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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11. 2020

직장과 야생의 상관성

팔공 남자 시즌 2-51

"이과장님! 떴어요! 떴어 인사 공고 외주구매팀!"

"정말?!"

"와! 드디어 떠나시는 겁니까? 이 과장님!"

"와! 외주구매팀! 꿀이네"

"이제 갑이네요 과장님 축하드립니다."


  다들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정기 인사 공고에 다들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노총과장이 드디어 해외영업팀을 떠나게 되었다. 몇 년간의 숙원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이다. 이 과장은 뒤에 앉은 윤채준 대리가 가장 먼저 인사 공고를 확인하고 팀원들에게 알린다. 이 과장은 다크서클이 내려온 눈으로 엑셀 화면을 응시하다 윤대리의 말에 허리를 곧추 세우고 놀라는 눈치다. 사내 게시판으로 접속해 자신의 인사 공고를 직접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깊은 탄성을 내쉰다. 그 모습이 마치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교도소의 긴 하수구 터널을 통과한 후 비를 맞으며 자유를 만킥하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쇼생크 탈출

"이제 과장님 다크서클 사라지시겠네"


 연말 인사 공고 게시판에는 최지원 부장을 대신해 팀장대행으로 있던 주차장도 정식으로 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팀장 승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과장이 영업팀을 탈출한다는 소식만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말은 다들 몸담고 있는 이곳 영업팀을 지옥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님! 저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야! 넌 안돼!"

"올해까지 하고 보직 변경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셨잖습니까?"

"야! 어떻게 한 팀에서 두 명씩 나가냐? 그리고 다른 팀에서 아무도 이곳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데 어떡해?"


   이곳을 떠나려고 고대하던 사람은 이노총 과장만은 아니었다. 옆에 앉아있던 송중건 대리는 벗겨진 머리를 움켜쥐며 주차장에게 불만 섞인 표정으로 얘기한다. 그가 해외영업팀에 왔을 때는 두피가 보일 정도까지 숱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유럽 담당을 맡으면서 몇 년간은 국내외 그리고 낮밤 구분 없이 일해하면서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이제 돌이 다돼가는 둘째 아이는 그의 잦은 장기 해외 출장으로 아빠와 있는 것을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년부터 계속 보직 변경을 요청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움켜쥐었던 손을 내려놓으며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간다. 그가 움켜쥐었던 머리털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노총 과장과 송중건 대리는 지속적인 보직 변경을 요청해왔다. 주차장은 그 둘에게 1년간 각각 인도+브라질과 유럽+터키의 업무를 더해주는 대가로 보직변경을 해주겠다는 언약을 했던 모양이다. 회사는 항상 직원에서 100%가 아닌 그 이상을 요구한다. 요구에 부응하면 땡큐이고 100%만 해도 손해 볼 건 없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가 와야지만 나갈 수 있는 법이다. 회사는 공식적으로 직원들의 순환 보직을 장려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영업본부의 강도 높은 업무와 더러운 고객 응대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상태에서 그 누구도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하는 자가 없었다. 더욱이 일 잘하는 인재를 타 부서에 줄 멍청한 부서장은 없다. 누군가가 온다면 둘 중 하나다. 일을 못하거나 아니면 그 위에 부서장과의 관계가 안 좋거나.


    마침 인도 공장에 주재원으로 파견나가 있던 김과장이 해외영업팀으로의 복귀가 성사되어 이과장은 꿈에 그리던 쇼생크 탈출을 성공시켰다.


"축하드립니다 주 팀장님! 회식 한 번 하셔야죠?"

"어!? 어... 그래 고마워"


   팀 내의 희비가 엇갈리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구 과장이 뒤늦게 주차장 아니 주 팀장에게 영혼 없는 목소리로 승진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구 과장의 비상한 머리는 언제나 빠르게 회전한다. 이제 공식적인 인사권을 가지게 된 주차장을 더 이상 무시할 순 없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면 빨리 처세를 바꿔야 한다. 쓸데없는 감정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태도로 일관하다 직장 생활이 꼬일 수가 있다. 그래서 직장인은 카멜레온이 되어야 한다. 항상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상황과 분위기를 주시하면서 그때그때 색깔을 바꿔야 한다. 괜한 자존심과 줏대를 내세우다간 밥그릇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힘내! 송대리! 내년에는 우째되겠지"

"최부장님은 이제 못 돌아오시나 보네"

"최부장이었음 아마 어떻게든 내뱉은 말은 책임지셨을 텐데..."

"이 과장 가면 봉래 네가 이제 인도 다 맡아해야겠네 큭큭, 너도 이제 집에 가긴 글렀다. 하하하"


  저녁 시간 주 팀장을 제외하고 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사 근처 돼지 찌게 식당에 모여 앉았다. 주 팀장은 영업본부 이부사장과 견이사의 호출로 일찍 퇴근했다. 아마 그들만의 축하 연회를 하려나 보다.


"와이프한테 내년에는 잘할 거라고 약속했는데..."


  송대리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 평소 마시지 않는 소주를 잔에 따라 혼자 들이켠다. 다들 놀라는 눈치다. 신실한 기독교인 그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내심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온전한 가정을 꾸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다시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할 듯 보인다. 그의 그런 모습에 이 과장은 기쁜 내색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며 술잔을 들이켠다.


"아놔! 그나저나 이제 주차장 아니 주 팀장 비위는 또 어떻게 맞추나? 어이! 전대리! 나도 떠나야겠다. 빨리 좀 치고 올라온나, 니가 씨~ 업무를 혼자 다 쳐야지 내가 맘 편히 떠날 거 아니가? 어이~"


  구 과장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괜한 화살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를 노리는 곳이 많다. 구 과장은 베이징 공장의 영업담당으로 매출과 영업이익 신장의 주역이다. 그래서 중국 베이징 공장과 상하이의 중국 로컬 영업팀에서 수시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인재이다. 영업본부의 이부사장의 승인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날아갈 태세이다. 그도 이제 아이도 생겼고 해외 주재원으로 연봉도 올리고 중국에서의 자녀교육까지 생각하는 눈치다.


  최근 상하이의 로컬영업팀장과 자주 연락을 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와 직접적인 업무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하이 로컬영업팀의 지원업무에는 발 벗고 나선다.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생색은 그가 다 낸다. 상하이로의 주재원 파견의 발판을 다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무래도 베이징보다는 상하이가 더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팀원들은 겉으론 서로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모두 자신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 철저히 계획된 것이다. 만약 그 이익과 계획이 다른 팀원들과 충돌되거나 방해를 받게 된다면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직장은 야생과 같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모른다.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 때론 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공격도 해야 하고 때론 동료를 이용하고 때론 버려야 하는 냉혹한 세계이다.


  오늘도 무사히 야생의 하루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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