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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09. 2021

일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먼저다

팔공 남자 시즌 2-91-1

"와~ 여긴 완전 곱창 천국이네요"

"여기가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막창 골목이래요"


  앞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왔다. 땅거미가 지고 있다. 산행이 끝나면 뒤풀이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하다. 앞산 근처의 안지랑 곱창골목을 찾았다. 골목 양쪽으로 곱창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유진씨와 나는 사람이 가장 많아 보이는 곱창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잘 모를 때는 사람이 많은 곳이 안전빵이다. 

안지랑 곱창골목

"대리님은 대구 사람도 아닌데 대구 곳곳을 잘 아시네요"

"저도 뭐 여기 와서 산행 다니며 여기 사람들 따라다니다 온 거예요 하하하"

"대리님 저희도 한 잔 할까요?"

"저야 좋죠 유진 씨 괜찮겠어요?"

"노 프라블럼"

"오케 원샷 노브레 키!"

"예!? 하하하"


   종업원을 불러 소주 한 병을 시킨다. 나는 그녀의 잔에 소주를 채운다. 그녀는 채워진 잔을 들어 바로 마셔버린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연탄불 위 석쇠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막창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는 그녀가 내 잔을 따라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미국에서 자란 그녀에게 한국의 술자리 관습을 기대한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스스로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우고 들이켠다.


"아직이에요?"

"좀 더 익혀야 해요"

"아~ 너무 먹고 싶어요"


  그녀는 기다림이 지루했는지 다시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우고는 또 혼자 마셔버린다. 


"유진 씨 천천히 마셔요 빈 속에 그렇게 마심 취해요"

"예?! 기다리는 게 심심해서요 하하하"

"그럼 내가 마술 하나 보여줄까요?"

"예? 마술!?"

"예 매직!"


  나는 호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어 오른손 손바닥 위에 얹혀 놓는다. 


"잘 봐요 이제 이 동전이 사라질 거예요"

"예? 에이~ 대리님 속임수 아녜요?"


   나는 왼손으로 오른손 손바닥 위에 있는 동전을 감싸듯이 쥐어서 옮겨온다. 


"자! 유진 씨 그럼 제가 개수작 못 부리게 제 왼손을 꽉 잡아봐요"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왼손 주먹을 빈틈없이 감싸 쥔다. 그녀의 손바닥의 온기가 나의 손등으로 옮겨온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의 감촉이 좋다. 이 순간을 더 간직하고 싶다. 


"세엣, 아니 열까지 세어보세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

"자 그럼 손을 풀고 내 주먹에 바람을 불어넣어봐요 그럼 동전이 사라질 거예요"

"에이 거짓말!"

"자 어서!"

"후우~ 헐! 어디 갔지?"


   그녀의 입김이 손등에 닿자 주먹을 뒤집어 펼쳐 보인다. 손안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한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살며시 그녀의 귀 뒤로 오른손을 가져가 동전을 꺼내온다. 그녀는 신기한 듯 웃으며 감쪽같이 속았다며 자기로 배우고 싶다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한다.


"대리님, 이런 건 또 언제 배웠어요?"

"어제요"

"예?!"

"하하하"


   어제 배웠다. 써먹으려고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성과의 자연스러운 스킵쉽을 하기 위한 방법을 검색했더니 나타난 마술이었다. 이렇게 유용할지 몰랐다. 그녀와 10초간의 스킨십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녀도 나의 의도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나의 음흉한 의도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댄다. 그녀와 한층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는 것을 솔직한 방법으로 얻을 수 없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의도를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되면 순수한 관계는 훼손되고 만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상대방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하다. 


  호감 있는 청춘 남녀가 만나면 뭐 당연히 정신적 혹은 육체적인 교류의 진전을 얻고자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당했다거나 손해 봤다는 느낌을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얻은 듯한 기분을 남겨주어야 한다. 


  이건 비단 남녀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비즈니스 고객을 만날 때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안녕하세요! 신과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과장 진급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뭐 진급하면 일만 많아지죠 쩝...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잘 지낼 틈도 없네요 휴~"

"그러시죠, 저희가 좀 잘 도와드려야는데..."

"그건 그렇고 뭐 CF 설계원가 결과 때문에 찾아오신 거죠? 그 건이라면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아뇨, 그건 뭐 과장님 말씀하신 대로 이미 끝난 거니까요. 그냥 저도 요즘 고민도 많고 해서 대리님 만나 얘기도 좀 하고 바람도 셀 겸 해서 출장 왔어요"

"에? 무슨 고민이 있길래?"

"접때 원가절감 때 얘기드렸던 소개팅 건 있잖아요?"

"아 그거! 참 어떻게 됐어요?"

"제가 과장님 얘기하신 대로 해봤죠!"

"그래요? 정말? 어찌 됐어요?"

"역시 과장님 말대로 하니까 먹히더라고요, 역시 신과장님 연애학 개론 하나 출간하셔야는거 아닙니까? 하하하"

"아이 뭐 그런 거 가지고... 하하하"


  고객을 만날 때는 고객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서로가 줄을 당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땐 고객의 태도는 냉랭하기 마련이다. 이미 나의 의도를 알고 있기에 그곳에 모든 관심과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한들 그의 귀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관심과 집중의 대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놔야 한다. 그리고 그 다른 곳에서 그의 공감과 이해를 얻어내야 한다. 


"전대리~ 나도 다 그런 시절이 있었죠 하하 내가 전대리님 맘 알지"

"신과장님 없었음 저도 어쩔 뻔했을까 해요"

"뭐 궁금한 거 있음 언제든 물어봐요"

"예 과장님, 과장님도 얼마 전에 소개팅하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아 그거~ 뭐 요즘 안 그래도 연애 진도 좀 빼고 있죠 하하하"

"오~ 역시! 좀 있음 퇴근시간인데 곱창에 쐬주나 한잔 하시며 조언 좀 해주시죠?"

"어... 그러까요? 그럼?"


  나는 엄지 척을 들어 보인다. 싱글남의 공통 관심사에 연애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고객과 공감대 찾아내고 프라이빗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공(公)적인 친분이 사적으로 넘어가긴 어려워도 사(私)적인 친분은 공적인 부분으로 넘나들기 쉽다.


"아~ 역시 전대리랑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니깐"

"아 저도 신과장님의 샘솟는 지적 소양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니 뭐 지적 소양이랄꺼 까지 하하하"

"저도 과장님처럼 책도 좀 많이 읽고 해야겠어요"

"책만 읽는다고 되나 경험도 있어야죠 하하하"

"아 역시 과장님! 늦었는데 이제 들어가 보셔야지 않습니까?"

"아~ 참! 전대리 기차 시간 다 됐지?""

"예 아쉽지만 그렇네요 하하하"

"그래 돌아가셔야지 갈길이 먼데, 오늘 즐거웠어요! 그리고 CF 설계원가는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내일 다시 좀 들여다볼게요. 최종 가격은 좀 상향해서 보내줄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기대는 말고"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다음엔 출장 올 땐 1박 2일로 오겠습니다 그땐 제대로 한잔 하시죠"

"그럽시다. 잘 내려가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일에 집중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사람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우둔한 자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하고 현명한 자는 사람을 얻어 일을 해결한다. 

 

  일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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