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부의 지각변동] 박종훈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국은 대외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욱이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로 세계 주류 경제(미국, 중국)의 헛기침에도 폐렴에 걸릴 수 있는 것이 한국이다.
10년의 긴 호황에 지쳐가는 미국에 이상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40년 동안 상승 국면만 이어온 중국 경제(국가 주도)도 위태로워 보인다.
'풍전등화(風前燈火)'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까? 무언가 제대로 터질 것 같은데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땐 경제 흐름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상책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재산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저성장 시대에는 버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경제 서적을 집어 들었다. 한동안 감성에 심취해 적어 내려 가던 글(에세이)을 잠시 내려놓고 냉철한 이성을 살려 서평을 적을 시간이다.
저자(박종훈)는 우리에도 익숙한 KBS 경제부 기자 출신으로 얼굴만 봐도 "아~" 할 사람이다. 세계 경제의 이상(異常) 시그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금리, 부채, 버블, 환율, 중국(경제구조), 인구, 쏠림의 7가지 위험 시그널을 미국, 중국, 한국 3개 국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자료와 사례들로 독자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책 속의 방대한 영역을 다 얘기하기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에 대해 나의 견해를 섞어 얘기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뉴스와 언론 그리고 수많은 서적에서 우리가 자주 보고 듣고 말하는 주제가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런데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이 생산성과 깊은 상관이 있을까?
현재 세계경제의 관심은 4차 산업혁명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그 중심에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이 있다. 거대 IT 콘텐츠 기업들은 4차 산업의 꿈을 실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고공행진을 진두지휘(陣頭指揮) 하고 있다.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모인다.
4차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렸는가?!
약 300만 년 전 시작된 인류는 고작 최근 300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가운데 여러 번의 혁명이 있었다.
1760년대 방직기 발명을 통한 산업혁명을 비롯하여 1820년대 증기기관 발명을 통한 물류혁명을 거쳐 1881년 에디슨의 전기 발명과 강철 생산을 통한 생산설비의 혁신적인 변화를 거쳤다.
하지만 생산혁신은 생산과잉과 버블을 가져왔다.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만들었다. 결국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발생하고 그 상황을 타개하려던 각국은 서로의 이익이 충돌하며 1930년대 2차 세계 대전을 불러온다. 전후(戰後) 복구 과정에서 석유가 전기 그리고 대량생산체제와 결합하여 놀라운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킨다. 석유의 막강한 영향력이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이어져 세계경제가 다시금 침체기를 맞이하고 이를 재빨리 눈치챈 미국은 세계 경찰이라는 명분 아래 중동에 군사력을 행사하며 패트로 달러(석유거래를 달러로 하는) 체제를 공고히 만들어 세계경제를 호령한다.
그리고 맞이한 1980년대의 정보통신혁명
인터넷은 정보의 습득과 공유를 가속화시켰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 공유는 생산성을 평준화시켰을 뿐 더 이상 획기적인 제고(提高)를 일으키지 못했다. 다만 정보와 기술의 누출이나 해킹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 기술이 강화되었을 뿐이다. 전체 파이의 증가가 아닌 파이 뺏기 게임이 시작되었다. 인터넷은 속도전으로 치닫고 방대한 양의 정보 콘텐츠가 온라인상에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빅데이터, AI, 콘텐츠 등의 4차 산업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4차 산업은 만질 수 없다.
더 이상 실존하는 형체를 가진 부(물질)을 생산하지 않는다. 온라인이라는 가상의 세계에 음향을 포함한 글과 이미지(사진)와 영상을 부어 넣고 그 정보 콘텐츠의 바닷속에서 필요한 것을 적재적소에 찾아내어 이용하고 융합하는 기술이 4차 산업인 것이다.
인류는 더 이상 지구에 형체를 가진 부(상품, 부동산)에 집중하지 않는다. 포화상태이다. 인구는 줄고 세계는 물질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세계 전쟁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이 포화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최근 초고속 인터넷(5G)과 스마트폰의 결합은 생산시간을 줄이기보단 콘텐츠를 보고 들으며 소비와 낭비의 시간을 더욱 증가시켰을 뿐이다. 길거리를 둘러보라! 너도나도 조그만 스마트폰 속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소비하고 있다. 근로시간의 단축 와 워라밸 등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생산보다는 소비와 낭비의 생활패턴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금도 시시각각 날아오는 SNS와 유튜브 채널의 알림은 생산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뿐이다.
30년 전(1989년) 제작된 '2020년 우주의 원더 키디'를 만화를 기억한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뇌리에 새겨진 만화 속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멀게만 느껴졌던 2020년의 미래는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다. 그러나 원더 키디 속 세상은 아직도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다. 현실은 아직 멀기만 하다. 우리는 100년을 생각하지 않는다. 100년 뒤는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물은 최대 향후 20~30년을 타깃으로 만들어진다. 너무 먼 미래는 사람들의 공감과 기대를 저버리기 때문에 상업적 효과가 없다.
지금 현실 속 4차 산업은 기술적 혁신과 제도적 혁신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여태껏 쌓아왔던 세상의 질서와 체계를 무너뜨려야 하는 혁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득권과 비기득권이 부딪친다. 산업혁명 이후 250년 넘게 부를 쌓아온 자들과 새로운 부를 창조하랴는 자들 간의 소리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자원(석유, 철광, 가스등), 부동산, 금융, 제조, 건설 등으로 부를 쌓은 기득권이 4차 산업으로 갈아탈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기득권이 법과 제도를 휘어잡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4차 산업은 아직 신기루다. 갈 길이 멀다. 쉽게 갈 수 없는 길이다. 기대만 부풀려져 있다. 부풀려진 기대는 주가(기대 가치가 반영되어 실질 가치에 비해 앞서간다)에 반영되고 4차 산업 관련 IT기업들이 부를 빨아들이고 있다. 10년 넘게... 기대가 실현되지 않고 쌓이면 피로가 누적된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세계경제는 50~60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왔다. 2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세상은 재건 과정에서 혁신적으로 도약했다.
그로부터 다시 60년이 지났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세상의 흐름을 읽는 뛰어난 통찰력에 감동했다. 현재의 불안한 시그널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서 같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들 자기만의 근거로 예측할 뿐이다. 누구의 근거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느냐가 세상의 불안과 걱정을 조장할 수도 있다.
공포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조성될 수 있다. 공포에 떨지 말고 그 속에서 기회를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