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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01. 2024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처럼

데모도 ep19

"Would you like cream on the top?" (위에 크림 얹으시겠어요?)

"Yes. please!" (예 부탁합니다)

 

택건은 일요일 오후 시티의 한 스타벅스에서 하얗고 달콤한 크림을 얹은 시원한 모카 푸라프치노 한 잔을 샀다. 주변 공원을 산책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택건이 시드니에 온 이후 생긴 소확행 중의 하나였다. 하얀 휘핑크림을 얹은 벤티 사이즈의 모카 푸라프치노 한 잔이면 점심의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산책을 하고 책을 읽을 때 소모되는 칼로리를 보충해 줬다.

 

"호주는 너처럼 조용히 산책하고 책이나 보면서 혼자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기는 딱이지"

 

과거 수호가 택건에게 했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단조로운 호주의 일상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잠시 여행을 온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곳에 장기간 체류를 목적으로 온 사람 중에는 이런 단조로운 일상을 견지지 못해 다시 돌아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

 

호주의 곳곳은 한적한 곳이 많다. 산책하기 딱 좋다. 낮에도 한적하지만 밤이면 행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욱 한적해진다.

 

택건은 주말이면 시티에 있는 비즈니스 컬리지(college)에 출석과 과제를 받기 위해 가야 했다. 원래는 주에 3번 있는 수업을 다 들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사실상 호주에 체류하며 일을 하는 학생들은 공부가 목적 아닌 경우가 많다. 일과 돈을 위해 온 자들의 편의를 위해 주에 한번 이상만 출석을 하면 그냥 넘어가 주는 게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호주에는 해마다 택건처럼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찾아드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해마다 캠퍼스도 없이 사설 학원처럼 사무실과 강의실 몇 개만 차려놓고 운영하는 학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학생의 신분으로 위장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학교와 호주정부에 내는 학비와 비자체류비가 호주의 유학산업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실익을 챙기는 것이 국가이고 사회 아니던가. 그렇게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세계각국의 이민자들이 호주 경제를 돌리고 호주 정부의 곡간도 채워주고 있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많아지는 법이다. 이민자들은 어떻게든 싼 비용으로 호주에 체류하기 위해 저가의 학비로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원했고 수요에 맞춰 그런 비자 장사를 하는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고 가는 편법적인 학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공급 많아지면 경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학교들은 더 많은 학생들을 유치하려 학비도 인하하고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최소 출석일수도 줄이고 과제도 대행해 주는 학교들이 많이 생겨났다. 학교 수업이라고 해봐야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사의 설명을 들으러 가면 되는 것이었다. 택건도 호주에 오기 전 유학원을 통해 한국 학생들이 선호하며 까다롭지 않은 학교를 선택했다. 다행히 첫 과정(Certificate 1) 강사가 한국 사람이어서 수업시간에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수업이 끝나고 한국어로 따로 물어볼 수 있었기에 수업과 과제를 따라가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편법이 성행하면 통제와 제재가 따르기 마련이다.

 

호주 정부는 그런 학교 같지 않은 학교들을 걸러내는 대대적인 청소작업을 시작했다.

이 말은 호주에 돈을 적게 내고 체류하는 자들을 색출해서 돈을 많이 내게 하거나 아니면 호주 땅을 떠나라는 경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민자들은 좀 더 구색을 갖춘 학교를 찾거나 아니면 비자를 연장할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다행히 택건이 다니던 컬리지는 오래된 역사는 아니었지만 오랜 공직생활을 한 호주 백인의 정부관계자를 남편으로 둔 중국계 사모님이 운영하는 학교라서 대대적인 청소에서 열외 될 수 있었다.

 

참! 어딜 가나 인맥이여 호주도 예외는 아닌가 보네”

 

하지만 그 대대적인 대학 청소 캠페인 때문에 예전에는 허술하던 출석과 과제가 까다로워졌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학비를 인상한다는 공지가 유학원을 통해서 날아왔다. 큰 폭풍은 피했지만 후폭풍까진 피해 갈 수 없었다.

 

 이제부터 출석일수를 다 채워야 함은 물론이고 과제도 제때에 제대로 제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제적 처리되어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취소될 수 있었다. 더 많은 시간 학교 수업과 과제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때문에 택건은 시티로 나올 일이 많아졌다.

 

오늘은 바람 좀 쐬고 가야겠다”

 

일요일 늦은 오후, 택건은 여느 때처럼 학교 수업이 마치고 항상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늦여름 한낮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 온기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모카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시티의 빌딩 숲에 사이를 걸어 바다로 향했다.

