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26
[윤아씨 같이 교회 갈래요?]
택건은 일요일 아침 윤아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 수호가 잠수를 탄지 또 나흘째가 넘어갔다. 며칠 전 새벽에 받은 삭제된 그녀의 문자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혹여 그녀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며칠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럴게요 송이랑 같이 갈게요]
"휴~"
택건은 윤아의 답장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택건은 가인에게 부탁해 같이 그녀의 집 앞으로 픽업을 갔다. 가인의 차를 타고 찾아간 그녀의 집은 시드니를 가로지르는 파라마타 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였다. 택건이 사는 동네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잘 정돈된 아파트 주변의 상가들과 도로 그리고 각종 편의 시설들이 택건이 사는 곳과는 대조적이다.
"오~ 여긴 뭐 딴 세상 같은데?"
"택건형님! 수호형네 처음 와 보시죠? 여기가 이래 봬도 시드니에서 알아주는 고급 아파트 단지예요. 뭐 백인들 사는 바닷가 고급 하우스까진 아니라도, 강변이라 선착장도 있고 경치도 좋고 아파트 단지 안에 학교도 다 있어서 애들 키우기도 좋고요. 뭐 그만큼 렌트비도 비싸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죠. 호주에서 중산층 이상은 돼야 이런 데서 살 수 있어요, 특히 여긴 돈 좀 있는 중국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군, 수호도 호주 와서 돈 좀 많이 벌었나 보지?
"수호 형은 렌트하고 있어요 렌트비가 주에 700~800불은 나갈걸요 그것도 각종 관리비는 제외하고"
"와~ 그렇게 비싸?"
"이런데 살려면 주에 최소 2000불은 넘게 벌어야 될 거예요"
"수호도 잘 버는구나"
"잘 벌었었죠, 수호 형 중국 회사에서 플라스터 기술자로 일할 때 주에 3000불씩 벌었어요"
"헐! 정말 그렇게 많이?"
"뭐 저도 그땐 주에 2000불 넘게 벌었는데요. 뭐 지금은 한인 인테리어 잡부지만"
"그랬구나"
"인생 진짜 한 순간인 거 같아요"
"둘이 잘 나갔네 너도 돈 많이 모았겠네"
"근데 돈을 다 어디 썼는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니가 모르면 누가 아냐? 하하하"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빌딩 숲으로 들어온 듯했다. 한국의 아파트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택건은 굳이 호주에서까지 왜 이런 아파트에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택건은 어린 시절 크진 않아도 앞마당이 있던 단독 주택에 살던 시절이 그리웠다. 문만 열면 바로 집 밖에서 햇볕도 쬐고 바람도 쐴 수 있었다. 크진 않지만 앞마당에선 개가 뛰어놀고 화단에는 푸른 황칠나무가 있었고 여름이면 나팔꽃이 나무와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며 보랏빛 세상을 만들었다. 화단 한 편에는 어머니가 심은 상추와 고추, 토마토 같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택건은 그런 환경이 그리웠다. 그런 택건은 생각과는 달리 어머니는 곳곳에서 솟아 올라가는 아파트들과 함께 치솟는 아파트 집값을 보며 빨리 돈을 모아서 그곳으로 입성할 날만 고대했다. 그리고 택건이 대학에 들어갈 때쯤 온 가족이 신축 고층 아파트에 입성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철문으로 차단된 공간은 마치 사람들과의 관계도 차단하는 것 같았다. 수평적으로 퍼져가던 주택가의 공간은 수직적으로 뻗어 올라간 아파트 숲으로 대체되면서 인간들의 눈도 높고 낮음이 생겨나고 모두가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려는 듯 보였다. 그에 상응하듯 고층 아파트의 가격은 저층보다는 항상 더 높은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한국은 보이지 않던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았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으로 되어가며 사람들의 마음도 높게 솟은 콘크리트와 벽과 두꺼운 아파트 철문처럼 굳게 닫혀버렸다.
"다들 왜 이런데 살고 싶어 하는 건지... 난 하우스가 더 좋은데..."
"여자들이 아파트를 좋아하잖아요"
"그런가?"
