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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08. 2024

떠나보면 알 거야

데모도 ep21

역시 영화는 조조야!”

 

택건은 퇴사 후 며칠간 이색적인 경험의 시간을 가졌다.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번잡한 출근길에 섞여 회사가 아닌 영화관으로 향했다. 평일의 이른 아침 영화관은 마치 자신만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집 안에 홈시어터에 대형 TV까지 갖추고 영화를 봐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만큼은 아니다. 다만 영화관에선 붐비는 사람들의 열기와 소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평일의 조조 영화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직장인일 때는 느낄 수 없었다. 단 돈 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이 넓은 공간을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건 평일의 백수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택건은 조조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백화점 안을 구경했다

 

“와... 평일 오전에도 사람이 꽤 있네”

 

백화점 안에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며 브런치를 먹었다. 늦은 오전 주변에는 삼십대로 보이는 주부들이 한 손으로는 아이의 유모차를 흔들며 한 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먹으며 서로 육아 정보와 남편의 뒷담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처음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려 머리에 블루투스 헤드폰을 썼지만 그들이 나누는 뒷담화가 흥미로웠다. 그래서 헤드폰 음악을 음소거 한 채 책을 읽는 척하며 그녀들의 브런치 대화를 엿들었다.


그렇게 얼마간 브런치를 먹으며 주부들의 세계를 염탐했다. 그렇게 퇴사 후 몇 주 동안을 회사원으로서 해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체험들로 흥미로운 나날을 보냈다. 돈을 벌지 않는데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물론 이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상 아니 사회에 속하지 못한 존재가 느끼는 공허함 같은 것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항상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시계만 멈춰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낮이면 만날 사람도 그렇다고 마땅히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주변에 있는 공공 도서관이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주변에 생각보다 도서관이 많았다. 매일 이곳저곳 다른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마치 여행 다니듯 도서관 체험의 시간을 가졌.


그는 어디서든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야 했다. 그대로 있다간 자신이 사라져 버릴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조금씩 자신을 엄습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에 처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혹시나  속에서 자신을 찾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책들을 탐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랬지만 사실 택건은 현실의 자신을 잊기 위한 가장 건전하고 저렴한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독서가 일종의 가장 현명한 도피처라 생각했다.

 

자신을 찾기 위한 명분으로 책을 읽어갔지만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오히려 자신을 잊어버리는 시간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속의 다른 세계 속에 들어가면 현실의 자신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초라한 현실  자신의 모습에 힘들어했다.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이 두려웠다.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일단 가보자, 가기로 맘먹었으니, 가면 만나겠지

 

택건은 시드니행 편도 비행기 표를 발권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는 두려움보다 명함 없이 사람들을 만난다는 두려움이  컸다. 비행기 표를 끊고 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데드라인이 정해지면  안에 모든 가능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한국이라는 현실에 엮여있는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정리해야 했다. 마치 수많은 링거 바늘이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링거 바늘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피 같은 돈들을 빼내가는 호스들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떼어버려야 했다. 집, 차, 핸드폰 요금과 각종 보험료, 공과금 등등. 달마다 빠져나가는 돈줄을 모두 끊어버렸다. 그때서야 택건은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호스관들이 연결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환자가 되어서 링거 꽂는 건지 링커를 꽂다 보니 환자가  것인지 헷갈렸다.

 

,  이렇게 연락이 안 됐냐?”

,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죽다 살아났다

그래 다행이다 아녔으면 내가 죽일  큭큭

 

다행히 호주로 가기 전에 수호와 연락이 되었다. 그 대략적인 교통사고의 전말을 택건에게 설명했다. 택건은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동안 연락 두절에 대한 그의 불신이 사라졌다. 불신 뒤에 생겨난 믿음은 전보다  강해진다. 그가 살아난 것은 그에게도 기적이었지만 택건에게도 유일하게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 줄 하나 링커바늘이 남아있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만은 끊어지지 않길 바랐다. 희망이 부활했다.

 

언제 오는데?”

다음  15 출국

그래 알았다,  그때까지  준비해 놓을게, 정리 잘하고 오삼

“Ok, 역시 친구가 좋긴 좋네

그래 이럴  돕고 살아야 친구 아이가

 

수호와의 연락은 늘어가던 불안과 두려움을 모두 확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택건은 이렇다  종교도 신앙도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믿음 또한 없었다. 관계는 언제나 이해(利害) 관계에 놓여있었다.  이해는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손해와 이익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이었다. 손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사회생활 10년을 넘게 하면서 가지게  굳은 확신이었다.

