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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04. 2024

사랑, 말 없는 기다림

데모도 ep20

"근데 브라더! 한국에 미세먼지가 그렇게 심해요?"

"?! 갑자기  미세먼지 얘기냐?"

"아니 접때 교회에서 브라더가 미세먼지 피해서 호주 왔다고 해서요"

"하하하"

 

택건과 안나는 오페라 하우스 뒤에 조성된 보타닉 공원을 걸었다. 미세먼지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  트인 공원의 잔디밭 위에는 가족과 연인들 그리고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늦은 주말 오후의 아쉬움을 달래러 나온 모습이다.

 

"사실 한국이 싫어서 왔어"


택건은 해외로 떠나온 사람이면 누구나  만한 뻔한 대답으로 안나의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사실 한국이 싫었다기보다 한국이 택건을  이상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은 곳곳에 수많은 추억을 담고 있다.  추억은 마치 어머니의  속처럼 따뜻하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곳은 시간이 갈수록 차갑고 냉혹하게 변해버렸다. 택건은 추억이 만들어진 공간에서  이상 추억할  없게 되어버렸다.  말은 자신도 환경에 따라 점점  차갑고 냉혹해지지 않으면 그곳에서 살아남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냉혹한 현실이 그나마 남아있는 택건의 마음  작은 불씨의 온기마저 꺼뜨릴 것만 같았다.




“야~ 이제 다 전기차로 바뀌면 어쩌냐?”

“그러게 씨펄, 망하는 회사가 한 둘이 아니겠는걸”

“내연기관 엔진 관련 회사들은 다 사라지는 거지 뭐”


택건이 호주로 오기 전이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었다. 택건은 자동차 업계에 몸담고 있었기에  변화의 물결을   빨리 느끼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라는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 창업한 T전기차 회사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위기감이 친환경 산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전기차 산업은  관심의 중심에 있었다.

 

기대감이 의구심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고  세계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에게도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변화는 겉으로 보기엔 혁신으로 보였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혁명이자 재앙에 가까웠다. 3만여 개에 달하는 내연기관 부품을 가진 자동차에서 1만여 개의 부품을 가진 전기차 로의 진화는 100 년을 넘게 이어온 기존 자동차 산업의 구조를 모조리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을 예고했다.

진화는 복잡 다양해지는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단순 획일화로 나아가는 듯했다.


변화는 천천히  것이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몰아닥쳤다. 부품 수가 줄어든다는 말은 그만큼의 부품회사와 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내연기관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회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론이 자기네 특허까지  공개 했다잖아

 새끼 진짜 또라이네 또라이야!”

 생각을 하는 인간인지  수가 없네

 

회사 직원들은 두 세명이 모이면 다들 전기차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다들 자동차 바닥에서 밥먹어 먹고 사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이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깡통을 차게 될 지 몰랐다.

 

T회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전기차 관련 특허를 모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오픈하면서 더 많은 관심을 집중 시켰다. 상식을 뒤집었다. 모두가 자신의 노력으로 개발한 기술을 특허로 보호하고 독점하려 하지만 그는 반대였다. 세상의 변화는 항상 한 명의 또라이에서 시작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과거 스티브 잡스의 전화기과 컴퓨터을 손에 들고 다닌다는 발상이 세상의 스마트 폰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듯이, 그는 이제 자동차에 컴퓨터를 연결시키려 했다. 들고 다니는 컴퓨터에서 타고 다니는 컴퓨터의 시대를 선도하려 했다. 이건 인간의 이동하는 모바일 본능을 가속화시키는 것이었다. 손에 들고 다니는 것 보다 타고 다니면 더 빠르다. 온오프라인의 동시 가속화가 진행된다.

 

들었어? [H엔진]에서 인원 구조 시작했다는 얘기?”

뭐 진짜야, 그 잘나가는 회사에서?”

진짜 한 순간이구만”

야 우리 회사도 인사팀에 떠도는 소문에 곧 시작될 거라던데…”

아 좆됐다. 이제 뭐해먹고 사나?”

 

택건의 회사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대대적인 인원 감축과 긴축 경영을 예고했다. 택건은  소문이 돌고 얼마 안가 회사 측으로부터 중국의 시골 오지에 진출한 공장으로 파견을 제안받았다. 

회사는 인원감축을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었고 택건은 해외 영업 경력으로 그나마 해외 파견이라는 옵션이 주어졌다. 말이 제안이지 그건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제안이 거부되면 그도 구조조정 대상에서 빠져나갈  없는 분위기였다.  

 

“이과장~ 결혼 준비는  돼 가고 있는 거야? 이제 슬슬 청첩장 돌려야 하는거 아냐?”

 그래야죠 하하

이제 시간도 얼마 없는데 서둘러야 하는  아냐? 인사팀에 물어보니까 사장님 지시사항으로  내년에 중국 파견 가는 거 거의 기정사실 처럼  있던데

 

팀장이 의구심에  눈빛으로 택건에게 말을 건넸다. 당시 그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오랜 기간 일한 베테랑 간호사였다.

