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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09. 2020

상처는 덮어주어야 한다

팔공 남자 시즌 2-50

"히태~ 가~ 나 죽겠다 우~우우 욱... 으읍"

"아놔! 나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여기선 안돼 좀만 참아!'


   결국 C는 필름이 끊겨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녀석을 부축해서 어둑한 원룸 골목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녀석은 속이 불편한지 헛구역질을 해댄다. 대학교 근처 원룸 골목길에는 꽐라 된 대학생들의 오바이트(Overeat) 사건이 빈번히 발생해서 파출소와 동사무소에 민원이 빗발친다. 골목 곳곳에 CCTV가 설치되었다. 찌짐을 쏟아낼 만한 전봇대에는 어김없이 경고 문구와 함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팻말이 붙어있다. 필름 끊긴 인간에게 그 문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겠냐마는 일단 저지르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밀려오는 숙취도 문제지만 며칠 뒤 날아드는 벌금 딱지를 받아 들면 더 큰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나 여건 돌려줘!"

"야! 놔! 이 X 년아! 남의 돈을 썼으면 갚아야 할 거 아냐?"

"차 줘자나!"

"야! 저 차는 이자밖에 안돼! 아직 원금이 남았잖아, 글고 이 X년이 말끝마다 반말이네, 야! 존댓말은 안 배웠냐?"

"에? 거진말 마! 太不像话了!”(말도 안 돼!)

"뭐라 씨불 거리는 거야? 너 욕했지?"

"他妈的! 滚!别再过来我这儿!” (씨X! 꺼져! 다신 찾아오지 마!)


  멀리 어둑한 놀이터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띠아오챤이 분명하다. 그녀는 떡대만 한 사내 두 명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녀는 사내가 들고 있는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여권을 뺏으려 달려들지만 소용이 없어 보인다. 다른 한 놈은 그녀의 핸드백을 뒤지고 있다. 그들 뒤에는 빨간색 포르셰 박스터(Boxster) 컨버터블 카가 시동이 켜진 채 정차되어 있다.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인지했지만 꽐라 된 친구를 엎고 있는 상황에서 나까지 얻어맞고 꽐라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간의 치밀어 오르는 감정으로 결과가 뻔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C 녀석을 전봇대에 옆에 기대 앉히고 전화기를 들었다.


"저기 112죠? 여기 영대 앞 XX놀이터인데요 괴한들이 한 여성을 성추행하려는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5분여쯤 지났을까 골목 멀리서 사이렌 소리 울리며 점점 가까워진다.


"아! X발! 어떤 새끼야!"

"야 어서 가자! 야~ 너 이 짱개년! 도망칠 생각 마라. 죽는 수가 있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한 사내는 주위 원룸 건물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친다. 그리고 서둘러 정차해 놓은 차로 돌아가더니 쾡음을 내며 사라진다. 그녀는 사내가 바닥에 내팽개친 핸드백에서 쏟아진 물건들을 서둘러 주워 담고는 자신도 골목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녀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C는 이미 전봇대에 피자 반죽을 한 가득 쏟아내고 땅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아놔! 이 자쉭!"

"우~~~ 우우 욱! 아~ 희택아~ 나 주글꺼 같아!"

"아~ 그냥 죽어라 죽어!"


  나는 녀석을 부축해 나의 원룸으로 데려가 눕히고는 물을 담은 양동이와 빗자루를 들고 동이 트는 새벽 골목길의 찌짐 반죽들을 청소한다. 청소를 다 끝내고 CCTV 향해 이빨을 보이며 손가락으로 브이 마크를 내보인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지?'





"你怎么知道这个餐厅啊?这不大适合你吧 哈哈哈”(아저씨! 이런 레스토랑은 어떻게 아셨데요? 음... 아저씨랑은 좀 안 어울리는데 하하하)

“我偶尔跟同事过来吃”(가끔 회사 동료들이랑 오는 곳이야)

“哦!大叔!你今天怎么突然请我吃饭呀?”(오! 아저씨! 근데 오늘 웬일로 저한테 밥을 사주시는 거예요?)

"你也叫我大叔!别叫我大叔好不好!”(너도 아저씨냐? 아저씨라고 안 부르면 안 되겠냐?)

