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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21. 2021

^^ 그리고 :)

[공간의 미래] 유현준

^^:)의 두 개의 이모티콘의 차이점을 아는가?


 둘 다 웃고 있는 표정의 이모티콘이다. ^^은 눈웃음이고 :) 은 입 웃음이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이모티콘을 보낼 때 이 둘 중 어떤 것을 자주 이용하는가? 나는 ^^을 자주 애용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만약 후자를 자주 이용한다면 그 사람은 전자를 자주 쓰는 자들보다 요즘 더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공간의 미래] 건축가 유현욱이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이다. 그는 요즘 높은 몸값을 구가하며 각종 TV 프로그램과 강연에 출연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근래 그가 출간한 여러 권의 책(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들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나도 최근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공간이 나를 만든다 - 서평 참조) 그는 건축가이지만 그가 출간한 책은 건축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남다른 인사이트를 보여준다.


    구독한 리디북스에 등장한 그의 신간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또 다시 그의 책을 들었다. 이번에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신선한 인사이트를 선사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부분을 끄집어내어 내 생각과 함께 확장해 보려 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 호주 시드니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며칠 전 백신 접종률 80%를 달성하며 3개월간의 락다운이 완화되어 위드 코로나(With Covid19)를 선언하며 점차 일상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

시드니 락다운 시위

"도대체 저 백인 놈들은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 왜 마스크를 안 쓰려는 거야? 정말 이기적인 놈들이네"


     하지만 락다운 기간 동안 시티를 중심으로 주말이면 수많은 시위와 폭동이 벌어졌다. 그 선두에 선자들은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다. 그들은 마스크를 벗고 시티를 점거하며 행진을 이어갔다. 경찰과 대치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주정부의 조치에 반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동양인들은 그들을 비난하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늘어나는 확진자로 인해 락다운은 계속 연장되고 결국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동양인들처럼 느껴졌다.


"동양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양은 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 책 속 인용문 -


  저자는 얘기한다. 마스크를 씀으로써 동양인과 서양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서양인은 입을 본다.


저자는 그 이유를 과거 벼농사를 지으며 집약적인 집단 노동을 해온 동양인들과 개인 노동 중심의 밀농사를 해온 서양인들의 노동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모내기를 하며 가까이 붙어서 일을 하는 동양인은 작은 눈만으로도 상대방의 상태와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반면 밀농사를 짓는 서양인은 개인 노동으로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얼굴 중 가장 큰 움직임과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입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Be kind :)

    내가 호주에 온 이후 가장 느낀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도 호주 백인들은 항상 입고리를 올리는 미소로 상대방과 대면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그들의 인사가 시간이 지나며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실 매번 사람과 마주칠 때 잘 움직이기도 힘든 눈 근육을 써서 미소 짓는다는 것은 여간해선 쉽지 않은 행동이다.


   반면, 입 근육은 쉽게 움직일 수 있으며 사소하지만 이런 작은 입가에 미소로 상대방에서 적의가 없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입가에 미소를 띤 사람을 보면 나 또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된다. 그렇게 웃음이 전염되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동양인과 서양인을 대면했을 경우 동양인이 냉랭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동양인은 입가의 미소보다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관찰하기 때문에 입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상대방이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 자신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확인하거나 되레 이상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씁쓸하지만 상대방의 미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카톡으로 종종 난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웃픈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 입은 웃지만 눈은 울고 있는 형상이다. 아마도 이것을 백인들이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이모티콘일 수 있다. 입에 집중하는 그들은 그냥 웃는 얼굴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가 유행처럼 얘기하던 '썩소'(썩은 미소)는 동양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이모티콘일 것이다. 곤란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겨야 하는 동양인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되었다.

미키마우스와 헬로 키티

눈이 없는 미키 마우스


   눈이 없는 미키마우스를 상상해 봤는가? 섬뜩한 모습이다. 저자는 아시아에서 대히트를 쳤던 헬로키티 캐릭터가 서양에서 실패한 이유도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인들에게 입이 없는 헬로키티는 눈이 없는 미키마우스와 같은 모습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마스크를 강도나 범죄자들이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미세먼지와 모래 바람으로 인해 항상 마스크와 두건을 쓰는 것이 일상화된 중동지역 아랍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정도쯤 되니 서양인들이 왜 마스크를 벗고 저렇게 발광을 하며 시위를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모든 행동에는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타인의 표면적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의 결과물만 보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모든 결과에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다 또한 지금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판데믹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가 가져온 회복


  얼마 전 한국 뉴스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가 일상화되면서 폐질환 및 호흡기 관련 질환 환자가 크게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며 세계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나니 맑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하던 세계 곳곳의 자연 관광지에 다시 야생동물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집에 갇혀 있는 갑갑한 시간은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죽음과 공포가 몰아친 팬데믹의 상황은 또 다른 회복의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것에만 반응하고 집중하기에 그 뒤에 가려진 긍정적인 것들은 모두 잊힌다. 책을 읽으며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지금 보고 듣는 것들에 가려진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공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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