 

뭐라구? 중국?”

얼마동안

짧으면 4~5 길면…”

 못가! 내가  거길 가야는데…  멀쩡한 , 직장, 가족들  놔두고

그럼 어떻게?”

 

 택건이 처한 상황을 알게  여자 친구는  사실을 받아들일  없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쌓아둔 모든 것을 버리고 택건을 따라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과 동시에 생이별을 하고 서로 다른 시공간에 머물며 법적 부부로만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여자도 아니었다.

 

 문제가 붉어지고  사이엔 불화가 시작되었다. 적잖은 시간 교제하며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돈독해 졌던 관계가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해결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선 서로가 냉혹해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의 일부를 포기하는 헌신과 희생은 언제나 내가 아닌 상대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보장되지 않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믿음보다 눈에 보이고 지금 내가 만지고 가지고 누릴 수 있는 현재의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럼 내가 그만둬?”

“…”

 

택건의 물음에 그녀는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택건도 이제 적잖은 나이에 다시 이직을 하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 자신이 받는 연봉을 유지하며 자신을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사람을 줄이려는 분위기 속에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 상책이었다.

 

결국 결혼 얘기는 무산되었다. 사랑은 이상적이지만 결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랑을 해도 결혼은 하지 말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사랑없이는 인간답게 살 수 없지만 결혼은 하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가둬두려는 인간의 기발했던 생각은 오랜 시간 이상과 현실을 묶어 놓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묶어놓은 끈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인사 발령]

이택건 과장

본사 영업본부 해외영업팀 -> 중국 사천 법인 - 관리팀

발령명령일 20@@ ##월 &&일부로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벌어지는 법이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회사는 계속 택건의 해외 파견을 재촉했고 결국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인사명령을 게시판에 공지했다. 그는 궁지에 몰린 생쥐 꼴이 되었다. 생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는 말이 있다.

 

택건은 회사의 인사조치에 불복했고 해외 파견 발령을 무시해 버렸다.  이후 회사는 택건은 투명인간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한 회사 사무실에는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인사 발령 정정]

이택건 과장

본사 영업본부 해외영업팀 -> 생산본부 - 자재팀

발령명령일 20@@ ##월 &&일부로

 

 과장,  천만다행인 줄 알아라, 중국 법인장님이  그 동안 해외영업하며 고생한 거 생각해서 사장님께 선처를 구하신 모양이더라, 사장님은 대노하셔서 권고사직 처리 하라는 거 말려서 자재팀로 발령 냈으니까 거기 가서 근신하고  조용히 지내 알겠지? 요즘 같은 시기에 회사 나가면  되는 거 알지?  생각해라

 

며칠  사내 게시판 인사 공고란에는 새로운 인사공고가 올라왔다. 영업부의 과장이었던 그를 현장 자재창고로 재발령  사실을 확인할  있었다. 래없던 일이었다. 인사발령이 번복되는 건 창사이래 처음이었다. 사내에서는 그를 둘러싼 루머들이 떠돌기 시작했고 사무실내 직원들이 그를 바라보며 웅성대는 소리는 마치택건 혼자 다른 차원의 시공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그는 섞여있어도 섞이지 않은 기름 같은 존재가 되었다. 택건은 영업팀 사무실 한쪽 구석 덩그러니 놓여있는 자신의 사무용품 박스를 들고 조용히 공장동에 있는 자재창고로 내려갔다.

 

자재 창고에서는 당장 자신이   있는 일은 없었다. 항상 엑셀시트  수많은 자동차 부품들의 원가계산서와  안에 수많은 숫자들 그리고 계약서만 들여다보던 그가 오프라인의 수많은 자재들의 위치와 동선 그리고 납품과 수급을 관리하는 일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행동과 생각의 패턴을 바꾸어야만 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장이라는 타이틀만 가졌을    있는  그리고 지시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문가에서  순간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과장! 자재창고 레이아웃 최적화 초안 언제 되는거야?”

그게 아직 자재창고 입출고 업무가 바빠서

아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과장씩이나 됐으면  성과있는 일을 해야할  아니야? 월급  만큼 받아먹은거 부끄럽지도 않아?”

“…죄송합니다

죄송은 됐고 낼까지 초안 제출해, 이거 공장장님 지시사항인거 알지?

 

그렇게 존재감 없는 회사생활은 정말 자신의 존재를 없애버릴 것만 같았다. 자재부장은 인사팀으로부터 무슨 사주를 받았는지 틈만 나면 택건을 불러서 갈구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택건이 스스로 회사를 나가도록 종용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창고 실무를  모르는 과장을 상관으로 모시는 것이 불만이었는지 택건보다 직급이 낮은 현장직 사원들까지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과장! 아놔~ 이제 잔소리하는 것도 지겹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발령난지 한달도 안된 상황이라 업무 적응이…”

“그럼 회사가 자네한테 적응 해야해? 자네 회사생활하기 싫어?”

아뇨?”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 절이 떠나는  아니잖아  그래?”

