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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5. 2024

팔색조 같은 그녀

데모도 ep23

잔잔하고도 빠른 비트의 언발란스하지만 흡입력 있는 리듬이 노래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안나는 갑자기 노래방 안의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남은 맥주를  들이켜고는 맥주캔을 꽉 움켜쥐며 찌그러뜨렸다. 그리고 방구석에 있는 쓰레기 통을 향해 슛을 날렸다찌그러진 캔은 노래방 모퉁이 벽을 맞고 정확히  안으로 내리 꽂혔다그리고 묶여 있던 머리를 풀어헤쳤다마이크를 손에 쥐고  호흡을 내쉬었다하얀 캔버스 신발이 탁탁거리며 테이블을 두드리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그리고  전과는 다르게 마치 우주 공간 속으로 뻗어가는 빛처럼 가성을 뽑아내기 시작한다택건은 넋을 잃고  모습을 바라봤다

 

♩♬ What about us? (우린 뭐야?)

What about all the times you said you had the answers? (네가 답을 알고 있다는  모든 시간들은 뭐야?)

What about us?

What about all the broken happy ever afters? (부서진 행복 뒤에 뭐가 있는데?)

What about us?

What about all the plans that ended in disaster? (재앙으로 끝나버린  계획들은 뭐야?)

What about love? What about trust? (사랑은?   믿음은?)

What about us? ♪♫

 

"우아 안나야 진짜 가수 해도 되겠는데"

" 노래 제목은 뭐야?"

"what about us"

"우린 뭐야?!"

글쎄요하하하

 

택건은 대답을 들으려 물은 것이 아니었다그저  영어 문장을 무의식적으로 한국어로 말한 것이었다예상치 않던 그녀의 생뚱맞은 반문 택건은 잠시 안 나와 자신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택건은 문득 이전에 일면식도 없던 한참이나 어린 여자와 이토록 빠르게 친해질 거라 생각지 몰했다. 그녀와 노래방에서 함께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치 우주의 어느 다른 시공간에 둘만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아마 말을 섞을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머리로는 분명히 이상한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 택건은 마치 안나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그리고 안나가 사랑스럽게 보였다하지만 말로 설명할  없지만  사랑스러움이라는 것이 여태껏 다른 이성에게서 느꼈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택건은  감정이 좋지만 어색했다이성과 감성이 따로 놀고 있었다.

 

 기분은 안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일면식도 없던 아저씨 같은 남자와 이렇게 급격하게 친해질 거라 자신도 생각지 못했다안나도 이런 기분이 처음이었다안나는 택건에게서 이전에 여느 남자에게서 느낄  없었던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일반적인 이성적 호감인 설렘과 긴장감이 아닌 편안함과 안정감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자신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안나야 ~ 너무 늦었다이제  집에 가자!"

아쉬운데…”

트레인 끊기기 전에 가야지

우버 타면 되는데…”

그럼  먼저 간다 혼자  부르고 오던지

“칫~ 브라더분위기 깨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정말

 

택건과 안나는 늦은  트레인에 올랐다일요일 늦은  트레인 안은 한산 했다트레인이 플랫폼에서 천천히 빠져나갔다멀리서 시커먼 하버브리지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오페라 하우스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안나는 술기운과 열창(熱唱)으로 인한 피로가 몰려오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그녀의 고개가 택건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택건은 자신의 어깨에 기댄  곤히 잠든 그녀를 잠시 동안 가로 봤다.  흘러내린 머리칼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택건은 조심스럽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잠든 안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택건은 설명할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샘솟았다 감정은 여태껏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택건은 가방에서 이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녀가 노래방에서 불렀던 [What about us] 유튜브에서 찾아 다시 들어봤다안타까운 영어 리스닝 실력에 가사의 의미는   없지만 애잔한 음률과 리듬에서   없는 먹먹함이 밀려온다택건도 눈을 감고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

 

잠시  트레인 안에 시끄럽게 웅성이는 소리가 이어폰의 음악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택건이 눈을 떴을  건장한 백인 남성  명이 손에 작은 종이백을   택건과 안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종이백 위로 솟아 나온  주둥이와 초점 잃은 그들의 눈빛으로 미루어   손에  병은 술병이고 그들은 이미 취기가 가득 올라있다는 것을 눈치챌  있었다택건은 그들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들은 택건에게 다가오면서 뭐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택건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hey! Yellow monkey, How does it feel fucking with her?  (노란 원숭이쟤랑  치면 기분이 어때?)


