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꿈

데모도 ep29

by 글짓는 목수

둘은 다시 작별해야 했다.


수호와 윤아는 새 생명과 잉태와 함께 미래를 다시 약속했지만 당분간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윤아는 수호와 함께 호주로 가고 싶었지만 임신 중독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 생활하기 힘들었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는 한국에 남아있어야 했다. 수호도 이제 애까지 생긴 상황에 자신이라도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다시 호주로 향했다. 둘은 애가 나오고 상황이 안정되면 호주에서 다시 합치기로 마음먹었다.


송이는 예상보다 세상에 일찍 나왔다. 엄마의 임신중독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또다시 자신을 지우려고 할지 모를 엄마에게서 빨리 분리되고 싶어서였는지 임신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33주 만에 조산아로 세상에 태어났다. 송이는 세상의 빛을 보자마자 엄마의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속에서 인공호흡기의 작은 호스관에 의지한 채 떨어져 지내야 했다. 다행히 송이는 건강을 조금씩 회복했고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윤아는 혼자서 송이를 키우며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잘 나가던 발레 요가학원도 접고 육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송이는 어려서부터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엄마를 붙잡고 있어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송이는 자신을 지우려 했던 것을 무의식에서 기억하는 것일까. 윤아는 잠시만 떨어져도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송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산후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윤아는 다시 수호와 합치기 위해 그와 연락을 했지만 문제는 또다시 수호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임신기간 초기에는 자주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하며 사랑을 이어가던 둘은 송이가 나올 즈음에는 연락이 뜸해졌다. 송이가 세상에 나오고부터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가 매달 그녀에게 부쳐주던 생활비도 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쁜 새끼!’


윤아는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어느 늦은 밤 송이가 잠든 사이 몰래 홀로 밤거리로 나섰다. 머리를 식혀야 했다. 그냥 멍하니 밤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성당이 보였다. 성당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윤아는 빛이 새어 나오는 열린 문틈 사이를 통해 조용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흐흐흑~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있으면 어디 대답 좀 해줘요”


종교도 없는 윤아가 평소 믿지도 않는 신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이었다. 더 이상 믿을 곳도 없으니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된다. 성당 제일 뒤 구석 자리에 앉아 앞에 반짝이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었다. 눈물도 같이 쏟아졌다. 여태껏 그 어떤 힘든 일들이 있어도 누굴 원망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원망과 기도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다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채찍질하며 뭐든지 버텨내고 이겨내었던 그녀였다.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컨트롤되지 않는 상황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너무 오랜 시간 참아온 설움은 눈물이 되어 한없이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지며 성당 앞의 십자가의 형상이 뿌옇게 희미해지며 그 빛이 더욱 밝게 눈 안으로 들어온다.


“으응?! 뭐지?”


그 환한 빛에서 희미한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 형상은 점차 사람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떠나거라~ 너와 하나된 자를 만날 것이다. 하나가 되면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하나가 나뉘어지면 하나는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리라”


형상을 가진 빛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그 형상은 너무 강한 후광 때문에 그 윤곽만 보일 뿐 윤곽 안은 그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네?! 누구세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윤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십자가에서 나온 빛이 눈에 고인 눈물 때문에 굴절되고 흐려져서 보이는 것 같았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다시 쳐다봤다. 하지만 그대로였다. 잠시 뒤 그 빛은 다시 십자가 속으로 사그라들었고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윤아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비로운 경험에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아아 아하~ 제.. 발… 이.., 이러시면 안 돼요”


그때 십자가 뒤 쪽에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은 고해성사를 나누는 밀실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늦은 새벽 성당 안에 누군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띠리리링”


그때였다. 그녀의 핸드폰 벨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때 고해성사를 하는 밀실에서 빠져나온 한 여인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성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잠시 뒤 그 안에서 신부 복장을 한 사내가 나와서 조용히 밀실 뒤의 다른 통로로 사라졌다.


“네?!, 뭐라고요? 아~~ 알았어 빨리 갈게요 죄…죄송합니다”


윤아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잠에서 깬 송이는 엄마가 없는 걸 알고는 자지러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이라고 믿기 힘든 높은 데시벨이었다. 불 꺼진 아파트 단지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베란다로 얼굴을 내미는 주민들이 보였고 아이의 울음소리만큼 불만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송이는 한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윤아는 송이에게 모든 기운을 빼앗기는 듯했다. 윤아는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피부는 부석해지고 몸은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갔다. 잠도 오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낮에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칭얼거림에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이상한 생각까지 들곤 했다. 그녀는 또다시 울음보가 터진 송이를 멍하니 쳐다보다 자신도 모르게 그 울음소리를 멈추려 아이의 얼굴에 베개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송이의 울음소리가 베개에 막혀 잦아들고 있었다.


“쾅! 빠지직”


갑자기 거실 베란다 창문에 뭔가 부딪치는 소리에 윤아는 깜짝 놀라 송이를 누르고 있던 베개를 치웠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그곳에는 까치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 목이 꺾인 채로 베란다 난간과 유리창 사이에 흉측한 몰골로 끼어 있다.