“…”

자네 알지, 나랑 인사부장이랑 고등학교 동문인거? 내가  말은  해줄  있는데…”

 

자재부 부장은 택건의 퇴사를 종용하는 분위기로 몰아갔다. 회식 자리에서 지금 나가야 회사에서 주는 일말의 퇴사 위로금이라도 받을  있지 않겠어라는 진심 섞인 실언을 조언인 양 내뱉곤 했다. 밑에 사원 대리급 직원들은 술잔을 나누며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흥미로운 드라마의  장면을 보는  했다.

 

자재부장은 인사팀에  말해주겠다 했지만  또한 인사팀에서 지시한 데로 움직이고 있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은 직장생활 10 넘게 굴러먹은 택건의 짬밥으로 충분히 눈치챌  있는 것이었다.

 

유난히도 화창한 봄날의 새벽이었다.

 

택건은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텅 빈 사무실에 들어섰다. 아직 어둑한 사무실에 불을 켰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적막한 공간 사물들의 윤곽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물체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빛이 있는 곳에서만 공간을 차지한다. 보이는 것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주 범하는 오류이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하얀 봉투의 사직서를 두고 회사를 나왔다.

 

 과장님!  출근하시자마자 어디 가시는 거예요?”

집에요

?!”

오늘이 태어나서 가장 빨리 퇴근하는 날이네요 하하하 수고하세요

“…”

 

 회사 정문 경비실에 야간 밤샘 근무로 잠이   표정을  경비 아저씨가 택건에게 말을 건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서늘한 이른 아침의 봄바람이 달리는  안으로 들어와 온몸을 감싸 돈다. 그 동안 익숙했던 회사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도 모르게 차오르는 울컥한 기분에 눈물이 흐렀다.  눈물의 의미를 해석할 수가 없다.  눈물의 의미를 말이나 글로 해석해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이럴  모든  잊고 자는  상책이다. 하지만 이럴  잠도 오지 않는 법이다. 수면제를 먹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러자 머리의 전원도 꺼져버렸다.


다음날 친한 회사 동료로부터 자신의 퇴사 공고가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 위로금으로  달여 급여와 상여금을 퇴직금과 함께 넣어주겠다는 인사 절차상의 설명이었다. 10 년을  담았던 직장에서 떠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떠날  알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자신을 갈아 넣으며 회사를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택건의 울타리가 되어주던 회사라는 곳을 떠나자 어디로 가야할    없었다.

마흔을 코앞에  자신을 쉽사리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룹 해외영업부 이택건 과장] 항상 자신을 소개하며 내밀던 명함이 사라지고 나니 누구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없었다. 마치 세상에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택건은 퇴사   개월간 순수한 인간 이택건으로 살아있었지만 사회에서 순수함은 투명함과 같았다. 어디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어디서도 느낄  없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투명하고 순수함을 추구하는  하지만 사실 눈에 보이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것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택건은 그제야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빠져나간 녹슨 톱니바퀴는 다시 돌아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그렇게 쓰다가 닳아버린 톱니바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쓸모 없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쓸모 없는 존재가 된다.  시기만 다를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쓸모 없는 시기를 늦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산다. 그래야 쓸모 없는 시기를 버틸  있는 쓸모를  많이 모을  있기 때문이다.  쓸모는 바로 돈이다.

 

이렇게 평안한 아침은 처음이네

 

모두가 출근한 월요일 오전, 집 주변은 한산했다. 모두가 일터로 간 시간 일터가 아닌 집터 주변을 산책했다.

 

이게 무슨 꽃이지?”

 

집 앞 화단에 핀 꽃에 시선이 멈췄다. 이곳에 산지 5년이 넘었지만 집 앞 공터 화단에 이런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분홍색의 꽃잎에 마치 실핏줄이 퍼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름을 검색했다.

 

달맞이 꽃? 달맞이 꽃이 왜 낮에 피었지? 큭큭”

 

왜 달맞이 꽃이 낮에 피었나 했더니,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에는 꽃을 피우다고 한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말 없는 기다림의 사랑?!

 

꽃말이 인상적이었다. 달빛을 기다리며 강렬한 태양빛을 피해서 피어나는 꽃이었다. 대부분이 꽃이 밝고 강한 태양빛을 바라보며 피어나지만 이 꽃은 밤의 은은한 달빛을 기다리는 꽃이었다. 다들 피어있을 때 닫혀있는 꽃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밤에 홀로 피어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꽃은 달빛이 환해지는 날을 기다리며 매일 밤 피어난다. 한 달에 한 번쯤 달이 환하게 비출 때 꽃은 빛난다. 그리고 그 빛나는 날을 위해 누구도 보지 않는 어둠 속을 꽃피운다.

 

택건은 그 동안 집 앞에 피어있었던 달맞이 꽃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맑은 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택건은 다시 집 앞으로 나갔다.

달맞이 꽃이 달빛을 받아 낮보다 더욱 환하게 피어있었다.

 

모든 꽃이 낮에 피진 않구나…”

 

택건은 왠지 모르게 그 꽃을 바라보며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 보름달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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