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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31. 2021

연결의 시대, 경계는 무너진다

불편한 댓글과 별점 테러를 경험하며

"웹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으신 분께서..."


 나의 소설이 웹소설 공모전(네이버 지상 최대 공모전) 본선에 오르고 불편한 댓글과 별점 테러가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막상 경험하고 나니 불편한 기분은 감출 수가 없다. 이것도 다 관심이 있어서겠거니 편안하게 생각하려 한다.


 과거에는 이런 관심조차도 없었던 글이었기에 세간에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관심이 생기면 시기와 질투라는 또 다른 형태의 관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연예인들이나 당하는 줄 알았던 댓글과 별점 공격을 내가 당하니 생소하고 당황스럽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들이 내 소설을 읽어보기 나하고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나의 소설에 대한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지적이나 충고였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웹소설이란 종이책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는 소설을 일컫는 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댓글을 읽고 웹소설이라는 장르는 별도로 명확히 정해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나 또한 내가 쓴 소설이 웹소설 장르에 맞는 것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란 자고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모든 소설은 인생을 담고 있어야 소설이 될 수 있다. 웹소설도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건 마찬가지이다.


  웹소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이에서 인터넷(스마트폰)으로 형태만 변형된 것일 뿐이다. 어디에도 웹소설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다. 사실 그게 소설의 매력인 것이다. 소설은 만인에게 열려있는 영역이다. 전문가들이 쓰는 경영서, 철학서, 법조문이 아니다. 이야기 속에 너와 내가 겪고 있는 혹은 겪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삶,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담은 공감있는 스토리만 들어있으면 된다. 그것이 설령 판타지 혹은 무협이건 할 것 없이 우리의 내면과 본성 그리고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속의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드려다 보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웹소설이 재미와 흥미 위주라고들 말하지만 웹소설도 인간의 본성과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재미와 흥미 속에서도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인간의 삶에서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라면 아마도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 [오징어 게임](리뷰참조)을 비롯해 한국의 IP(Intellectual Property)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중 많은 스토리들이 웹소설 혹은 웹툰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런 유명 플랫폼의 대규모 공모전 또한 2차, 3차 창작물을 염두해 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대중이 공감하는 건 단순한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 모든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재미는 기본으로 탑재하고 그 안에 모두가 공감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모든 경계는 무너진다.


   스티브 잡스는 전화기와 컴퓨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세계 최초이자 세계 최고가 되었다. 지금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도 무너져가는 시대(메타버스 :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세계)이다. 이런 시대에 순문학과 웹소설의 경계가 있다는 것은 현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기득권자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한 변명일 뿐이라 생각한다. 모든 영역의 경계는 무너지도록 발전하고 변화되어온 것이 우리의 역사이다. 다만 그 경계를 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통제했던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늦어진 것뿐이다.


    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한다. 과거 그의 소설을 읽고 여러편의 서평을 남겼다. 그가 쓰는 소설은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기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영역을 연결시킨다. (과학과 문학, 삶과 죽음, 동물과 인간, 무의식과 의식 등) 그렇기에 그가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소설가가 된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과학과 문학이 연결되는 사례를 많이 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소설가로 김초엽 작가나 천선란 작가들이 있다. 자신의 알고 있던 과학지식의 영역을 인간의 삶과 연결시켜 스토리를 만드는 기발한 작가들이다. 과학 속에도 세상과 삶의 이치가 담겨 있다. 난 개인적으로 과학 영역을 인간의 삶과 연결하는 일은 정말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나 또한 과학 관련 서적을 많이 찾아 읽게 되었다. 과학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 편]을 읽고 일원론과 이원론(서평 참조)에 관한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내 글 중에서 조회수가 높은 편이다) 세상과 자아를 구분 짓던 과거 오랜 인식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은 자아와 세상을 연결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데이터는 나에게서 시작되어 다른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또 다른 것을 만들고 찾아내며 또 다른 영역으로 넘어간다. 뉴럴 링크, 사물인터넷, AI, 양자역학 등 인간이라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것들은 상호작용하며 모두 연결되는 세상이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것이다.


 "어른들은 속에 무엇이 들어 있든지, 보아구렁이 그림 같은 건 때려치우고 차라리 지리나 역사, 셈, 문법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에 화가라는 근사한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 [어린 왕자] 중에서 -


  아이 는 옆에 아이가 울면 따라 운다. 연약한 아이는 자신의 영역을 같은 아이들과 공유하고 교감한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자신만의 경계를 쌓고 공고히 해나가는 어른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성이 메말라가고 상상은 현실에 찌들어 사라져 간다. 자신의 것을 지키는데 급급한 어른의 뇌는 벽을 쌓아 올릴 줄만 아는 것 같아 보인다.


연결의 시대


  미래는 경계를 허물고 연결의 영역으로 나가가는 시대이다. 아직도 내 영역 니 영역을 얘기하며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는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저런 여러가지 영역의 책들을 마구잡이식으로 읽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소설의 소재와 주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쓴 이야기가 웹소설이든 순문학이든 에세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쓴 이야기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들과 연결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내가 쓴 소설이 공감과 연결을 이끌어 내는 이야기라면 누군가에게 계속 읽힐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잊힐 것이다. 나는 다만 잊혀지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다.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이고 소명임을 믿는다.




P.S. 응원과 발전적인 조언이나 충고의 댓글은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https://novel.naver.com/best/list?novelId=100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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