"에이 형님이 여자가 왜 없는지 이제 알겠네 큭큭"
"확증편향인데…"
"예?! 뭔 무슨 향이요?"
"됐다 마! 운전이라 똑바로 하쇼"
멀리 아파트 건물 입구 앞 보도블록 위에 한 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삐삐처럼 양쪽으로 묶은 머리에 한 손에는 사탕을 입에 물고 있고 다른 한 손에 또 다른 포장을 뜯지 않은 사탕을 들고 있는 여자 아이가 보였다. 옆에는 한국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유난히도 야윈 윤아의 모습이 택건의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날 택건은 수호와 윤아의 딸 송이를 처음 봤다.
"택건씨 반가워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잘 지내셨죠?"
"그러게요 이제야 얼굴을 보네요"
"참 그러게요. 미안해요"
"윤아씨가 뭐가 미안해요 하하"
"그래도... 그이 때문에... 이 멀리까지 왔는데…”
“아녜요 괜찮아요, 근데 얘가?”
“참! 송이야! 인사드려 아빠 친구 택건 삼촌이야"
"안녕! 난 송이!"
"송이야! 처음 보는 삼촌한테 존댓말로 인사해야지"
"아~ 씨~ 귀찮아! 몰라 몰라!"
송이는 엄마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고는 금방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다.
"윤아씨, 전 괜찮으니 어서 타세요. 예배시간 늦겠어요. 송이 공주님도 어서 탈까?"
"삼촌! 제가 정말 공주 같아 보여요?”
“그럼 공주처럼 이쁜데”
“무슨 공주요?”
"송이니까 송이버섯 공주?!"
"하하하, 그 송이가 아니고 한송이야. 꽃 한송이니까 꽃송이 공주죠!"
"그래 그럼 꽃송이 공주하자"
"근데 공주가 무슨 아기 시트에 앉아? 여기 앉기 싫은데..."
"꽃송이 공주가 다치면 안 되겠지? 그럼 교회 가서 친구들도 못 만나고 하나님도 못 만나니까"
"아이씨! 그럼 어쩔 수 없지, 하나님은 몰라도 공주도 친구는 있어야니까"
"오올치! 그럼 출발해 볼까?"
"택건씨 고마워요"
택건은 송이를 유아 시트에 앉히고 벨트를 매어주고는 앞자리에 앉혔다. 호주는 아동에 대한 카시트 기준이 엄격했다. 키가 145cm 이하의 아동은 필히 카시트에 앉혀야만 하는 규정이 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어마어마 하기에 아이가 있는 집은 카시트는 필수였다. 송이는 7살이지만 아직 키가 살짝 기준 미달이라 카시트에 앉아야만 했다. 윤아는 매번 차에 탈 때마다 카시트에 앉지 않으려는 송이 때문에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억지로 앉혀 놓으면 떼를 쓰며 달리는 차 안에서 벨트를 풀고 가만있지 못하는 통에 애를 먹어야 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외출하는 것이 윤아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호도 그런 송이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힘들어했다.
"택건~브라더! 롱 타임 노 씨"
"야~ 너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무슨 롱타임이니?"
"일주일이 짧아요? I miss you so bad! Don't you? 큭큭"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안 그래요?")
"Not that much" (그 정도는 아닌데)
아직 예배 시작 전이었다. 단상 위에서 찬양 준비를 하고 있던 안나는 택건을 보고는 환한 얼굴로 다가와 그에게 반가움을 전했다. 교회의 다른 청년들은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 택건을 불편해하는 것과는 달리 안나는 어느새 택건과 격 없는 사이가 된 모습이었다. 둘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격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안나의 모습을 다른 청년들은 의아한 모습으로 쳐다봤다. 윤아 또한 그런 안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랏! 이 아줌마는 누구예요?"
"어, 내 친구 와이프"
"친구 와이프요?"
"응"
"근데 왜 브라더랑 같이 와요?"
"뭐 그럴 일이 있어 너 찬양 준비 안 하니?"
