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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16. 2020

달팽이의 삶

팔공 남자 시즌 2-52

"뭐야 4% 인상이야?"

"그러니까요, 어째 해마다 급여 인상이 물가 상승률이랑 똑같니?"

"회사 매출은 해마다 20~30%씩 성장하는데..."

"완전 꼼수 같은데요"

"직원 월급을 많이 올려주면 버릇된데요, 그럴 바엔 세금을 더 내겠다면서... 그랬다는데요"

"씨 X! 그게 말이가 방귀가?" 


  회사 게시판에 올해 노사가 합의한 급여 인상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다. 휴게장소에는 수많은 직원들이 연신 구름과자를 피워대며 올해 급여 인상 공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다. 해외영업팀의 직원들도 모여 그 얘기로 열을 올리고 있다.


  DG 오토모티브 회장이 내뱉었다는 말이 직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한 말이겠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한번 뱉은 말은 결국 돌고 돈다. 처음 했던 말 같다면 다행이지만 말은 전파되면서 변형되고 덧붙여지기 일쑤이다. 무엇이 진실이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리도 만무하다. 


  그 해 DG 오토모티브 회장은 성실한 기업 납세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경북 지역 신문에서는 그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이 담긴 뉴스 기사가 전면부에 실렸다. 그는 거의 해마다 우수 납세 기업가로 표창을 받고 있다. 누가 보면 NPO(Non-Profit Org : 비영리조직)인 줄 알 것 같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회장 덕분에 직원들의 불만은 쌓여간다. 그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하는 지역 유지이자 갑부이다. 그의 재산은 나날이 불어나는데 직원들의 삶은 궁핍해 보인다. 


  그나마 몇 년 전 집권한 장남인 사장이 적극적인 회유로 직원 급여 수준이 소폭 향상되었지만 경쟁사인 한국 오토모티브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그런 큰 급여 차이로 인해 직원들의 이직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대리, 과장급은 겉으로 표현하진 않다도 대부분 경쟁사로의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만약 물가나 집값을 고려했을 때 서울 혹은 수도권에 연고나 거주지가 없다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삶의 터전을 바꾸는데 드는 금전적 혹은 비금전적 기회비용이 이곳 대구경북 토박이들의 마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TK(대구경북)가 고향이나 근거지가 아닌 직원들에게는 크게 미련이 있을 리 없다. 갈 수만 있다면 옮기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신분 상승의 기회는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 무엇이 될 것인가? 현재 DG오토모티브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직원이라면 임원의 꿈도 꿔볼 수 있겠지만 대기업인 한국 오토모티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곳에서 임원은 진골 출신, 즉 공채 출신이나 해외 유학파들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년을 채운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살벌하고 냉정한 세계이다. 뱀의 머리가 되느냐, 아니면 용의 꼬리가 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용의 세계도 경험해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노조가 돈을 쳐 먹은 게 분명해!"

"그니까요, 이번에 노조 위원장 차도 바뀌었던데요"

"도대체 얼마나 쳐 먹인 거야"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해야 할 새끼가, 지 배만 쳐 불리고 앉아있구먼"


  노조 위원장은 회장 일가와 친분이 두터운 듯 보인다. 소문에 회장과 자주 골프도 치러 다닌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노사가 운동도 같이 하면서 단합하는 실로 화목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과 하는 짓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노조위원장은 어떻게 노조위원들을 구워삶았는지 해가 바뀌어도 그는 바뀌지 않는다. 군부시절 독재 권력을 지닌 사람 같다. 


"월급은 안 오르는데 집값만 오르네요! 이렇게 올라서 언제 집을 사죠?"

"야! 집은 니 돈으로 사냐? 은행이 사주는 거지 니 이름으로 하하하, 일단 사고 봐야지 월급으로 돈 버는 세상은 끝났어 집으로 돈을 벌어야지, 부동산이 답이다"

"뭐 집값이 대출이자보다 더 오르니 빚내서 집 사는 게 정답일 수도 있죠"


  구 과장은 푸념 섞인 나의 말에 쏘아붙이듯 말한다. 그는 최근 대출을 끼고 이름 있는 역세권 신축 아파트 사서 이사를 했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값이 몇 천만 원 더 올랐다며 자신의 탁월한 선택을 자랑하듯 말한다. 


  물가 상승률에는 주택구입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왜 그럴까? 해마다 올라가는 집값이 물가에 상승률에 포함된다면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도 올라갈까 두려워서일까?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모아도 집값을 따라잡을 날은 묘연해 보인다. 땀 흘려 번 돈으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한국이 "사기 공화국"이란 오명(汚名)을 가지게 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사기와 편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삼대가 빈곤을 면할 수 없다. 내 빈곤은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사기꾼들은 사기 친 돈을 강제로 환수할 수도 없는 법적인 허점을 알고 있다. 희대의 사기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건 다 이 때문이다. 사기를 쳐서 잡혀도 나랏 돈으로 먹고자며 잠시 칩거 생활을 하다나와 인생의 반전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 만약 돈 많은 기업인이나 명망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마저도 할 필요가 없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자들이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나라가 된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돈이 없어도 집은 살 수 있다. 하지만 내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돈은 은행에서 주고 명의만 자신의 것일 뿐이다. 은행은 빚을 남발하며 나날이 살을 찌운다. 그래서일까 금융권에 종사하는 자들의 연봉은 해마다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부가가치를 만들지 않는 돈놀이를 하는 자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실물 경제를 돌리는 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진다. 


  집을 계약하는 것과 동시에 은행과의 채무계약도 이루어진다. 후자는 종신계약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며 회사를 하루라도 더 오래 다녀야만 할 이유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집을 짊어지고 직장의 노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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