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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11. 2023

벗어나야 보인다

서울역에서...

항상 서울에 올 때면 기차를 타고 왔다.


서울역에 도착하면 항상 역사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울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서울역 역사 앞에 서서 탁 트인 앞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한대 물고 혹은 커피를 마시며 서울의 공기를 함께 들이켰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그 공기의 느낌만 달랐을 뿐 보이는 것은 항상 비슷한 것만 보였다. 역사 앞에 보이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과 남대문 경찰서, 서울 스퀘어 건물...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지하도로 내려갔다. 서울에 온 목적(업무)을 위해 목적지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서울에 여행을 왔기 때문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해 장장 6시간 동안의 완행열차(무궁화) 안에서 소진한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그리고 부족한 데이터 때문에 와이파이를 써야 했다. 하지만 역사 앞 스타벅스는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다. 그 어디에도 내가 앉아서 쉴 곳과 충전할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대로의 반대편 멀리 카페가 보였다.


서울역 앞 왕복 20개 차선을 가로질렀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넓은 대로를 건너본 기억이 거의 없다. 수도 없이 서울역에 왔지만 한 번도 역사 앞의 대로를 건너갈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서울역에 와서 이 대로를 건너서 카페를 이용하려는 여행객은 드물 거라는 생각이 적중했다.


대로 건너편은 카페는 그나마 한산했다. 앉을 곳과 충전할 곳을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몸과 핸드폰에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며 창 밖을 내다봤다. 그때 처음으로 서울역을 바라봤다. 서울역에 수도 없이 왔지만 한 번도 서울역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사는 곳과 머무르는 곳을 제대로 보려면 그곳을 떠나야만 함을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삶 속에서 일상 속에서는 결코 나의 삶과 일상을 바라볼 수 없음을 모르고 살았다. 내가 있는 곳을 제대로 보려면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봐야 한다. 하지만 여태껏 머물고 있는 곳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서울역에는 지방 각지에서 올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분주히 발걸음 옮겨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사 지하도로 줄지어 내려간다.  모두가 오늘도 삶과 일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들 가장 빠른 경로로 목적지를 향해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머물고 있으면서 또 자주 지나다는 곳을 가장 잘 모르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오래 머물고 자주 보고 지나다닌다고 기억되고 의미 있지 않다. 기억 의미는 항상 목적이 없을 때 남는 것은 아닐까?


벗어나야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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