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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12. 2023

우주와 우리는 다르다

세상을 본받지 않는 자들

♩♬이 세상을 본받지 않으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는 기도한다. 세상 속에 머물면서도 세상을 본받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예배당에 엎드려 저마다의 간절함을 가지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자신과 그들이 삶이 변화되길 기도 한다. 세상에는 노오력과 여얼씸이로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세상은 노력과 열심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긴다. 항상 바쁨 속에 놓여 그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기도하는 자

물론 노력과 열심히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이 에너지를 쏟아내는 시공간이 내가 가야 할 길인지도 모른 체 누군가가 시켜서 아니면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길이라 그 길 위에서 서서 노력과 열심히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공이라 여기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향해 달려간다.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성공 향한 욕망은 끊임없이 더 많고 더 높은 성공만을 쫓는다. 이상하게도 이것들은 채우면 채울수록 더욱 공허함만 밀려온다. 쫓아가면 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다.

 

우주와 우리의 섭리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길은 끝없는 욕망 충족의 길임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우리의 욕망을 먹고 성장한다 아니 팽창하고 비대해진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단지 우리는 그것이 성장이며 발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우주가 멀어질수록 빛의 속도로 팽창해 나가듯 우리의 욕망 또한 더 빠르게 끝없이 팽창해 간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주의 섭리가 마치 인간의 욕망과 같다. 하지만 또한 우주 속에 수많은 행성들은 중력을 가지고 있고 주변의 것들을 끌어당긴다. 저마다의 중력은 다르지만 주변에 것들이 멀어지지 못하도록 잡아두고 끌어당긴다. 마치 지구(행성)가 달(위성)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력 = 끌림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끌리는 중력 같은 기운을 느끼곤 한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유독 누군가에게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끌림이 있다. 우리 주변에도 지구(행성)처럼 약한 끌림 혹은 태양(별, 항성)처럼 빛나며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다. 강한 중력은 강한 영향력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같은극끼리 서로를 밀어내며 같이 있는 것이 힘든 관계도 없지 않다. 이런 의미로 봤을 때 멀리 떨어진 은하가 가속도를 더해가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 또한 물리적(거리적)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소원해지는 것은 우주의 섭리와도 같다.


중력, 즉 이 끌림은 강도와 범위가 저 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태양처럼 강력한 중력으로 태양계의 많은 행성들을 끌어당기듯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또 다른 은하에는 태양보다 더 빛나고 강한 중력으로 더 많은 행성들을 끌어당기는 항성(별)들이 존재한다. 이 항성들은 강력한 빛과 에너지를 내뿜으며 태양보다 더 많은 행성들을 끌어당기고 있을 것이다. 밤하늘에 유난히도 빛나는 별들은 바로 수많은 행성들을 거느린 존재들인 것이다.  


성인(人), 별 같은 존재


인간 세상에도 우주에서처럼 항성(별) 같은 존재가 있다. 만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있다. 우리는 그런 인물들을 성인이라고 부르곤 한다. 성인(聖人)은 본래 성인 성(聖) 자에 사람 인(人) 자를 써서 표현하지만 별과 같은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성인(人)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우리가 빛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을 스타(Star)라고 표현하는 건 어찌 보면 아주 과학적이면서 철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영향력을 끼친 인물을 찾으라면 누구일까? 역사 속에는 수많은 성인들과 위인들이 있지만 인간의 역사를 그의 이전(BC)과 이후(AD)로 나눈 인물이 있다.

Jesus Chirst

예수(Jesus), 우연찮게도 오늘(4/9)은 그의 부활절(Easter)이다. 예수는 살아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의 여행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땅에 새로운 왕이 들어설 기대를 안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세상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외면했다. 새로운 세상을 그리던 사람들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듯 보였다.


그가 죽고 사흘 뒤 그는 다시 살아났고 사람들 앞에 다시 섰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꿈을 안겨주고 떠났다. 그리고 그는 인간 세상을 그의 전(BC)과 후(AD)로 나누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서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을 남겼다. 성공하는 자는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성인과 위인들은 죽어서 영광을 누리고 귀감이 된다. 때론 죽어야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죽음은 끝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영원하고 더 강력한 힘을 가져온다.


죽음이 영생으로


별(항성)이 죽으면 블랙홀이 된다. 별은 빛을 내뿜지만 블랙홀은 이 빛까지 빨아들인다. 그래서 빛도 존재할 수 없기에 블랙홀인 것이다. 블랙홀은 별(항성)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중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이건 마치 빛이 있기 전, 즉 빅뱅 이전의 세계와도 같다. 완전한 어둠이 존재하는 세계이며, 빛이 폭발하기 직전 아주 작은 부피 속에 모든 것(엄청난 질량)을 잡아두고 있는 상태와도 같다. 신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세상 게임을 시작하기 직전이 아니었을까?

