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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29. 2019

멘토를 찾아가는 여정

삼국지 멘토를 찾아서

"는 커서 뭐가 될래?"


   어릴 때부터 항상 따라다녔던 질문이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 똘똘하게 생겼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주 던지던 질문이다. 그냥 놀고 싶은 생각밖에 없던 나에겐 중요한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적어야 했던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엔 항상 "장군"이라는 직업인지 계급인지 모를 단어를 생각 없이 반복해서 적어 넣었다.


"엄마! 장래희망 뭐라고 적어?"

"그냥 장군 적어라!"


   당시 군부 독재 시절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태어나던 그 해 전두환 장군께서 나라를 휘어잡으셨다. 박정희 장군에 연이은 군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학교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은 세종대왕과 비등했다. 부모님의 장사 때문에 전학을 많이 다녔다. 어느 학교를 가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없는 곳은 없었다. (전두환 장군께서 만드셨나?!) 뭐 결국 장군이 왕이 되었으니 동급이라 할 수 있겠다.  


  뭐가 되고 싶은지는커녕 자아정체성도 갖춰지지 않은 나에겐 부모의 장래희망이 내 것이 되었다. 반에는 나 말고도 "장군"이 장래희망인 아이들이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가 되고픈 인간의 꿈은 변하지 않나 보다.  당시 별이 많이 그려진 딱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 위력이 대단했다. 

  

중학생이 되었다.


  이젠 장군의 인기는 사그라들었다. 나도 이젠 멘토를 찾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의 멘토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슬램덩크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청소년의 몸과 정신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농구 선수와 댄스 가수가 많은 친구들의 멘토가 되었다. 하지만 키 작은 나에겐 농구게임은 친구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고 열광하는 서태지는 눈요기일 뿐 나의 정신을 사로잡진 못했다. 나의 멘토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었다.


게임에 빠져들었다.


  삼국지(KOEI) PC게임이 나의 몸과 정신을 지배해 가기 시작했다.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접한 삼국지 게임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춘기 이성에 대한 성적 욕구까지 잠재우는 위력이었다.(덕분에 사춘기 때 알고 지낸 여자가 한 명도 없다) 안 하던 공부 핑계로 부모님을 졸라서 얻어낸 펜티엄 컴퓨터는 나를 삼국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집에서 친구와 세력을 나눠하던 그 게임 속에서 역사 속 인물들을 알아갔다. 게임의 흥미는 게임의 배경인 삼국시대로 옮겨갔고 나의 멘토들은 그 속에 있었다.


처음은 조운(趙雲)이었다. 


  자는 자룡(子龍), 촉(蜀) 나라 유비의 호위 장군이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충직한 장군이다. 말 그대로 현대판 얼짱 능력 남이다. 무력과 지력을 겸비한 그는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게임 중 1순위 등용 대상이다. 주군을 위한 충성심 또한 평생 변함없다.

조운 자룡

    나는 그가 될 수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인물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력 좋고 일 잘하는 충성심 높은 부하직원이었던 것이다. 결국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상사을 올려 내가 올라가는 케이스는 기업 사회에서 성공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난 그런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유비 같은 인물을 못 만났기 때일지도...)


다음은 조조(曹)다.


  자는 맹덕(孟德), 위(魏) 나라의 승상(최고 권력자)이다. 자신의 야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실천해간 인물이다. 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내는 난세의 간웅이다.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만든 인물이다.

조조 맹덕

   멋있었다. 그의 삶이 부러웠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가 나의 두번째 멘토가 된 것은 내가 가지지 않은 모습을 가졌기 때문이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라를 일으킨 자수성가형 영웅, 한국으로 치면 현대의 정주영 같은 기업가라고 할까? 그의 주변엔 인재가 끊이질 않고 모여들었다.


“疑人不用用人不疑”

(의심 나는 자는 등용하지 말고 등용한 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

   

   '인사(事)가 만사(萬事)'는 말이 있다. 조조의 부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줬

   난 가슴 깊이 뭔지 모를 꿈틀거리는 야망은 있었지만 도줄 사람도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다. 난 일개 사원일 뿐이었다. 조조가 타고난 용인술(用人術)은 나에겐 없었다. 내 주변엔 사람이 모이질 않았다. 그런 매력도 배경도 없었다. 회사에서 관리직이 되어서도 윗사람보다 부하 직원들을 다루는 게 더 힘들었다. 난 조조가 될 수 없었다.


가후(賈詡)가 나타났다


자는 문화(文和), 나라의 뛰어난 책략가로 여러 주군을 모셨다. 지위나 권력에 대한 미련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곳을 찾아다녔다.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았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당시 드물게 77세의 천수(天壽)를 누렸던 인물이다.

가후 문화

   세 번째 직장으로 옮길 때쯤이었다. 있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이직할 곳을 이리저리 물색하다. 경쟁사에서 헌팅이 들어왔다. 급여나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 직장생활이 뭐 다 거기서 거기다. 이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데 익숙해졌다. 이젠 성공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군인일 때도 없었던 충성심은 회사에서 생길 리 만무하다. 사라진 지 오래다. 직장 내의 만연한 정치와 비리는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직장 생활은 그냥 내가 필요한 곳에서 받는 만큼만 해주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해가고 있던 시기였다. 나의 마음의 안식과 체적 안위가 우선이다. 회사의 발전과 야망 실현이라는 사회 초년생 때 꿈은 연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후의 삶을 따라가고 싶었다.


 마지막은 여몽(呂蒙)이었다.


  자는 자명(子明), 오나라 장수이다.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인공이다. 과거 무력밖에 모르던 필부(匹夫)였던 그는 중년에 접어들어 학문에 정진하여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사자성어을 남긴 인물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 학문에 정진(精進)하여 오나라의 중신이 된다.

여몽 자명

   반복되는 직장생활과 한정된 인간관계 속에서 일과 소비(여가)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삶은 변화 없는 반복 속에 나이만 먹어가고 돈을 모으고 쓰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과 주장만 옳다는 아집 속에 사로잡혀 타인과의 계는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내 의견이 무시당하는 게 힘들었다. 그게 싫어 운동과 자연 속으로 도피했다. 내가 무지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연찮은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독서가 인생을 바꾸기 시작했다. 격앙된 나의 말은 차분한 글로 변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방법이 바뀌니 표현하는 방법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옛날 여몽이 걸어간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다.


  또 어떤 인물이 내 인생에서 부상(浮上)할지 알 수 없다. 세상은 변하고 생각과 가치관도 변하듯이 나의 멘토도 계속 변할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 멘토를 현실이 아닌 역사 속에서 만난다는 것일뿐... 현실 속에서 찾지 못하는 멘토를 과거에서 찾고 있다. 어쩌면 인생은 나의 멘토를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Life is a journey to find my mentor!"

                                                          - 글 짓는 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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