장한다. 발기불능은 여자에 대한 지나친 존중이 병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섹스는 성폭행이 되었다. 옛날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남편은 이제 설자리를 잃었다. 이 시대가 원하는 남편은 가사와 육아에 충실하고 배우자의 의사를 항상 존중하면서 가장으로서 리드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사회적 표준이 강박관념이 되어 침실에서까지 심리적인 부담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성(理性)이 지배하는 중압감이 침실에서 감성과 욕정을 분출을 억제하는 것이다. 


"가족끼린 그러는 거 아니야~"


  부부 중 누가 관계를 시도하려 하면 방어할 때 자주 쓰이는 멘트라고 한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되면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리는 뼈 있는 말이 오고 간다. 웃프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근친상간의 금기가 배우자와의 성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형제, 가족, 친척 들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자라왔다.  그런 사랑하는 자들과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철저히 금기시되어 왔다. 그것이 결혼 후 가족인 배우자의 성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얘기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섹스를 즐기는 것은 금기라고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섹스는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사랑과 욕정의 두 가지의 가치는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기 힘들어 보인다.

  얼마 전 본 영화 [Zoe]라는 영화가 잊히질 않는다. 인공지능과의 사랑이라는 주제의 이 영화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육체를 가짐으로써 인간은 사랑(정신적)과 욕정(육체적)을 동시에 해결하려 한다. 인공지능은 나에게 맞춤형으로 나의 감정과 욕정을 가감 없이 받아준다. 과학 문명의 눈부신 발전 남녀관계의 어려움을 결국 AI 로봇으로 대체하려 한다.

   

 나에게 맞는 이성을 찾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로봇처럼 때와 장소에 맞춰 그때그때 사랑을 하고 욕망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 과연 성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남녀의 공간을 따로 구분 지을 필요도 없어진다. 화장실, 목욕탕 등이 다 공용이 되어버릴 것 아닌가? 확실히 암컷과 수컷이 끌림이 없다면 많은 골치 아픈 일들이 사라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범죄, 성매매, 포르노, 패션, 의학, 유흥 등 하지만 너무 무미건조해지지 않을까? 성욕은 종족 번식을 위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욕구다. 이 본능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인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과학을 통해 신이 만든 세상을 계속 바꿔가고 있다. 과연 계속 바꿔도 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남녀간의 은밀한 섹스마저 관계의 정상화가 아닌 과학의 발전으로 해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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