블랙홀, [인터스텔라] 중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 [창세기 1:3] -


블랙홀은 너무도 강한 중력으로 시공간이 휘어지는 것을 넘어 우리가 상상 수 없는 차원으로 빨 들인다. 영화[인터스텔라] 마지막 부분에 쿠퍼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어린 시절 딸의 방으로 가서 딸을 지켜보는 것처럼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블랙홀은 그 엄청난 중력으로 인해 시간을 잡아두어 모든 물질이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 중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지구보다 중력이 몇 배나 더 강한 밀러행성에 도착한 쿠퍼일행이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왔을 때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로 그들을 맞이한 동료를 보고 놀라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의 중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끌림이다. 그런 중력은 아마 시간 멈춰버릴 것이다. 블랙홀 속은 우리가 여태껏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일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닐까. 시간이 멈추니 생명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영생을 누리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 속의 엄청난 속도와 극도로 높은 온도 그리고 압력으로 생명이 버틸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있을 수도 없다. 아직은...)


그럼 혹시 블랙홀은 다시 빙백을 준비하는 곳이 아닐까? 주변의 모든 것을 아주 작은 부피 속으로 끌어당겨 엄청난 밀도로 압축되어 그 정도가 극에 달했을 때 다시 폭발하면서 또 수많은 별(항성)과 행성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아닐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25~26] -


이건 마치 예수가 죽고 다시 이 땅에 재림하는 순간과 일맥상통한다. 세상을 쓸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 구원받은 자들은 다시 빅뱅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다는... 그럼 구원받은 자들은 그 극한의 속도와 열과 압력의 공간인 블랙홀에서 영생을 누리며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주의 계속적인 확장


빅뱅(천지창조) -> 항성(별, 빛과 중력 = 메시아) -> 블랙홀 (강력한 중력, 성령 = 종말과 구원) -> 다시 빅뱅 


그럼 우주가 계속 확장되고 멀어지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가? 항성이 죽어 블랙홀이 되고 블랙홀은 다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이때 엄청난 중력으로 주변의 행성들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블랙홀은 그 부피를 줄이고 질량을 늘리며 엄청난 밀도와 압력으로 하나의 점이 되어 다시 폭발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우주는 계속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우주의 모든 은하는 과거와 미래의 천지들이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이어진 공간일지도 모른다.

Big bang

그리고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스토리와 흡사하다. 마치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그 속에 빛나는 별(항성, 태양 = 메시아)을 두고 수많은 행성들이 그의 곁에 머물며(중력, 영향력) 그를 따르지만 대부분은 세상의 욕망을 쫓아 끝없는 우주 밖으로 나아가 길을 잃어버린다. 시간이 흐르고 별이 지면 그때에 비로소 그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빛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진리와 영향력(성령)은 더 큰 힘을 발휘하며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 속으로 빨려 들어온 존재들은 새로운 세계(5차원?)를 경험하고 때가 되면 다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어찌 보면 계속 멀어지는 우주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우주의 큰 섭리인 멀리 밀어내는, 즉 세상의 길과 같이 중심에서 멀어져 가지만 그중에서도 그 길을 거스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한없이 멀어지는 우주 속에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강한 중력, 즉 강한 에너지로 끌어당기는 존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영생에 다가가는 것과 같다.


세상을 본받는 자


세상을 닮아가는 것 즉 세상을 본받는 존재는 우주처럼 끊임없이 무한대로 팽창해 가는 욕망을 쫓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빛에 다가가고 닮아가는 것은 그 반대이다. 끌어당김이고 영생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의 빛에서 시작한 우주가 엔트로피가 증가가며 팽창해 나가는 것은 어쩌면 신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든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은 그 속에 빛과 에너지를 내뿜는 존재(항성)들을 만드시고 서로를 끌어당기게 만들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중력(에너지)이 강한 곳에 머물수록 그 생명은 연장된다. 하지만 무한대로 증가하는 욕망(엔트로피)처럼 우주의 법칙 즉 세상의 법칙을 따라가는 자들은 빛과 중력에서 계속 멀어지며 광활한 우주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신은 게임을 지켜보며 빛에서 멀어져 가는 대부분 인간들 속에서 빛의 곁에 머물고 다가서는 자들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고 나면 그들을 새로운 영생의 세계 속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당신은 빛에 머물러 영생으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욕망을 따라 정처 없이 끝도 없는 우주를 향해 달려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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