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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09. 2021

철들기엔 너무 짧은 인생

900년을 산다면

"인생은 인간이 철이 들만큼 그리 길지 않아"


 2019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life expectancy)은 83.3세이다.   물론 해가 지날수록 현대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2015년(2월) 타임지에서는 그 해 태어난 아이들은 142세까지 살게 될 거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10세 이하 유아들은 100세 시대를 영위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타임지  (2015.2)

    사실 여기서 평균수명은 늘어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이 노화가 늦추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경우 노화된 몸으로도 목숨 부지하고 연장시킬 수 있는 연명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유해환경(미세먼지, 환경호르몬, 미세 플라스틱, 식수와 토양오염 등)과 유해식품(유전자 변형식품, 인스턴트식품, 농약과 각종 화학비료 등)으로 인간의 몸은 전에 없던 수많은 질병과 마주하고 있다. 인간의 사망 원인 1순위가 암인걸 보면 인간의 세포는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계속 변형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새로운 질병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동식물이 전에 없던 질병을 스스로 만들어내진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수명이 늘어난 다음 세대까지 지구가 버틸지가 의문이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의 상황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음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게 아닌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염되고 황폐화된 환경 속에서 의료기술에 의존하여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짧게 살더라도 의미 있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다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외계인의 눈으로 


  락다운(Lockdown)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안 보던 드라마까지 보게 된다. 과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별에서 온 그대]를 호기심에 클릭하고 난 후 K-DRAMA의 중독성에 감탄한다. 우리나라가 드라마를 잘 만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에 대해 적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환상만 심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이젠 판타지가 대세가 되었다. 그건 우울한 현실을 또다시 드라마에서까지 곱씹고 싶지 않아서 일지 모른다. 일종의 현실 도피처인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 중에서

   "Life isn't long enough for human beings to grow up"(삶은 인간이 철들만큼 그리 길지 않아)


   칼럼 첫 문장은 [별그대]에서 도민준이 하는 대사에서 인용했다. 그 대사 한 마디가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100년도 채 살지 못하고 이 세상과 작별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삶의 종지부를 찍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를 남긴다. 막상 다 살고 보니 하지 못한 더 의미 있고 중요한 것들을 놓쳤다는 생각이 뒤늦게 찾아든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은 인생의 많은 시간을 눈에 보이는 것들만 쫓다가 그 뒤에 다른 것들이 가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극 중의 외계인 '도민준'은 지구에서 400년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100년도 채 살지 못하고 후회 속에 죽어가는 많은 인간들을 보아왔다. 인간이 100년도 되지 않은 짧고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는 것들을 쫓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개탄하듯 바라본다.


   우리는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부터 부모와 학교와 사회라는 시스템 속에서 길들여지며 각각의 시스템이 추구하는 모습으로 길들여진다. 성인이 되어 반려자를 만나고 가족을 만들고 또 그 가족을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시스템에 더욱 충실하게 부합하며 살아간다.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을 돌아보며 나는 이 세상에 왜 왔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허무함이 밀려올 때쯤이면 거울 속에는 세월의 흔적들이 남긴 하얀 흰머리와 주름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쯤이면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만 같던 자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간다. 더 이상 할 것도 할 수도 없는 노년의 삶은 병든 몸과 후회로 저물어 간다. 


900년의 살았다는 가설


   성경의 창세기 보면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보통 900세 정도를 살다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담이 930세, 노아가 950세, 므두셀라라는 인물은 969세까지 산 성경 속 최고령자이다. 하지만 대홍수 이후에 인류의 수명은 현저히 줄어들어 현세의 인간처럼 100세 전후를 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900세를 산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 때문에 성경 속 내용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그냥 성경도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장편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과학적 가설로 인해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된다.


    태초에 지구에는 오존층 같은 두꺼운 물층(수분층) 존재했었을 거라는 과학적 가설이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물층이 짧은 시기에 지구로 쏟아져 내리면서 지구에 대홍수가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성경에서 홍수의 원인은 원죄로 가득한 인간을 쓸어버리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신 벌이라 얘기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식물 한쌍씩을 방주 안에 들여와 대홍수를 면하게 한 사건이다. 과거 인간이 900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 또한 이 두터운 물층이 태양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인간의 노화 속도를 현저히 줄여 [별그대]의 도민준 같이 몇백 년을 사는 게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홍수 사건은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나 많은 다른 고대 경전들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한다. 


   그럼 쏟아져 내린 그 많은 빗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지구의 온실효과 역할을 하던 물층이 사라지면서 태양 일조량이 적은 극지방을 중심으로 빙하가 형성되고 다른 지역은 태양 복사열로 인한 수분이 증발되어 구름의 형태로 공기 중에 떠다님으로써 해수면이 낮아진 것은 아닐까?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옷을 걸치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선악과를 먹기 전 죄의식(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서였던 것도 있지만 아마 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기후가 온화했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또 지구는 다시 데워지고 있고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또다시 대홍수로 세상이 물속에 잠길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신이 내린 재앙은 또다시 반복되는 것인가? 


90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900년을 살아가는 인간은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금 인간의 삶은 세상을 배우고 배운 대로 일하고 종족을 번식하고 양육하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이끌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생을 마감한다. 그 짧은 생애 동안 좀 더 많은 것을 이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기에 효율과 속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이다. 그 이뤄내고자 하는 것들이 인류의 번영과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하는 일들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이 가져올 결과는 인류가 발전과 동시에 파멸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에게 90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이렇게 급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배울 거 다 배우고 키울 거 다 키우고 해도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 우리는 분명 내가 왜 이 땅에 왔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신이 나를 만든 이유를 찾으려 할 것이다. 신이 아마 나를 통해 타인을 속이고 이용해서 혹은 환경과 동식물을 파괴하며 부를 축적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뭐 악마도 신이 만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신을 악마라 칭하며 악행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선한 모습을 지향한다.) 


    내가 락다운의 무료하다면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아갈 때는 이런 경험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바쁨 속에 여유가 생기면 유흥과 오락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900년이면 진리가 무엇이고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모두가 느긋한 마음으로 삶을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별그대]의 도민준의 모습을 보면 그는 외계인이긴 하지만 뻔하디 뻔한 인간의 삶을 관조하듯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도 900년을 살게 되면 아마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영원할 것처럼 무언가를 열심히 채워가며 살지만 허무로 생을 마감하는 인간이 철이 들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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