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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05. 2020

선택과 집중의 오류

팔공 남자 시즌 2-34

"괜찮으십니까? 부장님?"

"어 왔어?"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아~ 아직 한 쪽 팔이 잘 안 움직여지긴 한데... 괜찮아지겠지, 이봐~ 뭐하고 섰어? 손님들 왔는데? 거기 냉장고에서 음료랑 과일 좀 내와!"

"아뇨~ 저희는 괜찮습니다"


  해외영업팀 전원이 퇴근 후 병원을 찾았다. 최부장은 우리들을 향해 짓던 미소를 멈추고 아내에게 다그치듯 얘기한다. 와이프는 한 숨을 내쉬며 냉장고로 향한다. 최부장은 거의 한 달 동안을 미국을 거쳐 유럽을 순회하는 해외출장을 강행하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현지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며칠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의사의 말로는 응급치료가 그나마 빨리 이뤄져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인상을 쓰며 바라보는 그의 왼쪽 팔은 손가락만 까닥거릴 뿐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가 DG오토모티브의 해외영업팀의 수장을 맡은 뒤로 수년간 해외를 누비며 해외사업을 책임져왔다. 팀원들은 그런 그를 존경하고 따라왔다. 팀원들을 항상 가족처럼 챙겨주는 그의 성품과 해외에서 SOS를 치면 날아와서 팀원들을 문제를 해결해주고 지도하던 야전 사령관 같은 존재였다. 해외사업이 계속 확장되가면서 그는 해외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갔다. 일 년에 반이상을 해외에서 체류하는 유랑민 같은 생활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활약 덕분인지 회사의 해외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현재는 해외의 매출이 국내를 뛰어넘었다.


 대부분의 영업부서의 직원들은 그가 이사(임원)로 진급해 부사장으로 올라간 이 전무의 뒤를 이어받아 영업총괄 책임자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재무팀 출신의 견이사가 그 자리로 발령 나면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와~ 정말 부장님 어쩌냐?"

"좆같지 정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더니..."

"이제 몸까지 저렇게 되셨으니... 참..."

"굴러온 돌이 임원 다는 게 쉽지 않아, 부사장님이야 자동차 임원으로 모셔온 케이스지만 부장님은 과장으로 시작해서 실무도 다 치고 올라온 사람인데..."

"아까 봤지 사모님 표정? 부장님 가족들과도 사이가 안 좋은 거 같던데..."

"애들은 보이지도 않더만요"


  병문안이 끝나고 팀원들은 근처 술집에 모여 앉았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다. 

  최부장은 회사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하는 워커홀릭이다.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부하직원들의 역량도 끌어올리는 리더십도 겸비한 영업의 핵심 인력이다. 인생은 기회비용이라고 했던가? 그가 회사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으로 얻은 실력과 명성은 가정을 포기한 대가였던 것일까? 소문에 그는 가정의 불화로 아내와 이혼 얘기가 오고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봤던 그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붙어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외톨이였다. 회사에서는 총망받는 인재였지만 가정에서는 쓸모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회사와 일에 집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디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을 계속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 회사도 그를 찾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회사는 일단 그를 무기한의 병가로 처리했지만 누구도 그가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다들 알겠지만 최부장 부재중이라 일단 주차장이 해외영업팀장 대행을 받아서 할 거예요, 팀원들은 최부장의 빈자리가 크겠지만 주차장을 잘 도와서 업무에 차질 없도록 해주길 바래요"

"..."

"팀원들은 다들 국가별 영업현황을 주차장한테 보고하도록 하세요" 


  월요일 아침 이웅재 부사장이 해외영업팀 주간회의에 참석했다. 그도 병문안을 갔다 왔고 최부장의 빠른 복귀가 힘들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주차장은 가느다란 눈꺼풀에 덮인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부사장과 팀원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아놔~ 주차장님이랑 일할 생각을 하니 골이 아프구만"

"휴~ 그니까요"

"앞으로 담배가 더 늘겠구먼"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죠"

"아까 봤지 주차장 회의 끝나고 쪼르르 부사장님 쫓아가는 거, 하여튼 그 양반 처세술은 알아줘야 해, 전대리! 이제 중국 파트 보고는 니가 직접 해라, 난 주차장님이랑은 근본적으로 대화가 잘 안되니까 알긋제?"

"예?!... 예"


  점심시간 주차장이 부사장과 식사를 하러 간사이 팀원들끼리 식당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다. 다들 밥 한 숟갈과 한 숨을 번갈아가며 먹고 내쉬고를 반복하고 있다. 다들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 같은 모습이다.

  사실 나 또한 입사 이후 최부장 응원과 격려가 힘든 직장생활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됐다.




"많이 힘들지?"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딱 봐도 죽을상이구만"

"예?!"

"좀만 참아~ 구 과장이 싸가지가 없어도 배울 게 있는 놈이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세상엔 말이야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어, 다만 그 쓸모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데 신경을 쓴단 말이지"

"..."

" 선택과 집중 알지? 모든 걸 다 신경 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버릴 건 버려버려, 난 네가 구과장보다 더 잘 해낼 거라 믿는다."

"예..."

"남자가 왜 이리 자신감이 없어~ 힘내 짜식아! 주눅 들지 말고"

"근데 부장님은 뭘 버리셨어요?"

"나? 글쎄... 음..."


   과거 팀 회식이 끝나고 최부장이 팀원들 몰래 나를 다독이려 마련한 둘만의 술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성공을 선택하고 일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되물었던 질문에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그 대답이 나를 수긍시킬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가 버린 것은 '건강과 가족'이 아닐까?  


그리고 그는 회사에서 버림받았다.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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