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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30. 2020

평범하게 산다는 거

팔공 남자 시즌 2-54

"웬일이야? 니가 나를 다 불러내고?"

"친구가 친구 불러내는 게 뭐 이상하나?"

"뭐 그런 건 아닌데... C 녀석은?"

"오늘 C 얘기는 하지 마라 줄래"

"둘이 싸웠니?"


  미숙이 나를 찾아왔다. 영대 근처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안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소주부터 들이켠다. 나는 그런 그녀를 관찰하듯 바라보며 앉아있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건 무슨 목적이 있어 보인다.


"희택아 넌 연애 안 하니?"

"하하하"

"왜 웃어?"

"얼마 전에 C도 똑같이 물었었거든"

"C 녀석 얘기는 하지 말라니깐"

"얘기 다 들었어"

"..."


  그녀는 친구로서 나를 만나러 왔지만 그건 허울 좋은 핑계일 뿐이다. 그녀와 나는 처음부터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친구의 연인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다른 친구와의 결별을 얘기한다. 나는 남녀 간의 우정을 믿지 않는다. 남녀 간의 우정이라는 감정은 양쪽의 각별한 통제가 있어야만 유지가 가능한다. 만약 누구 하나라도 감정의 선을 넘어버리는 순간 우정은 사라진다. 과거 오랜 기간 이성과의 우정을 자신했던 나 또한 결국 그 감정을 선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상대방도 그 선을 넘어오긴 했지만 서로가 그 타이밍이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시즌 1 Episode 87)


  우정이 사랑으로 변환되려면 여러 가지 상황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후회와 상처만 남길뿐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친구의 연인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남자의 우정을 깨뜨리는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바로 돈과 여자이다. 

  금전관계는 나중에 어떻게 회복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여자를 건드리는 친구와는 절대 같이 할 수 없다. 서로 칼부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만 남녀 간의 치정(癡情)만큼 어지러운 것도 없는 듯하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남녀가 사랑이든 정욕이든 일단 빠지고 나면 이성을 상실하고 둘 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도덕적 관념도 잊어버린다. 그만큼 태초부터 생긴 암수간의 끌림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인간세상은 그런 인간의 본성을 결혼과 같은 법과 제도 혹은 윤리, 도덕적 관념으로 통제해 왔다. 그것이 동물과 인간이 구별 지어지는 가장 특징이기도 하다.


"난 다시 행복하면 안 되는 거니?"

"무슨 말이야?"

"한 번 실패하면 계속 불행해야 하는 거니?"

"..."

"사업도 공부도 실패하면 다시 할 수 있는데... 사랑은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왜 안돼, 하면 되지"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 하지만 자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 애 딸린 미혼모가 사랑을 다시 한다는 거... 결코 쉽지 않아, 음... 뭐 사랑은 가능하겠지만 행복할 순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그녀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한다. 사랑과 행복이 같이 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사랑을 하면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에겐 사랑이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녀는 행복을 꿈꾸며 사랑을 했을 것이다. 


"이제 사랑 안 하려고"

"..."


   그녀는 술잔을 비우며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은 슬퍼 보인다.


"지 이이이잉"


   테이블에 놓여있는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한다. "바보 C"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녀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핸드폰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술잔을 들이켠다. 바보는 순수하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온갖 상념들에 휩싸여 살아간다.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한다. 집중하더라도 나에게 이익이 될지 안 될지 철저하게 계산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다. 바보는 다르다. 그냥 좋으면 돌진한다. 뒤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 바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C는 그녀에게 바보로 다가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C랑 헤어지려고?"

"사랑과 현실은 별개인 것 같지 않니? 사랑을 쫓으면 현실에서 멀어지고 현실을 쫓으면 사랑이 멀어지고..."

"..."

"넌 C랑은 많이 다른 거 같네"

"무슨 말이야?"

"넌 현실적이잖아"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다. 난 사랑을 쫓고 싶지만 현실을 놓고 싶지 않다. 그래서일까 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심장이 두근대는 사랑도 열정을 쏟아부을 일도 없다. 나의 심장은 그냥 세포가 죽지 않도록 적당한 산소를 머금은 혈액만 공급하는 순수한 기능만 하고 있을 뿐이다. 심장이 터질듯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그녀처럼 이렇게 후회하는 모습의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후회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진다. 


"희택아! 그냥 너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맞는 거 같아"

"평범?"

"아등바등 현실에 치여 사랑과 싸우고 때론 사랑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뭐 그런..."


  평범하게 산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에겐 내가 평범한 것이다. 사회가 원하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길들여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평범은 나를 죽이고 세상이라는 톱니바퀴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평범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띠리리리링"


  이번엔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의 핸드폰이 울린다. C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나의 핸드폰을 힐끔 쳐다보고는 받지 말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술잔을 권한다. 


"먹고 죽자! 오늘은 다 잊고 싶네, 자 건배!"


  그녀는 내가 미처 들어 올리지 않은 나의 술잔을 팔을 뻗어 부딪치고는 단숨에 들이켠다. 그런 그녀를 모습을 술잔을 들고 바라본다. 그녀는 비운 술잔을 테이블에 놓고 나에게 눈치를 준다. 나도 들이켠다. 


오늘은 왠지 술이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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