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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28. 2020

무엇이 현실인가?

[매트릭스]를 다시 보며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자신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세월에 흘러가면 갈수록 가슴 깊이 스며들며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평생을 인간을 탐구했던 그도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인간은 의식이 깨어있는 순간부터 평생을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 -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 -

  1999년에 개봉한 매트릭스를 기억한다. 당시 세간에 이슈가 되며 수많은 관객(서울 89만)을 끌어모았다. 당시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찾아간 영화관에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스토리와 영상들로 잠만 자다 나왔던 기억이 가물하게 떠오른다.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본 매트릭스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그 영상과 스토리가 뇌리를 파고들며 수많은 상념들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20년 전에 저런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까?"


 현실과 가상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지옥이다. 눈을 떠서 보이는 것들은 폐허가 된 도시와 기계들 그리고 암흑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아니 생산되고 나서부터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삶의 모든 시간을 눈을 감고 의식만 살아있는 매트릭스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현실과 가상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 -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 -

  우리가 정의하는 현실은 육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공간을 지칭한다. 몸이 숨 쉬는 공간과 의식이 깨어있는 공간은 분리될 수 있다. 과거 수만 년 동안 인간은 몸과 의식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삶을 살아왔다.  문자가 발명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고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책이라는 가상공간에 의식을 집어넣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 밖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명된 컴퓨터, 그 고철 덩어리는 현실 속 인간의 삶을 가상의 공간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한다. 이제 컴퓨터는 모든 인간의 손에 쥐어지고 옷을 입고 있듯이 24시간 가상의 공간 속에 접속되어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얼굴을 가리고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커져갈 때쯤, 전 세계는 코로나 19라는 통제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 모두가 온라인 공간 속으로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비로소 언택트(Untact) 시대가 펼쳐졌다. 우리의 의식은 이제 현실세계가 아닌 가상세계 속에 더 오랜 시간을 머물게 되었다. 이렇게 바뀐 우리의 행동 패턴은 다시 과거로 되돌리긴 어려워 보인다.

포스트 코로나

 이제 의식은 가상의 세계에 더 오랜 시간 머물고 있다. 체온과 피부로 느껴지는 인간의 온기는 이제 랜선과 와이파이를 타고 전달된다. 수많은 이모티콘이 우리의 표정을 대신하고 타인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영상에 감정을 이입하고 타인을 규정한다. 주변에 온라인 게임에 빠져있는 친구들이 있다. 이전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가상의 공간 속으로 숨어든 무책임한 도망자들이라 생각했다. 현실의 생계와 일 그리고 관계를 소홀히 하고 가상의 공간에 모든 곳을 쏟아붓는 그들의 모습은 철부지 어린아이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다고 착각하는 곳이 가상이라면?'


   그럼 상황은 반전된다. 지금 게임과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세계를 먼저 구축하고 정착한 사람들이 기득권이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의 의식이 온라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어떨까? 그곳은 현실에서 초라한 모습을 위대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가상에서는 이룰 수 있다. 평생을 벌어도 이룰 수 없던 내 집 마련과 세계여행 그리고 이상적인 반려자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럴수록 그 속에 더 오랜 시간 머물게 된다.

Reality?!  -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 -

   우리가 말하는 현실세계에는 잠자는 좀비들만 가득할 것이다. 의식이 없고 몸만 숨 쉬는 공간이 가치가 있을까? 휘황찬란한 고층빌딩과 화려한 명품 그리고 럭셔리한 자동차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돌아다니지 않은 폐허 속에서 명품가방을 들고 명품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제 그 모든 것들은 서버 공간 속에 존재한다. 너와 내가 찍고 녹화한 영상과 기록들이 가상세계의 원료가 되어 서버 속 세계를 만들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제 보고 듣는 것뿐만 아니라 후각과 미각 그리고 촉각까지도 가상 세계 속에서 밀어넣으려 하고 있다.


상대성 이론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과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타인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사실 나는 타인이 정의한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내가 다르고 또 다른 타인이 나를 보는 것 또한 다르다. 내가 나 자신을 뭐라고 정의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나의 가치와 의미는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기운(인기:人氣)을 많이 얻는 자들이 인간 세상에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Matrix World

  사람의 기운이 모두 랜선과 와이파이를 나고 코딩된 매트릭스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만 아니라고 부인하며 미세먼지와 환경호르몬으로 뒤덮인 오염된 세상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주변에 SNS나 온라인 게임과 온라인 공간의 폐해를 걱정하며 그것들과 단절된 세상을 살아가려는 자들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들은 과거의 세계에 머물고 싶어 한다. 인간의 살 냄새와 정이 있는 공간을 그리워하며...  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이 설령 파국으로 가는 변화일지라도 그 변화는 올 수밖에 없고 그 변화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못 먹어도 고! 네버 컴백!


  과거 공중전화만 있던 시대에도 살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아니 똑바로 얘기하자면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향수(鄕愁)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향수 속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대박인지 쪽박인지 몰라고 일단 가야 한다. 돌아갈 순 없다. 10년 전 지금을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없다. 이제는 5년 아니 1년 앞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확실한 건 과거 전후 몆십년간 석유가 세계를 재건했듯이 이제 너와 내가 만든 데이터가 더 넓은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우리는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아니 존재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가상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가상이 되고 가상이 현실이 된다. 의식이 있는 곳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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