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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8. 2024

몸은 중년 마음은 청년

데모도 ep24

"드디어 형님하고 같이 일을 하게 되었네요"

"그러네 이제 네  사수네"

"하하하 사수까지야"

" 부탁해 가인 사수님!, 근데 여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 피팅(Shopfitting : 실내 인테리어 공사)이에요"

 

이른 새벽 택건과 가인이 만났다둘은 형광색 작업복을 입고  인테리어 현장으로 향했다가인은 교회에서 알게  지인을 통해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그도 사고 이후 한동안 이곳저곳 건축현장을 떠돌며 날품을 팔다가 교회에서 소개해준  피팅(인테리어 공사업체회사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마침 택건도 (Moon) 사고 이후 한동안  사장과 하던 지붕 공사일이 멈췄다택건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마냥  수는 없어 사장에게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그리고 택건과 가인의 동업이 시작되었다비록 데모도로  밑에서 일하지만 친한 동생이 동료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 가인아 일찍 왔네"

"이분은 접때 네가 얘기하신 형님?"

 맞아요

" 안녕하세요 이택건입니다."

"..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전한수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훤칠한 키에 짧은 머리 그리고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였다그는 호주에서  이름 있는 대형 인테리어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가 얼마 전에 독립해서 자신의 회사를 개업했다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드니의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었다. 그가  담았던 회사는 한인 인테리어 회사로 한인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는 회사였다 유명세라는 것이 가성비 좋은 인테리어를 구현해  결과였지만 또한  회사로 인해 시드니의 인테리어 업계 경쟁이  치열해졌다. 단가를 낮추고 괜찮은 효과를 내는  회사가 표준이 되어감에 다른 회사들도 그것에 따라가야만 했다이건 인테리어 목수들의 임금을 줄어들거나 일의 속도를 올려야 함을 의미하기도 했다그래서  회사는 시드니의 적잖은 한인 내장 목수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다

 

한수는  회사에서 이곳저곳 발로 뛰며 영업과 현장관리를 하며 임원까지 하고  회사를 나왔다삼십  중반에 전무라는 직급까지   있었던 것은 물론 그의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가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회사였기 때문이기도 했능력과 인맥이 융합된 결과라고 할까어딜 가나 인맥이 실력보다  중요한  한국이나 호주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님군대는 다녀오셨죠?”

 물론이죠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 했습니다.”

 택건 형님여기 한수 형님은 특전사 부사관 출신이세요

특전사… 대단하신데요

에이 뭘요여기 가인은 장교 출신인데요전혀 장교같이 안 보이지만요 하하

그럼 병출신인 제가 제일 핫바리네요 하하하

  

한국 남자들끼리 모이면  번쯤은 나온다는 군대 얘기는 해외에서도 변함없다한수는 한국에서 특전사 부사관 출신으로 전역하고 형의 권유로 호주로 넘어왔다처음엔 호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용병부대를 지원해서 근무하면서 호주 영주권을 따려고 했지만 형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다가 건축  일에 눌러앉아버렸다. 그는 특전사 출신답게 건장한 체격과 상남자 다운 성격 그리고 훤칠한 외모 덕분에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결국 그중에서 교회 원로 장로 딸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넘어갔다. 그렇게 부부의 인연을 맺고 호주에 영구히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다지금은 서른 중반에 벌써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얼마  호주 시민권까지 얻어 완전한 호주 사람이 되었다반면 가인은 학군단 장교 출신이었지만 불명예 전역으로 군대를 떠나왔다. 그에게서는 장교의 분위기를 느낄  없었다. 한수는 군인이 체질이고 가인은 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수는 호주에서 실내 인테리어 일을 배우고  후부터 모든 관심사는 관련 비즈니스로 옮겨갔다호주에  싱글 이민자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이곳에 빨리 정착하느냐이다정착은 바로 어떻게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느냐의 법적인 문제와 어떻게 먹고 살것이냐의 경제적인 문제 두 가지로 귀결된다한수는 첫 번째 과제는 여자를 통해 해결했고 이제  번째 과제를 해결할 차례였다이제 한국과 같이 부를 향해 달려갈 일만 남았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땅에 머물  있는 영주권을 따기 위해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착의 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진다. 일단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항상 언제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하지만 불안함은 간절함이 된다영주권이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이곳에 살기 위한 간절한 소망으로 그 모든 시련과 고통을 견딘다. 그것이 호주의 경제의 기반을 지탱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공사를 진행할 곳이 여기예요