“哈哈哈 那我叫你什么好呢?(하하하 그럼 뭐라고 불러요?)

“嗯... 哥哥!?”(음... 오빠!?)

“哎呀! 这太肉麻了呀”(아이! 너무 닭살스러운데요)

“那就叫我大哥吧!”(그럼 형님이라 불러!)

“嗯... 好吧!(음 그게 낫겠네요)


 띠아오챤은 오늘도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교회 예배가 마치고 쑨샹을 따로 불러내었다. 며칠 전 밤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 혹시 쑨샹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쑨샹은 밥 사준다는 말에 띠아오챤과는 달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나선다. 그녀가 파스타를 좋아한다는 말에 저녁시간 친한 직장동료들과 가끔 오는 '컨테이너' 퓨전 파스타 집을 찾았다. 대학교 안에 위치한 레스토랑 안에는 주말인데도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2010년 영화 [아저씨]가 대박을 치면서 중국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때 이 영화 속 어린 여주인공이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따슈(大叔, 아저씨)라는 중국식 명칭이 유행을 불러일으켰고 여자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남성을 부르는 호칭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今天貂蝉又没来,她有什么事吗?”(띠아오챤 오늘도 안 왔네, 걔 무슨 일 있니?)

”不知道,看来最近晚上打工,太不可思议了”(몰라요, 요즘 밤에 아르바이트하는 거 같던데, 참 불가사의한 일이에요)

“不可思议?”(불가사의?)


  쑨샹은 그녀가 밤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불가사의라는 말이 뭔가 맘에 걸려 물어본 그 말의 의미는 띠아오챤은 여태껏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쑨샹은 그녀와 같은 과 친구이긴 하지만 그녀와 적잖은 거리감을 느낀다고 한다. 띠아오챤을 처음 학교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고급 외제차에 몸에는 대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고가의 명품 옷에 갖가지 액세서리들로 꾸미고 다녔다는 것이다.


"怎么会?”(어떻게 그럴 수가?)

“听说她爸爸是武汉市党委书记”(소문에 그녀의 아빠가 우한시 공산당 서기라고 하던데요)

“真的吗?”(정말?)


  쑨샹의 말을 듣고 나니 사건의 조각들이 조금씩 이어 붙여지기 시작한다. 그녀는 띠아오챤의 학생답지 않은 사치스러움에 그녀와 거리감을 두고 지냈다고 한다. 그녀 주변에는 수많은 중국 유학생 친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녀도 그들이 그녀의 배경과 돈 때문에 몰려드는 날파리들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달려드는 날파리들과는 수업시간에 홀로 떨어져 있던 쑨샹에게 접근한 건 그녀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띠아오챤은 수업시간마다 매일 날파리들과 떨어져 쑨샹 옆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처음에 거북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수업시간마다 마주하는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졌다고 한다.


"那你带她来教堂的?”(그럼 네가 걔를 교회에 데려온 거야?)

“是的”(예)


   띠아오챤은 평소에는 부유한 집안의 중국 유학생들과 어울려 다녔지만, 학교에서만은 쑨샹과 짝을 이루며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에 쑨샹을 따라 교회를 나오게 되면서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그녀도 교회 식구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다고 한다. 특히 안 에스더 목녀의 엄마 같은 보살핌 때문인지 그녀를 곧잘 따랐다고 한다. 쑨샹은 학교에서 다른 중국 유학생들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진 못했다. 띠아오챤의 배경은 그 누구도 무시 못할 정도의 파워를 가진 모양이었다.


"可最近不知发生什么事,她跟以前不一样”(근데 요즘 무슨 일 때문인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쑨샹은 최근 그녀에게서 뭔지 알 수 없는 변화를 느꼈다고 한다. 원래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대구 수성구의 고급 오피스텔에 살던 그녀는 얼마 전 학교 근처 원룸으로 이사를 왔고 그 이후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그냥 별일 없다는 말만 할 뿐 그녀에게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原来如此”(그랬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말 못 할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 비밀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며 평생을 지울 수 없는 낙인(烙印) 같은 상처일 수 있다.


  상처는 아물 때까지 덮어주어야 한다. 언젠가 스스로 그 상처를 드러낼 수 있을 용기를 가질 때까...


   하지만 용기를 내는데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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