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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05. 2020

같은 회사라고 다 같은 직원이 아니다

팔공 남자 시즌 2-48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어떤 놈이 자동차 구매팀에 우리 BOM(Bill of Materials: 자재 명세서)을 보냈어?"


  아침부터 국내영업팀 수장인 빛나리 장부장의 고함 고리로 시끄럽다. 목소리의 파장을 들어느꼈을 때 뭔가 심상치 않는 사건이 터진 듯 보인다. 국내영업팀의 김준표 과장과 고정안대리 그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빛나리 장부장의 파티션 앞에 일렬로 서있다. 파티션 위로는 형광등 불빛에 반짝이는 벗겨진 머리와 쉴 새 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는 반복하는 손가락질만 보인다. 그리고 입에서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총탄 소리가 전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좆됐다! 결국 이렇게 터지는 구만"

"예? 무슨 일 예요?"

"국내 영업 신입이 최근 양산 들어간 국내 차종 헤드램프 BOM을 구매팀으로 보내줬나 봐!"

"그런데요?"

"야! 그런데요는... 감이 안 오냐?" 

"..."

"베이스 코팅(Base Coating)!"

"아!"


  휴게 시간 해외영업팀 멤버들이 모여서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숙덕거리고 있다. 

  램프 업계에도 자체적인 기술개발과 공정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동차 램프에는 수십가지의 플라스틱 사출 구조물이 조립된다. 자동차의 램프가 빛과 열을 내는 제품이고 외부 날씨와 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제품이다 보니 내열(耐熱), 습기(濕氣), 진동(振動)등의 까다로운 품질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한 차종에 들어가는 사출 구조물만 수십가지가 넘고 그 재질도 다양하다. 그 말은 수십개의 사출금형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출 구조물의 품질은 사출금형을 어떻게 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만큼 금형의 설계 및 제작 기술이 중요하다.  사이즈와 내용물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금형 한 벌에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몇 억씩 하기 때문에 램프 하나 만들기 위한 개발비용이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한다. 


 자동차의 헤드램프(Head Lamp: 전조등)에는 빛을 전방으로 반사시키기 위해 반사경(Reflector)에 알루미늄 증착 코팅기술(은박 색 표면 코팅)이 적용된다. 과거 플라스틱 반사경에 증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출 건조 후 증착할 표면에 베이스 코팅(기름 성분)을 거쳐 증착 챔버에(Chamber)에 넣어 증착을 해야 했다. 


  몇 해전부터 금형 제작 기술이 크게 향상되고 베이스 코팅을 하지 않고도 증착 후 배광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공정이 생략된 것을 완성차에게 알리지 않았고 몇 년간 베이스 코팅비용을 완성차에게 청구해서 받아온 것이다. 물론 고객사의 원가 표준 개정 때마다 공정 실사에 대응하기 위해 베이스 코팅 공정시설을 그대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 사실은 대외적으로는 특히 고객사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붙여졌다. 그런데 신입사원은 완성차 구매팀에 자사의 헤드램프 내부 BOM 그대로 보내버린 것이다. 완성차의 BOM에는 베이트 코팅이 있을 리가 없다. 구매팀 담당자가 그걸 확인하고 자동차 구매팀장에게 얘기가 흘러들어 간 모양이다. 장부장은 일단 출도전 미완성 BOM을 잘못 보낸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한 차종이 아닌 여러 차종의 BOM이 모두 Base Coating 이 빠져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강제 CR 크게 한 방 때려 맞겠는데요"

"아냐 그러긴 힘들걸"

"예?"

"... 무슨 말이신지"

"야야! 생각을 좀 해봐 봐! 우리만 램프 만드냐?"

"아!"

"오 역시 구과장님 생각은 항상 한 발 앞서 가시네요"


  구과장은 해외영업팀에서 가장 영민(英敏)한 두뇌를 가졌다. 사실 그게 나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된다. 완벽한 사수를 둔 부사수의 존재감은 미비해지기 마련이다. 영웅의 아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눈총만 받으며 살아가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평생 영웅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이 아닌 누구누구의 아들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랄까?


   구과장의 말대로 램프 업계의 양대 산맥인 중 하나인 한국 오토모티브는 한국 자동차의 계열사이다. 두 회사는 수직구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평구조이다. 한국 오토모티브가 회장의 실질적인 캐시카우(Cash Cow)인 회사이다. 만약 DG 오토모티브가 강제 CR을 당하게 된다면 한국 오토모티브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 회사도 마찬가지로 베이스 코팅비용을 동일하게 받아왔던 것이다. 물론 같은 그룹이니까 뭐 다른 호주머니로 돈만 옮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오너의 호주머니를 건드릴 무모한 용기를 가진 부하직원을 없을 것이다.


"야! 완성차 내부적으로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걸, 알면서도 그냥 쉬쉬하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야~ 못 건드려 절대! 안 그래도 한국 오토모티브 램프사업 맨날 적자라고 죽는소리하고 있는데 저기서 또 깎이면 램프 사업부 아작날걸... 큭큭큭"

"이거 완전 치킨 게임 같네요 정말"


  한국 오토모티브가 램프사업에 뛰어든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램프부품이 전장부품으로 *원단위가 올라오면서 모듈사업에 뛰어든 한국 오토모티브가 램프사업까지 확장한 것이다. 기존의 영세한 램프 기업들을 인수하고 DG오토모티브에서 인력도 빼내가면서 대규모 투자를 해서 최신식 램프공장을 건립했다. 그 이후 양사 간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램프 가격의 하향평준화를 이루었다. 결국 완성차 그룹은 부품사업까지 확장하며 기존 부품사들의 밥그릇까지 뺏어가며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우리도 빨리 해외 완성차를 제대로 뚫어야 돼, 안 그러면 SW오토텍 꼴 난다니까"


    DG오토모티브도 계속되는 한국 자동차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려 다른 글로벌 완성차의 제품 수주와 매출 비중을 올리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그런 활동들은 최대 고객인 한국 자동차가 모르게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사장 직속인 글로벌 영업부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내가 소속된 영업본부의 국내영업팀과 해외영업팀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소문에 새로 취임한 회장의 장남인 사장은 그곳에 갖은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영업본부의 영업직원들은 한국 자동차를 벗어난 글로벌 영업부 직원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은 적어도 영혼까지 팔아야 하는 더러운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한 비즈니스 관계로서 고객들과 업무를 진행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불려 가는 부당한 출장과 부당한 자료 요청으로 인한 야근으로 찌들어 있는 우리들과는 달리 혈색이 달라 보였다. 해마다 하는 건강검진 결과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는 듯했다. 글로벌 영업부과는 달리 영업본부의 국내영업팀과 해외영업팀은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고지혈증과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었다. 


  같은 회사라고 다 같은 직원이 아니다.




*원단위basic unit , 原單位 ]: 생산물 1개 또는 일정량의 생산물을 만들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원재료나 연료, 또는 소요시간 등의 수량. - 두산 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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