 

한수는 주상복합 건물의 일층 상점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택건과 가인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상가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한수는 이곳에서 무슨 공사를  것인지 둘에게 설명을 했다한인 고객의 의뢰로 일층 상가에 일식 초밥 가게를 만드는 공사였다


당시 시드니에는 초밥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호주 백인들 사이에서 초밥이 나름 간편한 건강식으로 인식되어 많은 이들이 찾는 음식 중 하나였다. 테이크 아웃(포장) 초밥집은 큰 공간이 필요 없고 인테리어 비용이나 운영비용이 저렴해서 많은 한인들이 개업하는 사업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드니에는 일식 초밥집인데 한인이 운영하는 퓨전식 초밥집이 더 많았다. 실제로 시드니에는 상대적으로 일본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브리즈번이나 골드코스트 같은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한적한 도시를 더 선호하는 듯 보였다.


"아놔, 벌써 7시 반인데... 이 분은 또 늦으시네"


한수는 시계를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기술자 목수가 오지 않았다.  우선 제일 먼저 가게 한쪽 편에 주방 공간과 홀을 나누는 카운터 구조물을 만들어야 했다그는 가져온 설계도면  장을 가인에게 넘겨주며 간단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미안 내가  늦었지?"

 

그때였다. 중년과 노년의 경계를 지나는 듯한  어르신  못주머니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입에는 담배를 문채 터덜터덜 상가 입구로 들어왔다.

 

"이제 오셨어요어르신"

"얘들이야오늘 같이 일할 애들이?"

" 여기 데모도 두 명이랑 같이 일하시면 됩니다. 두 명 다 건축 쪽 일을 좀 해봐서 잘할 겁니다."

"반가워 찰스야  바닥에선 카펜터 찰스라고 하면  알아"

 

그는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자신을 소개했다. 찰스는 호주에서 목수일을   20년이 넘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했찰스는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는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고는 종이 도면을 받아 들고 도면과 현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   정도 걸리겠네"

"!? 어르신이렇게 조그만 샵이 무슨  달씩이나 걸립니까?  이거 4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안돼! 4 가지곤 턱도 없어"

" 정도 사이즈에 공기(工期:공사기간)를  달이나 가져가시면  어르신이랑  못합니다 그리고 데모도를  명이나 붙여드리잖아요"

어흠… 어이너네 둘은 뭐 하고 섰니 안 하니?”

 

찰스는 한수의 쏘아붙이는 말에 헛기침을 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면 택건과 가인에게 시선을 돌려  마디 던졌다

 

?!”

저기 자재 안으로 날라 어서놀지 말고!”

 

찰스는 심사숙고하는 듯한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지만단호하게 잘라버리는 한수의 반응에 얼굴이 일그러진다그리고  화살이 옆에  있던 택건과 가인에게 날아들었다둘은 재빨리  입구 도로에 세워진 트럭 위에 실린 자재들을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어험... 그 그럼   , 6주에   맞춰보자고"

 

한수는 한숨을 내쉬며 어쩔  없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르신공구는요 밴에 공구  있지 않나?"

"!? 아니 그래도 기술자신데 자기 공구는 가져오셔야죠"

" 한두  일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

"가인아 기본공구 챙겨 왔지

"임팩트(Impact : 전동드라이버) 드릴하고 기본  공구는  가져왔어요"

"그래  차에 가서 드롭 (Drop saw : 테이블 ) 거기 있는 전동공구   챙겨 와라"

 

택건과 가인은 키를 받아 한수의 밴으로 간다가인이  리모컨을 누르니 도로 앞에 번쩍이는 검은색 벤츠 (Van) 사이드 램프가 깜빡거렸다.

 

"작업용 밴도 벤츠야?"

" 여기서 사업하면  벤츠 끌고 다녀요호주도 개인으로 사면 세금이 너무 세니까  법인으로 돌려서 타고 다니죠 그리고  나중에 세금으로  털어내니까 이왕이면 좋은  타보는 거죠 "

 

벤의 뒷문을 여니 안에는 웬만한 전동공구들이  있었다둘은 공구와 자재들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찰스는 그동안 도면을 보며 상가 바닥에 줄자로 이곳저곳을 길이를 재며 연필로 곳곳을 표시했다.  

