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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9. 2022

생각이 내가 된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김승호

"물질은 생각이 눈에 보이게 된 상태일 뿐이다"

                                                           

                                                    - 책 속 인용문 -


2018년 벚꽃이 만발하던 어느 따사로운 봄날이었다. 세상이 모두 출근한 한적한 평일 오전, 조용한 언양의 작은 시골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간 회사 인간이 있어야 할 마땅한 장소가 아닌 곳에 있다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면서 신비로웠다. 그때 처음 느꼈다. 학창 시절부터 개근상과 결근을 잊고 살아온 삶이 가져다준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 순간이 잊히질 않는다. 뭐 지금은 그런 기분이 일상처럼 되어가고 있지만...


그때 도서관에 꽂혀있던 수많은 책 중에 왜 하필 이 책을 선택했는지 아니  왜 이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인지 모르지만 스치듯 생각 없이 펼쳐본 책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그림들과 함께 적힌 글귀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도서관 책장들 사이에 서서 그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슴에 맺히는 듯한 글귀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도서관에서 그 책과 함께 했다. 그날 하루 동안 그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을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읽고 있다. 감회가 남다르다. 또 그때와는 다른 감상이 밀려든다. 


사장 만드는 사장


'김승호' 사장을 만드는 사장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는 돈에 관련된 강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세상에 이로운 사장이 되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다. 왠지 모르지만 그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꽤 뚫어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심리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비즈니스 맨일 뿐이지만 그의 글귀는 마치 철학자를 연상케 할 정도록 깊이 있는 글을 쓰는 것 같다.


앎과 삶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마치 말장난 같은 책 제목이 그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내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나 보다. 작가가 세상에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 건 아마도 앎이 삶이 되지 않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부분은 앎과 삶이 분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도 아직 무엇 때문인지 그 답을 찾지 못했지만 앎과 삶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고장 난 채 시간이 흘러온 게 아닐까.


책 속에서 정말 좋은 글귀들이 많지만 다시 읽은 그의 책을 덮고 난 후 가장 인상에 남는 구절이 바로 서두에 적은 문구이다. 저 한 문장으로 그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남다른 통찰력을 가진 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 속 삽화 중에서]  꿈... 생각... 그리고... 현실


"생각은 모든 에너지의 시작이며 끝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모두 생각 에너지의 변형된 모습이다."


                                                         - 책 속 인용문 -


 이 구절을 읽고 떠오른 인물이 하나 있다. 그는 바로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이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당시 세상을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로 양분한 철학계를 관념론이라는 파격적인 생각으로 뒤흔들어 놓은 자이다. 그 이후 모든 서양 철학계의 뿌리가 그에게서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그의 이론이 저 문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칸트 이전까지 모든 이들이 대상을 중심으로 하던 생각을 주체 중심으로 바꿈으로써 대상을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보기 이전에 우선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관심을 옮겨 왔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발상이지만 발상이 전환되려면 오랜 관성의 법칙을 깨부숴야만 가능하다.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무슨 말인지 어렵다. 예를 들어 보겠다.


지금 글을 쓰는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노트북과 작은 하얀 마우스 그리고 갈색 머그잔에 반쯤 마신 모카커피 그리고 하얀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노트북 화면 속 깜빡거리는 커서에 포커싱 되어 있다. 다른 사물들은 아웃포커싱 된 희미한 형체로 눈에 들어오고 있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


 우선 내가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시냅스를 통해 운동 신경계로 이어져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한 물리적 운동으로 가상의 공간에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글자가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문단이 되고 생각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완성되고 내가 업로드를 하면 이 생각이 공유되고 다른 이들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각의 에너지가 온라인 공간에 콘텐츠로 시각화되어 변형된 에너지로 전달된다. 생각이 현실 속에 이야기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들(노트북, 머그컵, 모카커피, 블루투스 이어폰) 또한 최초 누군가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컵은 땅에 떨어진 것들을 주워 먹던 원시 인류가 생각해낸 결과물이고, 노트북은 종이 위에 적힌 글과 그림 그리고 악기로만 들을 수 있던 오프라인 상의 모든 감각정보를 언제 어디서라도 장치 하나로 보고 들을 수 없을까 고민하던 인간의 생각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머그잔에 담긴 모카커피 위에는 우유로 그려진 하트 모양의 그림은 맛으로만 즐기던 커피에 보는 즐거움을 더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인간의 생각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리고 어제는 분명 완전한 하트 모양이었던 것이 오늘은 반쪽으로 바뀐 것은 오늘 바리스타의 기분과 생각이 어제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어제 저녁 남자 친구와의 다투었던 기억 생각이 지금 나의 머그잔 위에 구현된 것이다.

