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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n 26. 2020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삶

팔공 남자 시즌 2-44

"희택아 잘 지냈어? 나가 사니 좀 어때? 좋아?"

"생활비가 장난 아닐 텐데..."

"그니까 왜 나갔냐? 나중에 결혼하고 하려면 기숙사에서 버티면서 돈이라도 모아야지"

"그래 맞다. 회사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어야지 뼈 빠지게 일해주는데 큭큭"

"답답해! 기숙사, 회사에서 떨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네, 출퇴근하는 기분도 들고"  

"그래 기숙사 답답하긴 하지"

  

  모처럼 분지 아파트 멤버들끼리 모여 앉았다. 룸메이트였던 은택형과 팔공 동갑인 근재와 온수 이렇게 넷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동안 잊혔던 민혁의 빈자리가 다시 느껴진다. 사실 기숙사를 떠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1년이 넘었다.


  시간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루하루 바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뭘 하고 있고 뭘 해왔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 끼여있는 톱니바퀴처럼 다른 것들에 밀려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럼 내가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멈추면 빼버리고 새로운 톱니바퀴를 끼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때가 되면 갈아 끼워지는 소모품처럼 시스템 속에서 수명을 다할 때까지 돌아간다. 그 시스템 속에서 빠져나온 톱니바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작은 쇠덩이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쓸모없는 쇠덩이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밀리고 밀면서 돌아간다.


"형~ 드디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러 가시는 겁니까?"

"정말 부럽네요 행님"

"자! 우리 은택 형의 글로벌 진출을 위하여 쨘!"

"그래 땡큐 땡큐!"

 

  룸메이트였던 은택형의 미국 지사 연구원으로 한국을 떠나게 되어 모이게 된 자리이다. 다들 그를 축하하러 모였지만 부러움이 더 커 보인다. 그는 DG 오토모티브의 해외 연구소가 있는 디트로이트로 가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파견지역이었다. 열악한 오지에 위치한 해외 공장들과는 달리 연구소는 생활 여건이 좋은 대도시에 위치해 있어 자녀들 교육뿐 아니라 가족들과 같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자! 자! 2차 가야지! 오늘은 내가 쏜다!"

"와 역시 행님!"

"또 노래방?"

"그럼 당근이지! 야~ 이번에 내가 새로 뚫은 노래방이 있지... 이젠 미씨 말고 미스랑 놀자!"

"미스는 비싸잖아요, 놀기도 까다롭고..."

"걱정말고 따라와! 형님이 다 알아놨으니"

"형! 미국 가면 한국 노래방 그리워서 어째 살랍니까? 하하하"


  은택형은 콜택시를 불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대구 외곽의 어느 한적한 곳이었다. 4~5층쯤 되어 보이는 상가건물은 이미 불이 다 꺼져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입구 계단 아래 지하로 우리를 데려간다. 계단 아래의 굳게 닫혀있던 철문이 열리고 덩치 있는 남자가 우리를 한 번 훑어보고는 안으로 안내한다.   


"옵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와~ 친구들 많이 데리고 왔네~”

“어 미안!  오늘 아가씨들 좀 어때?"

"새로 온 아이들 많아요 한 번 봐요"

"오! 그래? 잘됐다."

"哎!你发呆着看什么?你快点儿去打扫4号房间"(야! 너 뭐하고 섰어? 빨리 가서 4번 방 치워!)


   카운터에 있던 마담으로 보이는 여자가 은택형을 보고 반갑게 맞이한다. 나이는 그녀가 훨씬 많아 보이는데 그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갖은 아양을 떨어댄다. 중국로 옆에 서 있던 덩치에게 뭐라고 할 때서야 그녀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거의 완벽한 수준의 남조선 말을 구사하고 있다. 연변 사투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 웨이터에게 신경질적으로 얘기하다가도 우리를 바라볼 때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띠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양주와 과일로 테이블이 세팅이 되어있다.


"오빠! 어떻게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일단 다 데리고 와봐!"

"그래 알았어"

"와~ 형! 이런데는 또 어떻게 안거야?"

"자동차 연구소 녀석들 접대할 일 있어가 부서장 따라 몇 번 왔었지, 여기 애들 어리고 잘 놀아!"

"와! 연구소도 접대해요? 형님이 무슨 영업인 거 같네요"

"근데 말도 안 통하는 애들이랑 어떻게 놀아요?"

"야! 남녀가 말 통하면 더 피곤해, 그리고 얘네들 웬만한 한국말은 다 알아들어"

"톡톡톡!"


  잠시 뒤 그 마담이 룸 안으로 들어오고 10명 남짓한 여성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다들 실오라기 같은 비슷한 류의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다. 다들 20초중반의 젊은 여성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들어오는 한 여성이 낯이 익다.


"어! 띠아오챤!"


  바닥을 향해 있던 그녀의 시선이 나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어둑한 안을 빠르게 스캔한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잽싸게 몸을 돌려 룸을 뛰쳐나간다. 나도 반사적으로 그녀를 따라 밖으로 뛰어나갔다. 복도에 끝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옷자락을 따라 그녀를 쫓는다. 복도 코너를 돌아섰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미로처럼 연결된 복도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곳저곳을 헤매다 노래방 입구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밖으로 빠져나갔을 그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멀리 어두운 골목 끝 대로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녀는 쏟아지는 빗속을 황급히 달려간 듯 보인다.


  때 묻지 않은 캠퍼스의 철부지 대학생으로만 보이던 그녀가 어두운 사회의 밑바닥을 뛰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내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섞이지 않은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따로 가길 바란다. 물도 기름도 아닌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녀를 어떻게 다시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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