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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1. 2024

오르막 길

데모도 ep22

"나도 한국이 너무 싫은데"

" ?"

"한국이 저를 고아로 만들었으니까요"

 

안나는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한국을 싫어하고 있었다. 기억에 없다고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상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를 버리고 또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국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에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성인이  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전까지 그녀는 어릴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재혼한 엄마와 새아버지 밑에서 자란 줄로만 믿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  가족이 그녀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모든 사실을 밝혀졌다. 안나의  가족은 태즈메니아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

 

“Dad! Look! what a beautiful scene, isn’t it?”(아빠! 이것 봐 너무 아름다워,  그래?)

 

떨어지는 노을빛이 바다에 부서지는 절경이  가족의 눈을 사로잡고 있을 때였다.

 

“Honey, no! Look forward!”(여보 안돼! 앞에 봐요!)

!”

 

안나의 아빠가 잠시 노을에 한눈을  사이 도로로 기어 나온 웜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차의 한쪽 바퀴가 도로 위에 웅크리고 있던 웜뱃의 등에 올라타면서 차가 기울어진 채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차는 균형을 잃고 도로 옆으로 튕겨나갔다. 도로 옆은 경사가 심한 계곡이었다. 차는 계곡 경사면을 따라 굴러 떨어졌다. 대여섯 바퀴를 구르고 나서야 계곡 중간에 크게 솟아 있던 커다란 유칼립투스 나무줄기에 부딪치며 멈춰 섰다.  좌석에 앉아 있던 안나와 그녀의 아빠는 에어백이 터지면서 몸에 찰과상만 입었을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뒷좌석에 앉아있던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열려 있던 창문 안으로 밀려들어온 부러진 나뭇가지가 엄마의 왼쪽 가슴 위를 관통했다. 다행히 뒤를 따르던 차량이  장면을 목격하고 신고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해 그들을 구출했다. 가족은 인근 마을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다. 엄마의 출혈이 심각했고 의식도 없었다. 일단 급히 수혈이 필요했다. 엄마의 혈액형은 O 하지만 시골 병원에 혈액이 부족했다. 그녀의 아빠는 AB형이라 수혈이 불가능했다. 그때 안나는 혈액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엄마와 같은 O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나는 엄마와 같이 구급차에 실려 수혈과 동시에 도시의 대형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때 구급차에 누워서 자신은  사이에서는 나올  없는 아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은 무의식의 상태로 수술실 안에 하얀 천을 사이에 두고 누워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안나는 눈을 뜨고 있었고 엄마는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안나는 무의식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엄마는 영원한 무의식의 세계로 떠나버렸다. 그녀의 졸업여행은 엄마와의 이별 여행이 되어버렸다.

 

“I'm sorry, my sweetie! We didn't mean to deceive you. We just thought you'd better not know that. Could you forgive us?”

(미안하구나 아가, 우리가  속이려 했던  아니다. 그냥 네가  사실을 모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어. 우리를 용서해   있겠니?)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조문객들이 떠난 묘비 앞에 안 나와 그녀의 아빠만 남았다. 아빠는 그동안 숨겨왔던 안나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나는 아무런 기억도 없던 아기  한국의 어느  수녀원에 맡겨졌다.  수녀원은 안나의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했다. 안나의 엄마 또한 어린 시절 호주로 입양되었다.


"우르르르 쾅쾅"

 

안나는  2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시내에 백화점 구경을 나왔다. 그날은 안나의 생일이었다. 세 식구는 안나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사려고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백화점 건물이 굉음을 내더니 백화점의 기둥과 벽면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세 가족은 무너지는 건물의 잔해들과 함께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어둠과 먼지로 가득 찬 곳에 갇혀 버렸다.


"으아아 앙!!"


엄마와 아빠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안나만 그 둘을 보며 건물 잔해 사이에서 하염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비명소리 같았다. 살기 위한 발악이었을까 구조대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찾아 잔해를 들춰냈고 안나를 구출해 냈다. 하지만 그 옆에 엄마와 아빠는 이미 커다란 기둥에 깔려 온몸이 으스러져져 얼굴만 빼고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수녀원에 있는 고아원에 맡겨졌다. 그리고 1년 뒤 그녀는 백인부부에 의해 호주로 입양되었다.




당시 안나의 양엄마는 아이를 가질  없었고 부부는 아이가 간절했다. 자신이 어린 시절을 머물렀던 수녀원을 통해  부부와 안나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부부는 안나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고 그녀를 품기로 마음먹었다. 안나의 원래 이름은 한나(Hanna)였는데 양부모가  둘은 그녀를 안나(Anna) 바꾸어 불렀다. 그녀에게 한국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Is that all true? Why didn't you tell me earlier?” (    일찍 알려주지 않았어요?)

“I’m so sorry”(.. 미안하다)

 

안나는 자신의 부모가 친모부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자신의 친부모가 한국에서 건물 붕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양부모가 여태껏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 실망했다. 낳아준 엄마는 기억에도 없고 길러준 엄마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이제  이상 엄마는 없다. 그녀는 갑자기 알게  진실 앞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되었고 전에 없던 외로움이 밀려왔다. 세상에 자신 혼자 남겨진 듯한 공허함이 찾아들었다. 그녀는  이상 양부모의 곁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결국 양부모과 같이 살던 멜버른 집을 떠나 이곳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그날 이후부터 그녀의 일탈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공허함을 술로 잊으려 했다. 매일 같이 시티의 클럽을 전전하며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다녔다. 결국 마약에 까지 손을 뻗었다. 그녀는 점점 폐인으로 변해 갔다. 그러던 어느  그녀는 약에 취해 밤거리를 걷다가 이상한 환영 같은 것에 이끌려 어느 교회 앞에서 쓰러졌다. 그때 늦은 밤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던 한 부부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날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녀 또한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정신과 심리 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으며 중독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를 구해줬던 교회 부부 인연이 되어 그들이 다니는 한인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  부부가 지금  교회에서 그녀가 섬기는 목자와 목녀가 되었다.

