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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29. 2021

소설이 허구일 수밖에 없는 이유

[회복탄력성] 김주환

경험하는 나와 기억하는 나는 다르다.  


 시공간은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처럼 질량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내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해서 실제 경험한 것과는 다르게 자신 만의 기억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실재(경험)라는 실체는 사라지고 기억(재해석)만이 실체로 남게 된다. 두 개의 내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후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시작부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할 것이다. 요즘 과학 서적을 읽다 보니 인문학적 생각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았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도 그 상황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같은 책을 봐도 느끼는 것이 다르고 각자 부여하는 의미 또한 다르다. 특히 텍스트로 된 콘텐츠는 확장과 변형이 용이하기에 저자의 생각 위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버무려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서는 변치 않는 자기 발전의 초석이 되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 (Resilience) 오랜만에 인생 책이 될 만한 자기 계발서를 발견한 것 같아 기쁘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운 발견과 공감 그리고 깨달음까지 쓰리 콤보의 재미를 안겨주는 책이다.


"만약 당신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특정 조건들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조건의 충족은 당신에게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더 크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


  우리는 항상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얼핏 고난과 시련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건 고난과 시련이 없다면 행복이라는 개념 자체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행복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고난과 시련에 굴복하고 거기에 좌절해버리는 것이다. 지속적인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회복 탄력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얼마나 빨리 힘든 상황을 극복해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우리가 시쳇말처럼 하는 '멘탈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멘탈이 강해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내가 서두에 시작한 문장 속에 그 답이 있다. 물론 멘털 강화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공감하고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또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도 연관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경험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 자아(Remembering self)


저자는 인간은 두 가지의 자아를 가자고 살아간다고 얘기한다.

첫 번째 자아는 현재를 살고 경험하고 있는 자아이다. 현재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자아이다. 쉽게 말하면 고난과 시련을 회피하고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아이다.


 두 번째 자아는 과거를 기억하는 자아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지만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축적이 있었기에 현재의 나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뇌는 항상 과거를 회상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평가한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인간이 어떠한 사건이나 경험에 대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는 별개의 존재이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


 저자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그것을 증명한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그룹은 검사가 끝나고 바로 내시경을 제거하고 B그룹은 검사가 끝나고 한동안 놔두었다가 제거했다.


  두 그룹에서 통증의 총량은 B그룹이 월등히 크다. B그룹은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통증을 경험한 그룹이다. 반면 A그룹은 통증이 있었지만 내시경을 제거하는 순간 통증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그룹이 내시경 검사에 대해 기억하는 통증의 강도는 예상과 달랐다. A그룹이 내시경에 대한 더 큰 거부반응 보인 것이다. 이것은 통증에 적응하는 시간이 없이 통증이 고조된 상태에서 제거한 A그룹과 통증을 계속 견디며 그것에 적응해나간 B그룹이 통증에 대한 기억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이다.


    "회복 탄력성은 바로 이 '기억하는 자아'의 문제다. 기억 자아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하는 자아이다"


                                              - [회복 탄력성] 중에서 -


 통증이 많건 적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몸은 더 아팠지만 뇌는 덜 아프게 기억했다. 놀랍지 않은가? 몸과 뇌는 다르게 기억한다. 뭐 몸이 기억할 수 없으니...


소설(Story)은 허구일 수밖에 없는 건


  나 또한 글을 쓸 때 그런 경험을 자주 하곤 한다. 글을 쓰는 것 또한 기억 자아를 불러내어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과거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당시에 그 기분과 느낌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때 어떻게 느꼈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경험 자아는 이미 시간이 지나 기억 자아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사실과 느낌은 지금의 기억 자아가 인지하는 사실과 느낌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경험 자아는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기억 자아로 대체되는 것이다. 


  서두에서 내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언급한 것은 우주 속에서 거대한 질량(나)을 가진 행성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왜곡) 지며 다른 행성들을 빨아들여 잡아두는 현상(공전 현상)과 흡사 닮아 있다. 빨려 들어온 것들은 기존에 적용되던 시공간이 아닌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소설이 허구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기록(글)된 모든 것이 허구일 수 있다. 기록이란 결국 인간이 기억하는 것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니 어찌 보면 진실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기억하는 것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것은 결국 실제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실패가 현실로 다가오자 오히려 저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실패했지만 저는 살아 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었고,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엄청난 아이디어가 있었죠.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 것입니다"


                                                         -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 -    


 [해리포터] 속의 희망차고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에 전 세계 아이들이 열광했다. 그런데 그런 해리포터의 탄생 배경은 그리 희망차지 않다. 작가 조앤 롤링은 이혼 후 어린 딸과 함께 가난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을 살았다. 어린 딸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살 돈이 없어 자신이 직접 쓴 동화가 결국 전 세계 아이들의 동화책이 되었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과 동심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마 그녀는 글을 쓰며 자신을 긍정하고 치유하는 회복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안톤 체호프는 소설과 희곡을 통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 엄청난 치유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중에서 -


  스토리텔링 능력을 키우는 것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이고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바로 이 긍정적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자아를 이야기 속에 투영함으로써 여러 다른 캐릭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만들어냄으로써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을 높이고 자신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무너질 수도 더 강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이 대목에서 다시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남긴 말처럼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나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글을 쓰는 것 또한 스스로를 긍정하고 치유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체험하였기에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일푼으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위인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사실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

  
  꼭 위인이 되라는 말은 아니지만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삶에서 쓰러지지 않으려 불안에 떨며 사는 것보다 쓰러지고 일어서는 법을 반복하며 쓰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나중에는 안 다치게 쓰러지는 법도 익히게 될 것이다.



  책은 다른 자기 계발서와는 달리 여러 가지 조사자료와 과학적인 실험 사례를 들어 회복탄력성의 중요성과 입증하고 있다. 아울러 어떻게 회복탄력성을 높이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테스트할 수 있는 설문 자료도 포함하고 있어 자신의 상태를 체크해 볼 수도 있다.


  주옥같은 글귀가 많아 읽은 내내 감흥이 끊이질 않는다. 흡입력 있는 저자의 문장 곳곳에 밑줄을 치고 메모까지 해가며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읽은 자기 계발서 분야의 책 중에선 단연 으뜸이 아닐까 생각된다. 꼭 한 번쯤 읽어보길 강추한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말처럼,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상태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

회복탄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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