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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07. 2021

그녀가 사라지다

팔공 남자 시즌 2-92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도 저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랑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아아아악!"


  일요일 아침 교회 예배당에 앉아 기도드린다. 기도를 하던 도중 귀 속으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엄습한다. 그 소리는 귀를 뚫고 뇌 속을 통과하는 듯한 통증을 수반한다. 예배당 바닥에 쓰러져 뒹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예배당은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몸부림치는 나를 충격과 걱정 섞인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렇게 뒹굴다가 정신을 잃었다.


  유진 씨가 내 앞에서 눈물 흘리고 있다. 그녀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하얀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잠시 뒤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한 두 걸음 멀어진다. 눈물로 붉어진 눈은 나를 응시한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이제 닿지 않는다. 


"대리님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녀는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안돼요~ 가지 마요!"

"희택 형제! 정신 차려요!"

"여기가 어.. 어디예요?"

"깨어났어요? 괜찮아요?"


  병실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한다. 안 에스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말로는 내가 교회의 예배당 십자가가 올려다 보이는 중앙 통로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뒹굴었다고 한다. 교회 안에 있던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교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상황을 지켜봤다고 한다. 나는 정신을 잃었고 엠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루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잠시 뒤 의사가 간호사와 함께 나타났다. 나의 양쪽 눈을 뒤집어 보고는 말을 꺼낸다. 


"전희택 씨 괜찮으세요?"

"예 괜찮아요"

"머리에 통증이나 불편한 느낌 같은 거 없으세요?"

"예 없어요"

"음... 아무래도 이전 후두부 수술 부위 문제인 거 같은데... 정확한 원인은 저희도 아직 잘 알 수가 없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이런 뇌 수술을 하고 정상적인 지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구요. 일단 내일 두뇌 MRI를 한번 촬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오늘은 늦었으니 쉬시고 내일 다시 볼게요. 혹시 다시 그런 통증이 오거나 하면 여기 비상 버튼을 누르세요"

"예 알겠습니다. 의사님"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고 안 에스더가 물을 한 잔 따라서 나에게 건넨다.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고마워요 목녀님"

"고맙긴요, 빨리 회복해요"

"지금 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요? 참 신기하네요, 저번에도 저희 집에서 목장 모임 할 때도 한 번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왜 그래요? 희택 형제?"

"제 핸드폰 어딨어요?"


  불현듯 그때 기억(시즌2-77)이 떠오르며 불길한 예감이 감돈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찾는다. 안 에스더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나의 옷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나는 유진 씨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 후..."


  그녀의 핸드폰이 꺼져있다. 그녀를 만나야 한다. 병상에서 일어나 서둘러 병실을 나선다. 안 에스더는 어딜 가냐며 나를 붙잡으려 하지만 이미 나는 병실을 나섰고 병실 문밖에서 뛰어가는 나를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그녀의 기숙사인 분지 아파트로 향한다. 이동하는 동안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있다. 꿈속에 나타났던 눈물지으며 돌아서던 유진 씨의 모습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린다. 택시기사에게 빨리 가달라고 재촉한다.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금방 거세지고 천둥 번개까지 치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강렬한 빗줄기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이구~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린담"


  기사는 전조등과 비상점멸등을 켜고 속도를 줄인다. 토끼처럼 뛰어대는 나의 심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북이가 되어버린 택시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분지 아파트 가시는 거예요?"

"예 기사님"

"아~ 이렇게 내리면 거기 진입하는 논두렁길이 걱정인데..."


  한 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기숙사 아파트 진입로에 들어서고 나서 택시기사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논두렁 길 양옆으로 불이 불어나 길이 질퍽한 진흙탕길로 변해버렸다. 


"아이구~ 이거 길이 완전 엉망이네, 더 이상 못 들어가요 이거 저기 바퀴라도 빠지면 헤어 나올 방법이 없으요, 여기서 내려가 걸어가셔야겠는데..."

"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도 없다. 택시기사는 차 안 콘솔박스를 뒤적거리더니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준다. 방법이 없다. 그냥 가는 수밖에. 택시비를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누가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 듯한 기분이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온몸이 젖어버렸다. 진흙탕으로 변해버린 300미터 남짓한 논두렁길을 힘겹게 걷는다. 푹푹 빠져대는 신발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신발인지 알아볼 수도 없다. 힘겹게 도착한 아파트 입구에 서서 그녀가 살고 있는 6층을 올려다본다. 불이 꺼져있다. 

  

  일단 올라가 봐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택시기사가 건네준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덕에 머리털만 젖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고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


   빗소리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눌러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혹시 집안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은 생각에 생각을 더하기 시작한다. 


"쾅쾅쾅! 유진 씨 안에 없어요!?"


문을 두드린다. 여전히 반응이 없다.  


"끼이이익 쾅!"

"뭐야! 야밤에! 엇! 그때 그 형씨 아냐?"


  열려야 할 문은 열리지 않고 옆 집 문이 열린다. 얼마 전 마주쳤던 그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다. 그는 그때와 변함없이 누런 러닝셔츠와 사각팬티 차림으로 나타났다. 다른 것이라면 팬티 색깔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때와 똑같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주먹과 손바닥을 부딪치는 시늉을 한다. 


"아따 비도 오는데 또 거시기 생각나서 온겨? 으따~ 리얼 러브여?! 큭큭큭"

"아저씨! 혹시 옆집 여자 들어오는 거 못 봤어요?"

"씨펄! 내가 뭐 경비여? 옆집 주민 출입체크 하구로?"


  순간 그의 말에 뭔가가 생각났고 일층으로 내려가 경비실을 찾았다. 경비실에는 희끗한 머리의 노년의 할아버지 경비가 핸드폰 속의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지 코 앞에다 가져다 댄 체 쳐다보고 있다. 


"저기 어르신!"

"누구?"

"저기 606호에 사는 여자분 들어오는 거 못 봤어요?"

"606호? 아가씨?" 

"예!"

"어 저기 저기 들어오네!"

"예?!"


  순간 고개를 돌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한 여성이 우산을 들고 빗물 웅덩이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곡예하듯이 이 쪽으로 걸어온다.  


"저분이 606호 산다고요?"

"그렇지 아마..."


   빗속을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땅만 보며 걸어오던 그녀는 앞에 진흙으로 범벅된 나의 발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며 우산을 들어 나를 확인한다. 


"헉! 누구세요?"

"저기 606호 사시는 분이세요?"

"그런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DG 해외영업팀 전희택 대리라고 합니다. 혹시 유진 씨 못 보셨나요?"

"아~ 안녕하세요 유진 씨 한 이틀 집에 안 들어왔는데요, 저도 걱정돼서 전화도 해보고 했는데 연락이 안되더라고요"

"아... 그랬군요"



  불길한 예감은 한층 더 깊어진다. 멀리 아파트 입구의 논두렁길은 가로등이 나갔는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 마지막으로 꿈속에서 보았던 유진 씨가 뒤돌아서 걸어가던 그 어둠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띠아오챤이 사라졌던 기억이 떠오르며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하나님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어둠 속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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