 

"...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브라더 빼고  알아요"

" 진짜?"

 

안나는 택건이 교회에 오기 얼마  교회의 자신이 속해있던 교회 목자, 목녀 그리고  목사의 권유로 예배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연과 함께 간증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밝기만 하던 그녀의 모습 뒤에 가려진 슬픈 사연에 모두가 놀라고 안타까워했다. 안나는 간증을 통해 마음속에 응어리로 사라지지 않던 친부모와 양부모에 대한 괴롭고 서운한 마음 떨쳐낼 수 있었다.

 

"사실 좀 전에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멜버른에 계신 아빠랑 통화했었거든요. 아버지가 흐느끼시며 우시더라고요”

" 그랬구나, 어쩐지... 잘했어, 아버님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야"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부모님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을 거야. 때론 상처받을 진실은 모르는  나을 수도 있어. 어차피 알아도 나아질  없다면 말이야. 너를 키워주신 부모의 사랑보다  소중한  뭐가 있겠니? 기억이 없다면 사랑도 없어

"! 브라더, 멋있는데요"

 

안나는 흐르던 눈물을 훔치고 다시 환한 표정으로 택건을 바라봤다.

 

" 버려진  아니라 다시 태어난 거야"

"그래요 그렇게 생각할게요 그런데 내가 화가 나는   낳아주신 부모도 그렇고  길러준 엄마도 모두 한국에서 죽임과 버림을 받았다는 거예요, 나라와 국가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기억에도 없는 한국이 너무너무 미워요"

 

기억이 없어도 미움이 생길  있다. 이건 자신이 아니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나는 부모가 겪었을 고통과 상처를 생각하면 할수록 한국에 대한 증오가 커져갔다. 그런데  지금 그런 한국인들과 어울려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고 있었다.

 

"!  노래 잘하더라"

"무슨 노래요?”

찬양말이야

! 고마워요.  노래 부르는  좋아해요 하이스쿨에서 밴드 보컬로 활동도 했었어요"

"어쩐지 실력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다른 노래도 좋은데 특히 찬양을 하고 있으면 뭔지   없는 뭉클함 같은 것이 느껴져요."

그래? 나도 그런  같은데..."

"브라더! 그럼  나온 김에 같이 노래나 부르러 갈래요?"

"노래? 지금?"

"! 랫츠고!"

 

 안나는 공원 잔디밭에서 일어서서 택건을 잡아끌어 일으킨다. 노래를 부르러 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경쾌해 보였다. 그녀는 시티에 있는 한인 노래방으로 택건을 끌고 갔다.

 

"~ 여기도 노래방이 있구나"

"저도 몰랐는데 교회 친구들이 알려주더라고요"

" 여기도 한국에 있는   있구먼"

 

그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선곡을 하고 마이크를 손에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택건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쳐다봤다.

 

 ♩♬ I hate you i love you I hate that i love you, don't want to but i can't but nobody else above you ♩♫ (네가 싫어.  사랑해  내가  사랑한다는  너무 싫어 그러기도 싫지만 아무도 너를 대신할  없어)

 

    그녀는 눈을 감고 마치 가사를 음미하듯 노래를 불렀다.  모습이 무대 위에  가수 같은 느낌이었다. 여자에게서 보기 드문 중저음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면서 하나뿐인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짝짝짝!  대단한데"

"에이   정도 가지고 큭큭, 브라더도 빨리 선곡해요, 여긴 한국에 있는 최신곡도  있어요.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택건은 무슨 노래를 부를지 고민했다. 안나의 노래 실력에 주눅이 들어서 선곡이 어렵다.


"브라더 아직 선곡  했어요?"

"그건 뭐니? 이래도 되냐? 신앙인이? 큭큭"

"에이 노래에 부르는데 기분  내야죠! 치익~ ! 건배!”


안나의 손에는 맥주가 들여있다. 그녀는 캔맥주를 따서 택건에게 건넨다. 자신의 것도 따고는 건배를 외쳤다.


"브라더 노래 빨리 불러요!"

"알았어  기다려봐!"

"브라더 왜 이렇게 굼떠요,  되겠네 아저씨라고 불러야지"

"~ 아저씨 아니라고!"

"그럼  노총각이라 불러요? 하하하"

"으이그!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새파란 것한테 농락을 당할 줄이야"

"Hurry up! Go Go!"


택건은 자리에 앉아서 마이크를 잡고 반주가 흘러나오는 화면을 바라본다. 안나는 택건 옆으로 오더니 그의 팔을 잡아끌어 스크린 앞에 세웠다. 그녀는 그제야 자리에 앉아 맥주를  모금 들이켜고는 팔짱을 끼고 앉아 기대에  눈빛으로 택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모습이 마치 오디션 현장의 심사위원 같은 느낌이다.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쳐 사랑해요 저 끝까지


"짝짝짝! ~ 브라더! 노래  하는데요 근데  노래 제목이 뭐예요?"

"오르막길"


택건은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인생은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는 법이다. 택건은  이상 내려갈 곳은 없어 보였다. 올라갈 일만 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전에는 세상이 만들고 닦아놓은 오르막을 올라왔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아서 올라가야 한다.   느리고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상을 보고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다. 스스로 개척한 오르막 길의 정상에는 그전과는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브라더?! 울어요?"


택건의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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