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May 19. 2020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굴레

팔공 남자 시즌 2-33

"好久不见! 喜宅!”(오랜만이다 희택!)

“周愿!你变得更漂亮了!”(줘우웬! 너 더 이뻐진 거 같은데!)

”真的吗? 谢谢你"(정말? 고마워!)

”可你老样子,不对我仔细看你有点儿老了呀”(넌 그대론데, 음 아니... 자세히 보니 좀 늙은 거 같기도 하고 하하)


  첫날 일정이 끝나고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조 부장도 상해에 있는 설계사무소에 후임과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해서 각자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고 나는 전 직장에서 싱가포르 출장 때 만났던 승무원 쭤우웬(시즌1 Episode 93)과 연락이 닿아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었다.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그녀와의 연락을 이어가던 것이 재회로 이어진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만나고 얼마 뒤 그녀의 말대로 승무원을 그만두고 상해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전공을 살려 금융업계에 다시 취직했고, 중국 자본과 금융의 중심지인 상해답게 그녀도 돈의 흐름에 올라타고 있는 듯 보인다. 비행기 안에서의 승무원 그리고 클럽에서 봤던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또 다른 커리어우먼의 모습이다.  


"你想吃什么?”(뭐 먹을래?)

“我无所谓,随你的便吧”(난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네가 알아서 해)

“那你跟我来吧,今天我请客”(그럼 나 따라와 오늘 내가 쏜다)

“不必了”(그럴 필요까진 없어)

“别客气, 韩国朋友来看我,我应该请你吃一顿饭才行” (사양 말고, 한국 친구가 보러 왔는데... 내가 당연히 밥 한 끼는 사야지 않겠어)


   그녀가 데려간 곳은 상해의 푸동의 번화가에 위치한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곳은 사람들로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는다. 대기실에는 적지 않은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종업원이 그녀와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우리를 안내한다. 그녀는 이미 예약을 한 것 같다. 그녀는 나에게 진정한 상해 음식을 맛 보여 주겠다며 자신이 알아서 주문을 한다. 주문한 음식들이 차려지고 고급 레스토랑의 분위기에 맞는 비주얼을 가지고 있다.

상해음식 (좌 - 똥포로우 东坡肉, 우 - 쏭슈위 松鼠鱼)
상해 음식 (좌 - 샤오롱빠오 小笼包, 우 -페이쮜이샤런 翡翠虾仁)

"哇~ 点了这么多?”(와~ 이렇게 많이 주문했어?)

”吃多点吧! 今天让你大饱口福”(많이 먹어! 오늘 너 먹을 복 터진 줄 알아)


  이전에 춘옌과 상해에서의 마지막 만찬(시즌1 Episode 59) 이 떠오른다. 그녀와 함께 했던 길거리 푸드코트에서의 소박한 상해 음식과 지금 내 앞에 놓은 고급 레스토랑의 상해 음식은 둘 다 맛있지만 나에겐 전자가 더 기억에 남고 친숙하다. 세상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는 많다. 음식은 단지 맛과 비주얼만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와 어떤 추억을 담고 있느냐로 기억되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은 더 맛있는 음식으로 잊히지만 추억이 깃든 음식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나는 확실히 고급은 아닌 듯 보인다. 길거리에 북적되는 인파 속에서 혹은 한적한 동네 골목의 허름한 노점의 음식이 더 친숙하다.


“喜宅!你有什么理财吗?”(희택아 넌 무슨 재테크하니?)

“理财?!“(재테크?)

“嗯... 你不应该把钻到的钱存在银行里的吧?”(응... 너 설마 돈 벌어서 은행에 재워두는 건 아니겠지?)

“我对理财方面没有什么兴趣”(난 재테크에 흥미가 없어서)

“哎呀! 你这真不行”(아이고, 그럼 안돼!)


  쭤우웬은 증권, 펀드, 보험 등등 모르는 것이 없는 듯 자신의 전문 금융지식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주식과 펀드 투자로 적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며 어깨를 으쓱댄다. 월급만 차곡차곡 모으는 짓은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를 나무란다. 나도 돈을 굴려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금융 관련 지식을 쌓을 여유가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회사에 붙잡혀 있으니 그런 곳에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그런 재테크는 차, 부장쯤 되는 현업에서 짬 좀 있는 상사들이나 기웃거릴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말단 사원, 대리들은 쏟아지는 업무에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님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월급은 그냥 은행에 얼마 되지 않는 이자의 적금과 예금으로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吃完了吧? 我们出去吧!" (다 먹었지? 우리 나가자!)