 

"저는 다른 고객하고 미팅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요즘 따로 독립해 나오더니  많이 따고 다니나 보네"

"많이 해야죠그래야 어르신 일당도 두둑이 챙겨드리고 할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 여긴 내가 알아서  테니까 다녀오시게"

"네, 오후에 다시 들릴게요"

 

찰스는 가인을 불러 바닥에 표시해 놓은 연필 자국을 가리키며 먹줄의 한쪽 끝을 건넸다둘은 그렇게 도면에 나와 있는 데로  구조물을 세울 자리를 먹줄을 튀기며 바닥에  다른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바닥에 구조물을 세울 자리를 다 표시할 즈음 오전 일과가 끝이 났다. 세 명이 현장에 앉아 싸 온 점심을 먹으려 할 때였다. 

 

“어이! 탁견이라고 했나?”

“아뇨 택건입니다.”

“영어이름은 없어? 여기선 다 영어 이름 쓰는데”

“없는데요, 어르신이 하나 지어주시겠습니까하하

“그래? 음… 토마스(Thomas) 어때? 토마스 리 괜찮네 허허

“오! 브루스 리, 토마스 리 뭐 괜찮은 거 같네요 하하하”

“그런데 어르신 왜 하필 토마스입니까?”

“어?! 너 생긴 게 예전에 내가 데리고 있던 목수 녀석이랑 닮아서”

“그분이 토마스였어요?”

“어~ 특이한 놈이었지 하하”

“그분은 지금 뭐 하시는데요?”

“갔어”

“한국 갔어요?”

“아니 인도 갔어”

“인도는 왜?

“몰라, 뭐 인도 여행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면서, 어느 날 여기 일 다 떼려 치고 가더라고”

“하하하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그렇지 재밌는 놈이었지어쨌든 토마스 밥 먹고 나면 바닥에 튀겨놓은 먹줄선 따라서 레이저 쏘고  레이저 라인 따라서 실링을 다 잘라서 뜯어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택건에게는 실링(Ceiling : 천장) 낮추는 작업을 하기 위해 기존의 천장 보드를 들어내고 실링 프레임을 잘라내는 작업을 시켰다택건은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석고보드 실링을 바닥 아래에서 드로잉 선을 따라 쏘아 올린 레이저 라인을 보며 거기에 맞게 그라인더(Grander) 천장을 자르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emergency, 삐익 삐익 evacuate now" 

(긴급상황입니다당장 대피하십시오)

"뭐야무슨 소리야?"

 

그때였다. 일을 하던 셋은 갑자기 울리는 화재경보에 놀라서 하던 일을 멈췄다경고 알람은 주상복합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잠시  건물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거리 밖으로 밀려 나왔다.

 

"  건드린 거니?"

"아니 그냥 그라인더 작업만 했는데"

"아놔 거기 옆에 화재경보기 안 보여? 비닐로 덮고 했었어야지"

 

호주의 화재경보기는 여간 민감한 것이 아니었다경보기는 열뿐만이 아니라 연기와 먼지까지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어 택건이 그라인더로 석고보드를 자를  나는 먼지에 반응해 작동한 것이었다. 20층이 넘는 대형 주상 복합 건물에 주거하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울려대는 화재경보 소리에 모두가 밖으로 뛰쳐나와서 먼지로 가득한 공사장 안을 보며 웅성거렸다잠옷바람으로 뛰쳐나온 사람들부터 젖은 머리에 수건을 걸치고 씻다가 나온 사람까지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건물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저마다의 모국어로 숙덕거린다.

 

"I'm sorry, I'm sorry"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택건은 어쩔  몰라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사람들은 하얀 석고가루를 뒤집어쓴 택건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긴 해도 누구 하나 그에게 삿대질이나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에는 오히려 "No worries!"(괜찮아요) 외치며 택건을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다택건은 한국 같았으면 욕과 삿대질이 난무했을 상황에 그와 같은 사람들의 행동에 조금은 당황스러우면서도 감사했다.  잠시  소방차가 도착했고 화재가 아닌 실수로 울린  확인한 소방대원은 화재경보 작동을 중지시켰다뒤이어 소식을 듣고  한수는 유창한 영어로 소방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벌금 2000불이네 "

 

공권력의 낭비로 인한 벌금이 2000불이다한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호주는 벌금이 세다택건도 웨이지는  날아갔구나 하는 생각에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한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택건을 바라봤다첫날부터 대형사고를 쳤다. 택건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모든 일의 시작에는 시련과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시련은 청년으로 사회에  발을 내디디며 받은 시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몸은 비록 중년이 되었지만 마음은 다시 청년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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