"가... 가야죠. 그럼 나중에 봐요 브라더"
안나는 단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은 윤아를 아래위로 훑고 있었다. 다시 반주가 시작되고 밴드 멤버들이랑 다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찬양 리허설 중에도 그녀의 시선은 가끔씩 윤아와 택건을 향했다. 뒤이어 안 목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구세요? 윤아 자매님 아니세요?"
"네 목사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덕분에, 근데 수호 형제는 어디 가구?"
"그게..."
"목사님 예배 시작하는데요"
"어 그래요, 그럼 좀 있다 봬요"
"네 목사님"
택건은 윤아와 송이를 데리고 예배당 뒤 쪽 좌석에 앉았다. 사람들의 낯선 시선들이 느껴졌다. 항상 혼자 교회에 나오던 택건이 갑자기 낯선 여자와 아이가 같이 등장한 모습은 다른 신도들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과 의아함이 담긴 표정과 눈빛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 가족과 같은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밴드의 반주로 찬양이 시작되고 찬양을 인도하는 안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나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자꾸 택건과 윤아가 있는 쪽으로 시선이 옮겨 갔다. 찬양이 끝나고 안 목사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택건과 윤아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택건은 기도 중에 눈을 떠 옆에 앉아 있는 윤아의 모습을 슬쩍 훔쳐봤다. 윤아는 두 손을 꼭 쥐고 뭔가 간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택건은 다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그는 윤아가 다시 예전 한국에서의 활달하고 당당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가길 기도했다.
"아아아 앙~~~"
갑자기 예배당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기도를 하다 말고 일제히 울음이 터진 곳을 쳐다봤다. 거기엔 한 여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앞에는 송이가 서서 화가 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발로 마구 짓밟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윤아는 급히 송이에게로 뛰어갔다. 윤아는 송이를 붙잡고는 인형을 집어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돌려줬다.
"캬~~~ 악! 내놔! 쟤한테 주지 말란 말이야!"
송이는 귀가 찢어질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때 울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다가오더니 울며 넘어져 있는 아이를 둘러업고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윤아와 송이를 번갈아 가며 흘겨보며 멀어져 갔다. 예배당은 어느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당황스러운 안목사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윤아는 바닥에 주저앉자 발버둥 치며 우는 송이를 둘러업고는 교회 밖으로 뛰쳐나갔다. 송이는 엄마에게 업혀나가면서도 끊임없이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대었다. 택건은 둘의 뒤를 쫓아나갔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듯한 예배당 안은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그들이 나간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목사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청중 주의를 집중시키고 다시 예배를 진행했다.
멀리 잔디밭이 있는 공원에 있는 둘의 모습이 택건의 눈에 들어왔다. 송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무줄기에 붙어있는 사슴벌레를 발견하고는 신기한 표정으로 작은 나무 가지로 사슴벌레를 쿡쿡 건드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괜찮아요? 윤아씨?"
등 뒤에서 들리는 택건의 목소리에 윤아는 눈가에 흐르던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돌려 애써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뭐 자주 겪는 일인 걸요 하하"
"...."
"사실 송이는 *ADHD를 앓고 있어요, 사실 그것 때문에 교회를 와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애들이 다 그렇게 크는 거죠 뭐”
“고마워요 항상 신경 써주셔서, 저희가 오히려 택건씨에게 도움을 드리고 해야는데… 수호씨도 사라지고 참 미안하네요”
“도움이란 게 뭐 특별한 건가요? 서로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수호도 금방 다시 돌아올 거예요. 너무 걱정 말아요”
“차라리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예?!”
“아... 아녜요 아무것도…”
택건은 그 순간 윤아가 새벽에 보냈던 그 삭제된 문자메시지 속에 함축된 말 못 할 사연들이 실타래 풀리듯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택건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택건 삼촌! 이것 봐라! 나 사슴벌레 잡았지롱!"
송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해맑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한 손에 집어 든 사슴벌레를 자랑하며 택건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택건은 이곳 호주에 오기 전 그 지나온 적지 않은 시간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의 기억 속에는 10년 전의 당차고 멋있던 수호와 밝고 아름답던 윤아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ADHD(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