“으에에에앵”

“미... 미안 송이야, 엄마가 잘못했어”


송이는 자지러질 듯이 울어댔다. 윤아는 그런 송이를 품에 안고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윤아는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마치 동굴처럼 퀭하게 변해갔다. 그녀는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잠시나마 모든 걸 잊고 현실을 벗어나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 번은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대는 송이 옆에서 수면제에 취해 자고 있다가 또 옆집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와 발견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 윤아는 송이와 함께 친정 집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친정어머니의 육아지원으로 윤아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윤아는 끊어진 수호와의 연락과 송이의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에 대한 원망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 나쁜 개새끼...”


이제 수호는 윤아에게 인간이 아닌 동물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게 다 내 탓이지"

"...."

"그게 참 말처럼 잘 안 끊어지더라고... 나는 한 번 잘 살아보려고 그랬던 건데..."

수호는 또다시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호주로 돌아온 수호는 휴일근무도 자청하며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기 시작했다. 태어날 아이와 윤아를 호주로 데려와 살려면 일단 돈이 더 필요했다. 영주권도 없이 호주에서 세 가족이 함께 살려면 어림잡아 자신이 벌어야 할 돈이 어느 정도인지 계산이 되었기에 쉴 수가 없었다. 더욱이 수호는 남들 못지않은 구색을 갖춘 가정의 모습으로 새 시작을 하고 싶었다.


혼자라면 예전처럼 일해도 남들에게 꿀리지 않고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아이와 아내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영주권이 없이는 아내와 아이를 위한 비자 비용과 보험료 등 체류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세 가족이 살려면 집도 셰어에서 렌트로 옮겨야 했다. 집값이 높기로 유명한 시드니에서 렌트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한 영주권이 없어 무상교육이 불가능해 나중에 아이에게 나갈 교육비용까지 생각하면 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를 더욱 옥죄었다. 모든 시간을 돈을 버는데 자신을 갈아 넣었다. 수호는 과거 자신 또한 부모 덕분에 경제적으로 남들에게 전혀 꿀리지 않으며 다 누리며 살아왔기에 물질적으로 금전적으로 부족함을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부모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그가 생각하는 눈높이를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도 한 판 해봐"

"전 그냥 복권이나 한 장 살래요"

"복권이 되겠냐? 차라리 뿅뿅이가 더 현실적이지 않냐?"

"이것만 당첨되면 진짜 윤아와 송이 데리고 여기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데..."


당시 수호는 성일과 같이 호흡을 맞추며 플라스터(석고보드 설치) 일을 하고 있었다. 성일도 수호의 도움으로 중국 회사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둘은 나름 실력 있는 기술자로 적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성일은 퇴근 후 항상 펍에서 수호와 감자튀김과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성일은 펍에서 뿅뿅이(슬롯머신) 게임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수호는 옆에 앉아 성일이 하는 게임을 지켜보다 심심한 나머지 그냥 재미 삼아 10불짜리 지폐를 한 장 슬롯머신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뭐가 뭔지도 모른 체 그냥 아무 버튼이나 누르며 위아래로 빙빙 돌아가는 화면을 맥주를 마시며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빵 빠라 방 빵빵빵 빵 빠라 방"

"와! 수호야! 너 잭팟 터졌다! 와 대박!"

"어랏!?"

"짝짝짝!"

"짝짝짝!"


주변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10불짜리 지폐가 한 장이 순간 10,000불이 되었다. 수호는 주변의 환호성에 얼떨떨한 기분이다. 펍 안에 웨이터들이 잭팟 기념으로 쟁반에 샴페인과 케이크를 들고 와서 축하 수호 앞에서 축하 세리머니를 선사했다.


"야! 존나 아깝다. 너 100불 넣었으면 십만 불인데... 야! 어쨌든 한 턱 쏴!"


그때부터 수호의 뿅뿅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수호는 일만 마치면 펍으로 달려가서 도박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반에는 운이 좋았는지 갈 때마다 200~300불씩은 따고 나왔다. 이렇게 따면 얼마 가지 않아 집도 살 수 있는 큰돈이 모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조금씩 배팅 금액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매일 노가다로 번 돈을 뿅뿅이 기계에 꼴아 박기 시작했다. 그날 일당을 게임으로 다 날리면 근처 ATM기로 달려가 현금을 뽑아서 그 돈 마저 날리는 날이 하루이틀 이어졌다.


"야~ 수호야, 적당히 해라. 집에 가자!"

"안 돼요, 본전은 찾고 가야죠!"

"씨발! 이 새끼 이거 정신 못 차리네, 가자니까 다 잃기 전에"

"놔요! 놔라고!"

“이 새끼 이제 형도 눈에 안 보이나, 막말하네. 완전 눈이 뒤집혔구먼…”


수호는 잃어버린 돈과 함께 이성도 잃어가고 있었다. 수호는 1년간 노가다로 땀 흘려 번 돈을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두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수호는 윤아에게 부쳐주던 생활비도 끊어버렸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온통 도박 생각뿐이었다. 그는 어느 날 큰 맘을 먹고 일도 가지 않고 ATM기에서 계좌에 남은 돈을 몽땅 찾아 시티의 가장 큰 카지노로 향했다. 그는 인생역전을 꿈꾸며 모든 걸 거는 일생일대의 올인 배팅을 했고 결국 모든 걸 잃어버렸다.


수호는 윤아와 송이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 폐인이 되어버린 그는 또다시 잠수를 타기 하기 시작했고 한국에 있는 모든 이들과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한 순간의 헛된 꿈은 결국 모든 꿈을 앗아가 버렸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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