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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31. 2019

내 안에 주부 있다?!

혼자 하는 즐거움

   
  휴일 이른 새벽 들뜬 눈을 비비며 아직은 쌀쌀한 공기를 헤치고 수영장으로 향한다. 한적한 50m 야외 수영장에 몸을 담그기까지 몸속 온기와 대기의 냉기가 치열하게 서로를 밀어낸다.


   '풍덩' 물속으로 뛰어든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모든 세포가 한순간에 느껴진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손발을 휘젓다 보면 체온과 수온이 평형을 이루고 내가 물 속인지 물이 내속인지 모르는 하나가 된다. 겨드랑이부터 사타구니까지 구석구석 빈틈없이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수면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제비가 수면 위를 저공비행하며 여름이 멀지 않음을 알려준다. 멀리 눈부신 태양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비친다.

Swimming pool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 냉수 샤워로 마무리한다. 오랜 나의 습관이다. 냉수 샤워는 정신을 맑게 하고 면역을 올려준다. 기분이 한결 상쾌하다. 불어오는 상쾌한 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페달을 밟는다.

 이 환경이 좋다.

  완연한 봄 날씨다. 세탁기 뚜껑을 연다. 섬유유연제의 은은한 향이 콧 속으로 스며 올라온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빨래를 널고 있다. 구김 없도록 탈탈 털어서 외투, 바지, 셔츠, 수건, 속옷, 양발 종류별 가지런히 정렬해서 널어놓는다. 정리할 때 편하다. 때론 방에서 묵은 이불도 가지고 나와 빨랫줄에 널어놓고는 작대기를 주워다 복날 개 패듯이 힘껏 후려친다.(표현이 서정적이지 않네... 지울까?!) 먼지가 하늘로 피어오른다

Dandelion seeds with laundry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호호 불어 마시며 햇살의 온기를 먹고 뽀송뽀송 말라가는 빨래들을 바라본다. 뿌듯하다. 노곤함과 평안함이 밀려온다. 땅바닥엔 솜사탕처럼 솟아오른 민들레 씨앗 뭉치가 나에게 불어달라고 하늘거린다.

   이 기분이 좋다.

"오늘은 뭘 해 먹지?"


   주방으로 들어온다. 냉장고를 열어 쓰윽 훑어본다. 쓸만한 재료를 하나씩 끄집어낸다. 뭘 먹을지 정해놓고 만들지 않는다. 재료를 보고 뭘 만들지 결정한다. 식탁에 펼쳐진 재료 조합을 잠시 고민한 후 아침 메뉴를 선택한다. 레시피는 유튜브 조회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스캔한다. 재료를 썰고 다듬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냄비엔 물을 끓인다.

materials for cooking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재미있다. 어떤 맛이 나올까? 잡념도 없다. 뭘 좀 더 넣지? 주방엔 조금씩 요리의 향기가 윤곽을 잡아간다. 항상 양이 좀 많다. 허기진 배는 항상 질량 조절의 가장 주요한 실패 요인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 반을 덜어낸다. 두 끼가 해결되었다. 나머진 예쁘게 접시에 올려놓으면 준비는 완료된다.

pasta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나면 이제 음미할 시간이다. 식탁에 앉아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을 감상하며 한입 한입 깊이 음미한다. 맛은... 음... 갈수록 좋아진다.
  사람이 성장하듯이 요리도 성장한다.

   이 맛이 좋다.


  나들이 가기 좋은 날씨다. 집을 나선다. 바람에 날려오는 꽃향기를 느끼며 페달을 밟는다.
  드넓은 잔디가 펼쳐진 공원 나무 그늘에 자리 잡으면 넓은 잔디의 면적만큼 내 속이 비워지는 기분이다. 한국은 한 치 앞도 막혀있어 비우려면 바다로 가야 한다. 비워진 속은 다시 채워야 하는 법이다.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놓는다. 음식은 본연의 맛보다도 장소와 상황이 만들어내는 맛이 더 오래 남는다. 거기에 좋은 사람이 같이 하면 더할 나위 없다.

in the park

  채워진 배의 포만감은 싫지 않은 나른함을 불러온다. 팔에 힘이 풀린다. 읽던 책의 글자들이 얼굴을 덮는다. 엄마 품 속 젖을 물고 잠든 아이처럼 푸근함과 따스함 속에 파묻혀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이 느낌이 좋다.

  해가 뉘엿뉘엿 옆구리를 넘어가고 있다. 따스하던 햇살은 온기를 잃어가고 붉게 물든 수줍은 얼굴을 감추려 한다. 가방을 둘러메고 다시 달린다.


  "다음 주는 뭘 먹나?"

shopping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다. 마트 나들이는 나의 오랜 취미가 되었다. 1~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평소에 하지 않던 걷기 운동은 마트 안에서 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시간이다.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영어사전을 검색하며 단어 공부는 덤이다. Half price (반값 세일) 품목들은 놓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한 품목이 반값이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과소비 않는 알뜰 소비족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은 구입목록보다 많은 것들이 물건들이 장바구니에 들려 있다.

"그래도 싸게 샀으니까 뭐"

스스로를 위안하며 집으로 향한다. 마트는 운동과 공부와 고민의 공간이다.

 이 공간이 좋다.


 집으로 돌아와 뽀송한 빨래와 이불을 걷어 방안을 정리한다. 봐온 장을 냉장고와 찬장에 채워 넣을 땐 허전한 나의 마음도 같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오늘 산 재료들로 내일은 또 뭘 해 먹을까 고민하며 오늘의 생각과 느낌을 적어 내려간다.

  나의 매일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전업 주부의 체질인가? 미키마우스 수면바지를 입고 방바닥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보면서 손은 쉬지 않고 마늘을 까고 있다. 온 방이 마늘 향으로 가득하다. 베어든 향은 며칠 동안 사라지지 않고 방안을 맴돈다.
 
"오빠는 내가 필요 없을 거 같아~"

   과거 여자 친구의 뼈 있는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 없이도 너무 잘 지내는 모습이 서운해서였을까?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를 많이 찾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먼저 나를 찾았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온 나의 삶에 익숙해진 것일까? 곁에 누가 있어도 모든 걸 혼자 하는 습관이 베어버렸다. 독립심을 키운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활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의 이유를 사라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기쁨이 함께 하는 기쁨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외로움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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