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랑

데모도 ep30

by 글짓는 목수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송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윤아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윤아는 자신이 가진 수호에 대한 미움을 송이한테까지 전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송이가 아빠에 대해 물어올 때면 아빠가 멀리 호주에서 자신들을 위해 힘들게 돈을 벌고 있다고 얘기했다. 송이는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윤아는 송이가 미움이 아닌 사랑의 마음을 키우며 자라나기를 바랐다. 아직은 현실의 냉혹함보다는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할 나이였다. 그 꿈을 아이에게서 빼앗는 것보다 가혹한 벌은 없다. 볼 수도 없고 연락도 되지 않는 아빠라는 상상의 존재를 이상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전적으로 윤아의 몫이었다. 윤아는 현실의 수호가 아닌 자신이 바라던 수호의 모습을 송이에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으아아 앙~ 아빠 보고 싶어!!!”


윤아는 송이가 아빠를 애타게 찾을 때면 송이에게 선물을 하곤 했다. 윤아는 송이에게 커다란 바비 인형을 선물했다.


"아빠가 호주에서 보내온 선물이야"

"이야~ 정말? 아빠 짱!"

"송이야!”

“응?”

“아빠가 이제 더 멀리 깊은 산속으로 일하러 가서 연락하기가 힘들데..."

"히잉~ 아빠 목소리 듣고 싶은데..."


윤아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이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있었다.

윤아의 입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의 스토리가 계속 이어질수록 송이의 아빠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한 숭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윤아가 송이를 데리고 밖으로 산책을 가거나 나들이를 나갈 때면 송이는 항상 그 바비인형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주변에 아빠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송이는 아빠가 선물해 준 바비 인형의 볼에 뽀뽀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윤아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택건씨, 혹시 저희 수호씨 연락 온 적 없어요?]


택건이 한국에서 새로 이직한 회사생활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둘의 결혼 이후 처음으로 윤아로부터 받은 메시지였다. 윤아는 호주에서 연락이 두절된 수호의 흔적을 찾으려 한국에 있는 수호의 유일한 친구인 택건에게 연락했다. 혹여 수호로부터 어떤 기별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연락했다.


[아뇨… 없었는데요]


택건은 마음에 없는 거짓 문자를 보내야만 했다. 그건 수호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윤아한테 연락 오면 나한테 연락 왔다는 얘기 절대 하면 안 돼 알겠지?"

"왜?!"

"아~ 그럴 일이 있으니까 좀 부탁한다 친구야! 알았지?"

"그… 그래 알겠어"


택건은 윤아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 한 달 전쯤 수호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연락의 목적은 돈을 좀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급히 써야 될 한국돈이 좀 필요하다며 자신의 한국 계좌로 100만 원만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연말에 아내와 송이를 데리러 한국에 들어올 꺼라면서 그때 돈도 갚고 크게 한턱 쏘겠다며 호언장담을 하는 턱에 의심 없이 돈을 빌려줬다. 수호는 돈을 빌리면서 자신이 연락한 사실을 윤아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택건은 비밀을 지켜주는 것 또한 친구와의 우정이라고 생각했기에 윤아에게 거짓말로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수호한테 연락 안 온 지 좀 됐는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무슨 일은요. 아님 됐어요. 택건씨는 잘 지내죠?]

[네… 뭐 요즘 이직하고 나서 새로운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네요]

[그러시구나…]

[참! 송이는 잘 크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송이 태어나고 한 번도 못 봤네요]

[예, 이제 말도 해요 하하]

[벌써 그렇게 컸어요? 와~ 시간 참 빠르네요]

[택건씨도 빨리 좋은 분 만나셔야죠]

[좋은 분이 안 나타나네요, 내가 나쁜 놈이라서 그런가... ㅋㅋㅋ]


택건은 윤아의 메시지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녀 특유의 침착함이 느껴졌다. 때문에 택건은 둘에게서 어떤 심각한 상황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택건은 바쁜 직장생활 속에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었다.




"허억허억!"

"아~~ fuck ~~ 아"


침대 위에 알몸으로 뒤섞인 남녀의 깊은 신음 소리가 길게 터져 나왔다. 본연의 피부색을 가린 화장기 짙은 하얀 얼굴 위에 붉은 입술 그 위에 검고 작은 점이 강한 색의 대조를 이룬다. 날렵한 눈매와 노란색에 가까운 긴 생머리가 강렬한 인상을 더했다. 수호의 골반 위에서 몸부림치며 목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나체가 활시위처럼 휘어졌다. 여자는 탄성과 교성이 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수호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한동안 적막 속에서 남녀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둘은 조금씩 식어가는 그 흥분과 쾌락을 말없이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Dingo! 你最近为什么不来教会呢?” (딩고! 요즘 왜 교회 안 나와?)

