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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24. 2021

의지(意志)와 의지(依支) 사이

인간과 신에 관하여

"강한 존재를 섬기는 건 자유의지에 반하죠, 난 약한 존재일지라도 아무것도 섬기지 않아요"

                                                                    

 - [영혼의 종족 - 1/n여자 이야기 편] 중에서 by han 브런치 -

                                          

   위의 문장은 여기 브런치의 어느 작가가 쓴 소설 속에 있는 문장을 인용한 것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신을 믿느냐는 질문에 대한 남자의 답변이다. 이곳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편의 소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은 꽤나 흡입력 있고 내용 구성이나 표현력이 좋아 끝까지 읽게 되었다.


   나는 작가의 소설 내용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소설 속에서 던져준 저 문장이 내가 항상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의지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내 자유의지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나의 소설 중에서 -


   위의 문장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초고에 등장하는 대화 속 한 문장이다. 상황은 비슷하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신을 믿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세상에 사람을 두 가지로 구분하라고 하면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신을 믿는 자와 신을 믿지 않는 자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자유의지가 줄어듬은 어쩔 수 없다. 세상에는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인간이 지닌 강한 의지력이 지금의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데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류는 정말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뤄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뤄내려는 모든 일이 당장의 나의 발전과 성공 혹은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의 번영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번영해 오는 과정은 어찌 보면 다른 것들의 희생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다. 자연의 파괴, 인간성의 말살, 바이러스의 창궐, 기후 변화 등등 수많은 재앙들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재앙들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막을 수 없을 만큼...


"쾌락을 원하고 고통은 피하려는 욕망이다. 우리의 사고는 어김없이 이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인간 본성의 법칙] 중에서 -


   인간의 자유의지는 다른 말로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자유의지는 욕망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인간 세상이 이렇게 번영한 것 또한 인간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여러 가지 욕망들을 자극하고 표출해냄으로서 이룩한 것이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한 것이고,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편의 욕구를 자극한 것이고, 무기를 발전은 인간의 지배욕을 자극한 것이며, 의학의 발전은 신처럼 영원히 살고픈 인간의 로 장생의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이 모든 욕구를 채워가면 채워갈수록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만만해하던 인간의 자유의지로 이룩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굴복시키기 위한 욕망은 핵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창조했고 그것이 우리를 한 순간에 파멸로 가져다 놓을 수도 있다. 뭐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물에 잠겨 수장(水葬)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내가 너무 비약적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가까운 주변 혹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그렇게 강력하게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자유의지로 좋아하는 이성을 유혹하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전개되는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끼곤 한다. 열심히 준비해온 승무원 시험에 합격해 전 세계를 누비며 돌아다닐 꿈은 코로나19의 발병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자유의지보다 강력한 변수들이 생각보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예측도 불가능하다. 마치 주식시장처럼...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

"True knowledge exists in knowing that you know nothing."

                                                                               

                                   - 소크라테스(Socrates) -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자유의지가 자신을 위대하게 만들거라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거만해지는 인간은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지 못한다. 보통 어중간하게 아는 자들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정말 진정한 지성인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건 과거 역사 속의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될 데로 되라지


   문제는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깎아내릴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상실한 인간만큼 무기력한 인간도 없다. 자신의 삶이 자신이 아닌 다른 강력한 힘 혹은 존재에 의해 좌우된다고 맹신하게 되면 욕망이 부질없음을 느끼게 되고 인간 세상은 활기를 잃어버릴 것이다. 도시는 인간의 욕망을 먹고 움직이는 곳이다. 욕망이 약해지거나 사라지면 도시는 아마 무기력이 가득한 모습이지 않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만 찬양하는 허망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 또한 그런 점 때문에 항상 그 사이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아직도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에서는 신을 섬기고 순종하는 삶을 지향하라고 하며 부질없는 욕망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말라 강조한다.


  좋은 점은 그런 마음을 가지면 심적인 평화가 찾아오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욕망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뒤쳐지면 안 되고 타인을 경쟁상대로만 보던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좀 손해 보면 덜 가지면 어때, 일을 하고 부를 쌓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사회발전과 경제의 GDP 성장에 이바지하는 것보다, 주변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드려다 보며 물질과 욕망의 채우는 것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 믿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지금처럼 각박해지지는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진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자유의지만 맹신해서도 그렇다고 신에게만 의존해서도 안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지론이다. 내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이전까지 나의 자유의지를 맹신하던 모습으로 살아오면서 뜻하지 않던 시련과 상황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 속의 대부분의 내용 또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상충하는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는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지만 상처는 드러내야 아무는 것처럼 때론 의지(意志) 보다는 의지(依支)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어중이떠중이 (중도)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류의 인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정치판에서 중도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색깔이 없는 인간은 취급하지 않으며 너의 정체를 밝히라며 추궁한다. 어중이떠중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은 세상이 더 평화롭다는 것을 모른다. 세상은 겉으로 평화를 외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들 네 편 내 편 색깔을 구분 짓고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국제 사회인 것이다.


  신을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기에 세상은 돌아간다. 의지(依支)하고 싶은 사람도 의지(意志)가 강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둘 다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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