”去哪儿?”(어딜?)

”喝一杯酒吧!”(한잔 해야지!)


  그녀는 신용카드를 꺼내 음식값을 계산하고는 다시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향한 곳은 와이탄(外滩)에 위치한 어느 한 바(Bar)이다. 그곳은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뒤섞인 동서양 교류의 장처럼 보인다. 그녀와 나는 바텐더를 바라보고 바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메뉴를 받아서 보지도 않고 나에게 넘긴다. 그리고는 항상 마셔온 듯이 알 수 없는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한다. 내가 받아 든 메뉴판에는 영어와 중국어가 섞여있다. 영어도 중국어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칵테일과 양주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몇 가지 종류의 맥주밖에 없다.


"雪花吧”(슈에화 마실께)

“又啤酒啊?喝一杯鸡尾酒吧!”(또 맥주야? 칵테일 한잔해!)

“没喝过呀”(안 마셔봤는데)

“那就喝一下呗,一杯性感沙滩吧”(그럼 마셔봐, 섹스 온 더 비치 한잔 주세요)


   그녀는 나를 대신해 칵테일을 주문한다. 외국인 바텐더는 화이트와 옐로우레드의 대조되는 색깔의 칵테일을 각각 그녀와 내 앞에 놓는다.

  화이트의 다이키리(Daiquiri)는 그 옛날 광산 노동자들이 고단함을 달래주던 칵테일이라고 한다. 그녀도 장소와 시대만 바뀌었을 뿐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 재킷을 입은 도시의 노동자로 이 한 잔의 칵테일에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와는 달리 옐로우레드의 섹스 온 더 비치(Sex on the beach)는 도시를 떠난 자유로운 모습이다. 자연 속에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듯한 모습이 꼭 나와 닮아 있다. 그녀도 그걸 알고 나에게 이 칵테일을 권했을까? 

  서로 다른 색깔이 서로에게 끌림을 가져온 것 인지도 모른다.

Daiquiri (玛格丽特), Sex on the beach (性感沙滩)

"喜宅~ 你经常来中国出差吗?”(희택아 너 중국 출장 자주 오니?)

“嗯... 会经常来的 因为我是中国营业担当嘛”(응... 자주 오게 될 거야, 왜냐하면 내가 중국 영업 담당이라서)

“很好嘛! 那你干脆在中国发展怎么样?”(좋네! 너 차라리 중국에서 일하는 게 어때?)

"在中国?” (중국에서?)


  사실 난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의 주재원 생활은 확실히 좋은 기회이다. 더욱이 주재원은 국내 직원들과는 다른 급여체계로 해외 체류비용이 추가되어 최소 국내 연봉의 1.3~1.5배를 벌 수 있다. 짧은 시간 더 많은 급여와 해외에서의 직무경험 그리고 외국어 능력의 향상까지 1석 3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주재원 파견기간이 보통 3~5년 정도이니 사원이나 대리 초임에 파견 가서 과장이 되어 돌아오면 최소한 작은 전세 아파트 한 채 얻을 돈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결혼을 위한 안정적인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喜宅! 你年薪大概多少啊?" (희택 넌 연봉이 어떻게 되니?)

“为什么问我这个?”(그건 왜 물어보는데?)

"好奇嘛”(궁금하잖아)

”哈哈哈 这是私人的隐私不该问的”(하하하 그건 함부로 물어봐선 안 되는 프라이버시야)

“这有什么大不了的呀”(뭐 대단한 거라고)


  그녀는 한국 항공사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대충 한국 직장인들의 급여 수준에 대해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급여 수준이 중국인들보다 높고 해외에서 근무할 경우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실 중국에 파견 중인 주재원들은 중국 현지 직원들은 생각하기 힘든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가끔 중국 직원들과 친해지면 그런 민감한 부분들을 물어오곤 한다. 그럴 땐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것이 상책이다. 중국 직원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 사내 위화감만 조성되고 그들의 근로 의욕만 저하시킬 뿐이다. 간혹 그걸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중국 직원들도 적지 않다.


  똑같은 인간이고 같은 일을 한다고 다 같은 대가를 지급받는 것은 아니다. 때론 능력과 상관없이 자신이 속한 국가와 민족이 한계를 만든다.


 그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굴레이다.

작가의 이전글 디자인과 설계는 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