택건은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안나가 기대어 잠들어 있어 자리를 피할 수도 없었다이미 늦었다그들이 택건과 안나의 앞 좌석에 마주 보고 앉았다그들   녀석이 안나의 얼굴로 손을 가져가려  때였다

 

!”

으억! Shit!”

 

안나는 순식간에 다리를 뻗어  녀석의 낭심을 걷어찼다전광석화 같은 속도뿐만 아니라 부딪치는 소리로    강도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백인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중요한 그곳을 감싸 쥐고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안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턱을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며 손바닥으로 올려 쳐서 날려버렸다녀석은 옆에 의자 모서리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치고는 그대로 꼬꾸라졌다옆에서  나간 원숭이 마냥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손에  술병으로 안나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때 택건은 들고 있던 가방을 녀석의 얼굴로 집어던졌다.  모습을  안나는 택건에게 엄지 척을 보이는 여유를 부리더니 것도 잠시 의자를 밟고 대각선으로 날아올라  녀석의 턱에 화려한 니킥을 선사했다그녀의 무릎에 아래턱을 정확히 강타당한 녀석은 동공이 풀린  바닥으로 꼬꾸라졌다그때 먼저 쓰러졌던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서 호주머니에서 과도 같은 나이프를 꺼내서 위협하기 시작했다주변에 앉아있던 몇몇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뒤이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들은 녀석은 연신 ‘fuck’ 외쳐 되더니 안나를 째려봤다. 녀석은 안나의 니킥에 녹다운된 다른  녀석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하지만 그 백인 남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시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결국 그를 열차 바닥에  팽개쳐 놓고 혼자 줄행랑을 쳤다.


"브라더괜찮아요?"

"?!... !"

 

 전까지 펼쳐진 액션 장면에 할 말을 잃은 택건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경찰이 들이닥쳤고 둘에게 다친 곳이 없냐며 이곳저곳을 살폈다안나는 자신의 경찰 배지를 보여주고는 상황을 설명했다경찰들은 다시 도망친 백인 남성을 뒤쫓았다


"  전에 그거 뭐니?"

"뭐가요?"

"그런  어디서 배웠니?"

" 경찰이잖아요"

"... 그… 그렇지"


안나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아무리 경찰이라고 하지만 여자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빠른 순발력과 강한 타격력에 놀람을 금치 않을  없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군인인 양아버지의 권유로 킥복싱을 배웠다안나는 자신의 뛰어난 운동신경과 정의감에 넘치는 성격 때문에 처음엔 공군 장성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공군 특전단에 들어가려 했다안나의 어머니는 그런 안나를 적극 만류했다어머니의 만류도 만류였지만 자신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스스로 선택한 다른 직업이 경찰이었다안나는 언제 벌어질지 모를 전시 상황에서나 사용할 능력보다는 차라리 항상 실전 경험과 위험 속에 노출될  있는 경찰을 선택했다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만류가  우려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안나의 사연을 들은 택건이 그제야 벌어졌던 입을 다물며 맞춰지지 않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


"택건 브라더 이제  왔어요 내릴게요"

"?! 그래 내가 데려다줄까?"

"왜요?"

"밤이 늦어... 아니다  데려다줄 필요가 전혀 없겠다하하"

"갈게요 브라더조심해서 들어가요 담주 교회에서 봐요"

" 그래"


 안나는 손을 흔들며 트레인을 나섰다트레인이 다시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걸어가는 그녀를 스쳐 지나간다택건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그때 플랫폼 위를 걸어가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그녀는  전과는 다르게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음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모습이 마치 철없는 아이 같아 보이기도 하다택건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는 이내 몸을 돌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휴저거 저거… 완전 살벌한 아이였구먼”


역시 사람은 생긴 걸로는 전혀   없다천진난만한 모습 뒤에 숨겨진 맹수 같은 그녀의 공격성을 누가 알았겠는가그녀는 알아갈수록 신비롭다마치 팔색조 같다앞으로  어떤 일들로 자신을 놀라게 할지 두렵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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