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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8. 2019

앙상한 나무는 누구일까?

[채식주의자] 한강


  한국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노벨, 콩쿠르) 중에 하나인 맨 부커상(영국)을 수상한 이력만으로 크게 화제가 된 소설이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서 토론회에서 선정한 도서였다.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았다. 내 머리가 나쁜 건지 책이 너무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선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해설서가 필요한 책이다. 문학상의 평가 기준이 난해함인가 싶을 정도이다. 읽을수록 흥미에 빠져드는 소설이 아닌 읽을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작품성이 너무 뛰어나면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리인 것 같다.

 

화려한 수식어로 가득한 소설!


  "국어국문학" 저자의 전공이다.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느꼈다. 저자의 전공을... 책 속을 뒤덮은 미려한 수식어들과 섬세한 묘사 구절들이 저자가 국문과의 필력 있는 소설가라는 것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받았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책 속에 꽁꽁 숨겨놓고 독자들로 하여금 찾아보라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장황한 수식어 구들은 내가 책의 핵심 줄거리를 파악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너무 많은 수식어 구들로 인한 내용 전개가 더디다는 것도 성질 급한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나는 문학적인 감각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세 가지의 시선


   소설은 채식주의자인 영혜와 영혜 남편, 영혜 언니 그리고 형부(영혜 언니의 남편) 이렇게 4명의 핵심 인물들로 구성된다. 영혜를 제외한 영혜 남편, 영혜 언니, 형부의 3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시작은 영혜가 꿈을 계기로 채식을 시작하면서 전개된다.  영혜의 채식이 온 가족의 불화를 불러일으킨다. 채식으로 인한 남편과의 불화가 부모의 개입을 통해 전 가족으로 퍼지게 되고 영혜는 전 가족이 보는 앞에서 칼로 손목을 긋는 지경에 이른다.  영혜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고 그런 남편은 그런 영혜를 버린다. 그리고 형부(영혜 언니 남편)가 접근한다. 예술가 형부는 영혜를 예술인지 외설인지 모를 세계로 끌어들여 둘의 관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인혜(영혜 언니) 충격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영혜는 다시 정신병원으로 감금된다. 그리고 영혜는 병원에서 자신이 나무라는 착각 속에서 심각한 거식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채식의 나비효과?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한 여자의 채식으로 인한 온 가족의 파멸?! 난 왜 영혜가 채식을 하게 된 것일까부터 접근했다. 왜 갑자기 채식을 하게 된 걸까 어릴 적 자신을 물었던 개가 아버지에게 처참하게 희생되어 개 국밥이 되어버린 죄책감 때문일까? 많은 꿈 내용들이 나오지만 난해하다. 나에겐 강한 설득력은 없는 듯하다. 왜 온 가족을 풍비박산 내면서까지 채식에 거식까지 나중에는 자신이 나무가 될 거라는 망상에 빠지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저자는 거기에 대한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되었으니 그 이후에 변화와 결과에만 집중한다.


 이 총체적인 파국 속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인가?


  책의 표지엔 네 그루의 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중에서 뒷 표지의 한 그루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메말라 가고 있다. 독서 토론에서 한 관찰력이 뛰어나신 분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얘기를 꺼냈다. 그냥 무심코 지나갈 뻔했던 책 표지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앙상한 나무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채식주의자

  인혜(영혜 언니)가 아닐까? 현실의 삶 속에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회적 규범에 어긋남 없이 꿋꿋하며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온 여성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무책임한 남편과 동생과의 불륜을 지켜봐야 했으며, 동생의 죽음까지도 지켜봐야 했다. 그 속에서도 가정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견뎌낸다.  


  영혜는 자연인(나무가 되려는)으로, 남편은 예술인으로, 영혜 남편은 직장인으로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대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혜는 현실에서 가장 발버둥 치며 살아온 인물이지만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자들은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지만 인혜는 현실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과 현실에 순응하면 할수록 행복해질 수 없는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꿈꾸었지만 자신은 가장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난 그저 채식이라는 그냥 단순한 한 여자의 식습관의 변화가 가져온 이 엄청난 파급효과가 놀랍다. 왜 그 사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않고 남과 다르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바꾸려 드는 것일까? 그녀의 변화를 수긍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행동들이 결국 한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다.

  

  세상의 정해진 관습과 규칙을 따르며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속에서 세상이 정해준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은 잃어버린 채...


  작가의 화려한 문장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특히 성적 묘사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리얼함과 디테일함에 나도 모르게 다리를 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생동감과 몰입감을 가져왔다. 처음엔 애로 소설인가하는 착각에 빠졌다. 여러 소설에서 느낀 점이지만 남녀 간의 섹스는 작가의 생각과 묘사력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원작의 느낌을 살리지는 못한 졸작이 되었다.나에게는 조금을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인 것 같다. 숨겨진 책 속의 메시지를 찾긴 쉽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와 숨바꼭질을 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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