반쪽은 어디로...?


"전 우주를 통해 가장 강력한 힘은 중력(重力)이나 전자기력(電磁氣力), 강력(強力)이 아니다. 우주의 가장 큰 힘은 생각의 힘이다."

                                                         - 책 속 인용문 -


  내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 어느 조용한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 5년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4년 전 어느 날 조용한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속에서 이전에 없던 생각이 피어올랐고 그 생각은 뇌리에 남아 나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이전에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또 다른 새로운 생각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과거의 삶과 완전히 차단된 새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생각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생각의 전환이 가져오는 파급 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지금 인류가 이룩한 눈부신 발전과 그 이면에 나타난 재앙 또한 모두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위한 생각(아이디어)은 풍족한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정신적인 빈곤과 피폐함 그리고 자연의 파괴를 가져왔다.


"생각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파괴적이거나 건설적이 된다"

                                                              

                                                        - 책 속 인용문 -


 생각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생각도 마치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와 같다.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 뒤에 숨겨진 이기적인 생각은 폐해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기발하고 발전적인 생각에도 선함(긍정)과 악함(부정)이 묻어있다. 선한 생각은 선한 에너지를 악한 생각은 악한 에너지를 옮기고 퍼뜨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에너지로 전환되어 우주에 뿌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Off-line)에서 물질로 혹은 가상현실(On-line)에서 콘텐츠(글, 그림, 영상)로 구현되고 많은 이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얼마 전에 아는 지인이 범죄에 연루되어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 그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마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며 뻗어 나가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그에게서 감지되는 부정적인 생각은 내가 품고 키우고자 하는 긍정적인 생각의 씨앗마저 앗아가려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전에 없던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그의 부정적인 생각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의 부정적인 생각은 갈수록 커져갔고 생각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듯했다. 생각(보이지 않는)이 현실(보이는)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항상 불안하고 몸은 피폐해지고 있음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더 이상 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긍정적인 생각이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했던 접근이 오히려 나의 긍정적임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만들 것 같았다.


"예수는 낮은 곳에 그리고 어두운 곳에 발을 들여 그들을 밝은 곳으로 인도했잖아"


예수를 믿는다는 자들이 하는 행동이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예수의 행적과 생각을 동경하면서 왜 그런 행동에는 인색한지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우리는 예수가 아니다. 긍정과 선함으로 부정과 악함을 이겨내고 그들을 긍정과 선함을 끌어내는 역할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변화는 타인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생각의 변화에 계기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변화는 스스로가 부서져야만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


 아무도 알을 깨뜨려 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미 알을 깨고 나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다른 알이 또 우리를 감싸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세계를 깨부수고 나오면 또 다른 세계가 자신을 덮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건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와도 같다. 우리는 계속 자신의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허물을 벗어야 성장을 할 수 있다. 허물을 벗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인생은 계속 허물을 벗듯이 생각의 틀을 깨뜨리며 성장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느냐가 자신의 생각을 만든다. 인풋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아웃풋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이전과 달라짐은 내가 존재하는 시공간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건 나의 의도적인 노력과 비의도적인 상황 모두가 작용한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상황이 이끈다면 자연스럽게 변화될 수도 있다.


의도적인 노력은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나의 성격으로 인해 책을 보며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것이었고 비의도적인 상황은 내가 낯선 환경 속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것이다. 과거에는 책도 보지 않았으며 익숙한 환경 속에서 항상 익숙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았다. 나의 생각에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적잖이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앞으로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잃었기에 얻었다고 생각한다. 4년 전 나를 사로잡은 생각이 방향을 틀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관성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우리는 일상 속에서 반복된 생각 속에 갇혀서 살아간다. 물론 그 생각이 확장되고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긴 하지만 전환되는 계기는 드물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를 그 속에 머물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관성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가는 길만 가고 그 자리에만 안주하려 한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 전환(천동설-> 지동설)처럼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관성과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들로 살아가는가. 그 생각이 당신을 지배하고 당신이 될 것이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 글 김승호, 그림 권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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