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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02. 2019

언어는 체험학습이다

짧은 중국어의 추억

   2004년 여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전역 후 학교로 돌아왔다.  전역 시기가 3월 중순이라 1년 동안 원치 않은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사회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경험한 후의 복학이었다.

   돌아온 캠퍼스는 온실 속 같은 느낌이랄까? 벚꽃 만발한 봄날에 꽃다운 여대생들의 웃음으로 가득 찬 캠퍼스는 어디에서도 사회 속의 냉혹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난 그런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군대 가기 전 받은 학사경고와 구멍 난 학점은 나에게 큰 시련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당시 중문과였던 난 중국어라곤 '니하오' 밖에 몰랐다. 2학년부터는 전공수업이 대부분이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2학년 후배들은 이미 초급 중국어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시급했다. 어떻게든 이런 나를 구제해줄 도움이 필요했다.

"니츠판러마?(밥 먹었니? 你吃饭了吗?)"
"뭐? 이 쌔끼가 어따 욕이고!"
"헐~ 쯧쯧"

  친구는 혓끝을 차며 안타까운 건지 혐오하는 건지 모를 눈빛으로 나를 꼬나본다. 학사장교를 준비 중인 과동기 친구였다. 4학년 마지막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녀석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   

"좋아!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대신 이제 점심 밥값은 네가 책임지는 거다. 오케이?"
"점심 밥값... 그.. 그래 ok"
  
  그렇게 과외가 시작되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강도 높은 방식을 나를 트레이닝시켰다. 처음엔 발음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며 중국어의 4개 성조를 2주에 걸쳐 연습시켰다.  그리고 당시 중국어 초급 교본이라 불리던 "301구"를 주며 매주 2과 씩 외우도록 했다.

301구

아침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부터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도 항상 교재 mp3 무의식적으로 듣고 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남아 매일 "301구" 교재를 외웠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게 처음이었다. 복학한 그 학기에 성적 장학금을 탔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과에서 성적 우수자에 한해 방학 중 단기 어학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북경의 자매결연 학교라 저렴한 비용으로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장학금도 탔고 반년 동안 갈고닦은 중국어를 현지에서 써보고 싶었다.

북경대외경제무역대학

   북경의 대외 경제 무역대학 (北京对外经贸大学)이었다. 북경의 여름은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더위를 선사해주고 있었다. 20명 남짓한 단기 연수생들은 기숙사에 자리 잡고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한 달간의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오전엔 원어민 교사 수업이 진행되고 오후는 자유 시간이다. 학교 측에서 중국 재학생(辅导, 학습도우미)을 한 명씩 엮어주었고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나 공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중국 친구들과 학교 주변에서 놀면서  공부했다.
  
  난 혼자 돌아다녔다.

 모험심이 발동한 것인지, 아님 자신감이 넘쳐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방과 후 캠퍼스와 캠퍼스 밖을 혼자 돌아다녔다.
  사실 학교 측에서 소개해준 중국 학생들은 대부분이 한국어 전공자들이었고 그들의 한국어 실력은 우리보다 뛰어났다. 내가 중국 말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같이 있으면 한국말로 얘기하고 밖에 나가선 그들이 나의 통역이 되어 주었다. 친구는 될 수 있었지만 스승이 될 순 없었다.
  
  혼자 다니면서 많은 돌발 상황들이 생겼다.

"칭원 이샤~(말씀 좀 묻겠습니다. 请问一下?)"

  길을 묻는 나의 물음에 난데없는 여성의 뺨 세례를 받기도 했다. '칭원이 샤' 성조를 잘못 발음해서 "请吻一下(키스 좀 할게요)"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기관총처럼 귀를 뚫고 지나가는 그녀의 총알 같은 말들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번은 캠퍼스를 걷다가 배에서 신호가 왔다. 캠퍼스 지리를 잘 모르는 나는 어디에 화장실이 있는지 몰라 지나가던 학생을 붙잡았다. 그런데 화장실이란 중국어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따비엔 먼코우 쟈오지!(大便门口着急,똥 입구가 급해요)"
"하하 하하"

  내 말을 들을 중국 학생은 배를 잡고 쓰러지는 게 아닌가 난 어쩔 수없이 생각나는 단어를 조합해서 나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웃긴 추억을 안겨주었다.  

   캠퍼스의 밤은 유난히도 어두웠다. 전기를 아끼려는 건지 밤에 캠퍼스를 돌아다니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무더운 여름밤 시원한 맥주가 댕긴다. 묵찌빠의 희생양이 되어 숙소 대표로 캠퍼스 밖에 상점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지나는 길이 워낙 어두워 손전등을 들고 다녔다. 길 옆 숲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인기척은 다시 여자의 가느다란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로 바뀌었다.

"요런 마? (有人吗? 사람 있어요?)"
"...."

   불안 반 걱정 반으로 숲 속에 조그맣게 외쳤다. 조용하다. 인기척이 사라졌다. 난 손전등을 들어 숲 속을 비췄다.

"요런 마?"
"캬~~ 악~~"
"@#$#$%$$%%!!!!"

  갑자기 여자의 비명에 이어 당황과 급박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향해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던 나는 남자의 목소리가 당황함을 넘어 화가 남으로 바뀐다는 것쯤은 감지할 수 있었다. 자리를 피했다.

"니땅띠엔떵파오러"(你当电灯泡了, 당신은 연인들의 방해꾼이 됐네요)
  : 전구가 불빛이 발한다는 의미로 연인들의 연애 행각에 눈치 없이 불빛을 비춘 훼방꾼이라는 의미

  다음날 선생님께 그 상황을 설명했더니 폭소를 터뜨리시며 가르쳐준 단어이다. 당시 중국에선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공간(모텔, 호텔 등)이 없었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있고, 이성 간의 출입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의 연애 공간은 불 꺼진 캠퍼스의 숲 속이었던 것이다.(그래서 가로등이 별로 없었던 건가...) 밤만 되면 어두운 숲 속으로 숨어드는 남녀들을 보면서 나는 다신 손전등을 켤 수 없었다. 하지만 밤길 산책을 하며 영상 없는 음향 성인물을 감상하는 습관이 생겼다.

  북경에서의 한 달간의 어학연수는 나에게 큰 실망과 깨달음 두 가지를 가져다주었다.
   한 학기 동안 수백 번 넘게 들고 외웠던 중국어 교재 속 mp3의 클리어 한 대화는 한 번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삶 속에 대화는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교과서대로 물었지만 그들은 교과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 나는 교재를 던져버렸다. 몸으로 경험한 언어들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언어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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