"哎!你别叫我dingo好吗?不为什么,就不想去了”( 야! 내가 딩고라고 부르지 말랬지? 왜는 무슨 왜야? 그냥 나가기 싫어!)

”你不见了我就这么过来找你嘛,可真奇怪!你没说不让我过来, 以前你都不让我联系,你最近怎么跟老婆不好了?(오빠가 안 보이니까 내가 이렇게 찾아오잖아, 근데 웬일이야 내가 온다는데 마다하지 않고? 언제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그러더니, 뭐 요즘 와이프랑 사이가 안 좋아?)

"住口! Vicky, 你就借给一千块钱 好不好”(시끄럽고! 빅키! 1000불만 좀 빌려줘라)

"那笔钱用在哪?”(어디에 쓰려고?)

"这你别问了”(그냥 좀 쓸데가 있어)


수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빅키는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낚아채듯이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수호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둘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그 나중은 필연에 가까웠다.




빅키는 중국 여자다. 정확히는 호주 국적을 가진 중국 여자이다.

수호가 빅키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회사 연말 송년회 회식 때였다. 그때 수호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아 기술자로 성장해 있었다. 그가 속한 대규모 공사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공사의 총괄 매니저가 수고한 직원들을 집으로 초청해 연말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Hey! Dingo! Thanks to you, we made it within the deadline"(헤이 딩고, 너 덕분에 우리가 정해진 기간에 해낼 수 있었다.)

"It's thank to all the effort of us including you Tim, not only me"(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팀 너를 포함한 모두의 노력 덕분입니다)

"You're a good man! I make sure that you'll be a foreman our team next year!, Ok everybody cheers!" (넌 멋있는 녀석이야! 내가 장담컨대 넌 내년에 현장소장이 될 거야, 자 다들 건배!)


팀은 그리스 사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호주 국적의 그리스 이민 2세이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호주 시민이다. 그는 호주에서 카펜터를 거쳐 빌더가 되어 지금의 중국 화교계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팀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가 중국 화교계 건축회사라 현장의 직원들의 대부분이 중국계 출신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프로젝트 매니저이지만 중국 직원들을 컨트롤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언어적인 장벽과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았다.


회사는 상당수의 직원을 중국에서 데려온 인부들을 썼다. 체류비자를 내주는 조건으로 값싼 고급 인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중국에서 같은 현장에서 일해서 버는 돈에 비하면 상당히 큰돈이었다. 회사는 고국의 인민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돈을 벌고 또 그들도 돈을 벌게 하고 이곳에 정착하게 하는 상부상조의 시스템으로 호주 안에 또 다른 차이나(China)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취업 정책상 모든 외국계 회사도 일정 수 이상의 호주 국적을 가진 빌더 출신의 사람을 고용해야 했기 때문에 팀이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처음 팀이 수호를 만났을 때는 수호도 택건과 마찬가지로 공사 현장의 말단 데모도였다. 그때 그는 현장의 갖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일을 배우고 있던 시기였다.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서 공사 현장을 정리하고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나와서 일하는 모습에 팀은 그를 좋게 보고 있었다.


팀은 중국인들이 대부분인 공사 현장에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그들과의 잦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수호는 중국 인부들과 팀 사이에서 통역을 자처하며 서로의 입장을 중재하고 해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더욱이 수호는 한국인이었기에 중국 직원들과 다른 국적의 직원들과 그리고 호주 매니저 사이에서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은 중재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었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그는 점점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수호의 활약으로 직원들 간의 내부 분열로 진척이 없던 공사에 속도가 붙고 현장에 활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1년간의 대규모 프로젝트 공사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후로 팀은 항상 현장을 점검할 때면 항상 수호를 대동하고 다녔고 수호는 그의 오른팔이 되었다.


"请慢用!”(천천히 드세요)

“你就觉得我是个中国人?”(당신은 제가 중국사람인 거 같아요?)

“那你不是?”(그럼 아닌가요?)

“하하하"

"I'm a Korean"(전 한국사람입니다)

"What a surprise! but how could you speak Chinese very well like this?"(놀랍네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중국말을 잘하세요?)


빅키는 수호 앞에 스테이크 접시를 내려놓으며 처음으로 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당시 빅키는 팀의 와이프였다. 빅키는 집에서 열린 연말 파티에서 수호에게 음식을 내어주며 중국말로 인사를 했다. 그녀는 수호가 다른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에 그도 당연히 다른 직원들처럼 중국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 수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때부터 그녀는 파티 내내 야릇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봤다. 물론 그 호감의 시작은 수호의 수려한 외모와 남다른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수호 또한 그런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암수의 끌림은 둘을 위험한 관계로 몰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과 기회는 같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수호는 위험 속에서 또 다른 기회도 보고 있었고 빅키는 위험 속에서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위험할수록 짜릿한 법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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