 

택건은 오직 자신만을 믿고 의지 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만든 현재의 결과는 초라했다. 그곳에서 꺼내  수는 있는 유일한 사람이 수호라고 생각되자 그에게 근거 없는 무한한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믿음은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정량적으로 설명할  없는 것이지만 아주 강한 것이었다. 택건은 종교에 심취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도 아마  모든 상황이 만들어낸 믿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세상이 만든 믿음이다.  믿음이 사라지면  이상 살아갈 용기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어떤 사실적인 논리적인 설명과 해석이 없이도 믿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을 건드리는 자는 용서할  없다. 그건 하나 남은 유일한 동아줄을 잘라내려는 살인자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뉴스에서 보는 사이비 종교 추종자들이 믿기 힘든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때면 그들을 이해할  없었는데 지금은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같았다.

 

이제 태초의 인간으로 되돌아왔네”

 

모든 현실의 링거 줄을 끊어냈다. 이건 마치 어머니의 탯줄을  끊어낸 상태와 같았다. 모체와 분리된  잠시의 순간은 아직 세상의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시의 순간일 뿐이다. 순수함은 더럽혀지며 생명을 이어간다. 다시 모체의 에너지를 흡수해야만 한다.  에너지 속에는 체가 지닌 다른 불순물도 함께 섞여 들어온다. 순수의 오염이 시작되고 생명의 연장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수호가 택건에겐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이야, 핸프폰 해지하니까 세상 조용하네

 

핸드폰도 죽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살아난다. 4G 연결되지 않은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젠 연결되고 싶을 때만 연결할  있게 되었다. 마치 과거 공중전화 기지국을 찾아다니며 전화하던 시티폰을 떠올리게 된다. 옛날에는 곳곳에 공중전화박스가 있어 시티폰을 들고 공중전화박스의 신호를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택건은 지금이 그때와 같다. 연락이 필요할 때마다 와이파이 신호를 찾아다니며 과거의 추억을 재현하고 있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택건은 한시라도 빨리 호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를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우우우웅

~ 드디어 떠나는구나…”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활주로로 나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고향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곧 비행기가 이륙하고 조금씩 멀어지는 고향 땅을 카메라에 담았다. 땅이 구름에 가려 시선에서 사라지면서  모든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낄  있었다. 수 없이 많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편도행 비행기는 그렇게 익숙하고 지겨운 시공간에서 멀어져 갔다.

 

"와... 이거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완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된 것 같네"


택건이 호주에  이후 새로운 삶에 적응하면서 한국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언어도 환경도 새롭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시공간은 불혹을 앞둔 택건을 어린아이로 바꾸어 놓았다.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새로운 것을 얻을  있다'


익숙한 것을 포기해야만 새로운 것을 얻을  있다는 글귀를 도서관의 어느 책자 속에서 읽었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부가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책이나 위와 같은 비슷한 류의 글귀는 많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진 않았다. 저자들은 과연 그게 과연 어떤 건지 제대로 알고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들도 책에서 본 걸 토시만 바꿔서 옮겨놓은 건지 의심드러웠다. 택건은 지금 홀로 새로운 세상에 떨어져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택건처럼 그걸 알지 못하는 건 독서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냐 독서는 그저 간접 체험일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독서의 목적이자 의의이다. 시공간의 제약으로 세상을 모두 체험할  없기 때문에 인간은 독서를 통해 그것을 알아간다. 타인과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손쉬운 방법은 손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서만 하는 자들은 이해(理解)에는 능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다. 안타까운  이런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곳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택건은 환경이 바뀌면서 생겨난 생각의 변화가 어쩌면 자신이 여태껏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이 여태껏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없었다. 택건은 이곳에서 하루하루  흘리며 일하며 지나간 과거의 번뇌와 다가올 미래의 번민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떠나보면 알 거야 아마 알 거야 떠나보면 알 거야♪

- 사랑과 평화 [울고 싶어라] -

 

택건은 ‘떠나보면 안다’는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자신이 머물던 익숙한 곳을 떠나면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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