 

트레인 한 정거장을 걸어서 써큘러키(Circular Quay) 역까지 걸었다. 영국의 식민지답게 유럽의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을 가진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천루 (摩天樓)가 즐비하게 늘어선 시티의 빌딩 숲을 지나 드디어 바다와 강이 맞닿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비스러운 형상의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와 고풍스러운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가 바다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주말 늦은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려는 인파로 곳곳이 북적인다. 평일은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뒤섞여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

 

 택건은 오페라 하우스의 바다 맞은편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볼거리가 넘쳐난다. 어디서 찍어도 작품 사진이 되는 풍경과 곳곳의 길거리 공연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택건의 눈이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청명하게 푸른 하늘이 떨어지는 노을빛을 잔뜩 머금은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지붕과 대비를 이루며 오묘함을 표현해 낸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의 하버브리지가 남자의 강인함을 표현했다면 오페라 하우스는 아름다운 여자의 곡선을 표현한 것이리라. 남녀가 그렇게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핸드폰 카메라에 찍힌 오페라 하우스 앞에 한 여자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흥분과 환희에 찬 모습으로 이곳저곳의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관광객들 속에서 홀로 고독을 담고 있고 있는 모습이다. 택건은 등 뒤에 하버브리지가 병풍처럼 서 있는 아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의 쓸쓸한 피아노 선율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과 음악의 선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택건도 지나온 과거의 상념들이 피어올랐다.


택건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다. 시선을 옮겨  속으로 빠져든다. 자신이 살던 현실 세계를 떠나 월든 호수가의  속에서 살아가는 소로의 초연한 모습은 마치 택건이 한국이라는 오랜 삶의 터전을 벗어나 지금 이곳 호주라는 낯선 환경에서 초연히 지내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때론 자신이 속한 현실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들여다볼  있게 된다. 세상에는 속해 있지만 사회에는 속하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삶은 두려움과 마주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이 어찌 보면 자신을 알아가고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다.

   

눈에 초점을 잃고 사색에 잠긴 택건의 눈앞에 희미하게 작고 하얀 손바닥이 스치듯 지나갔다.

고개를 들었다. 희미했던 시야가 점점 초점을 찾아 선명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바라본 곳에는 노을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택건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what a surprise! 택건 브라더!" (이런 일이!)

"! 안나야, 네가 여기 웬일로?"

"그건 제가  말인데요 브라더"

" 학교가 시티에 있어서 왔다가"

" 그렇구나. 언제부터 여기 앉아 있었어요?"

 

택건은 읽던 책을 손에서 놓고 손목시계를 드려다 봤.

 

"...  30분쯤 지난  같은데"

"~ 브라더  보고 있었어요? 무슨 책인데요? [월든]?!"

 

안나는 택건 옆에 놓인 책을 들어 신기한  훑어본다. 택건은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앉아있다. 안나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눈도 붉게 충혈된 모습이다.

 

"안나  울었니?"

"!? 아뇨 울긴요, 아까 바람에 날린 먼지가 눈에 들어가서..."

먼지? 여기 무슨 먼지가 있냐? 한국에 비하면 여긴 청정 지역이지,

 

택건의 말에 안나는 구부린 검지 손가락을 눈가로 옮겨 눈물자국을 지우려 했.


"자 여기!”

"~ 브라더 손수건도 들고 다녀요? 고마워요"


그때 택건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손수건을 보고는 잠시 시선을 옮겨 택건은 한번 쳐다보고는 손수건을 집어 들어 눈가를 닦았다.


"근데  책은 무슨 내용이에요?"

"...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남자의 전기라고나 할까?"

" 남자 브라더 아녜요? 큭큭큭"

"?! 하하하"

"햇살 좋은 날 한적한데 앉아서 책이나 읽고 있는 모습이 브라더가 말하는 주인공이랑 별반 다른  없는  같은데.. 큭큭큭" 

그런가? 하하하”

 

택건은 을 읽으며 밀려드는 공감은 방금 안나가 했던 말과 같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 책을 예전에 읽었더라면 이런 공감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리에는 핸드폰을 들어 화상 통화를 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과 가족들에게 이곳의 분위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랑하는 이들과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이곳엔   있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마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처럼...


택건이 바라본 안나의  뒤로 멀리 노을빛을 받은 오페라 하우스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안나가 바라본 택건의 뒤에는 우뚝 솟은 하버브리지가 노을빛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둘은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등지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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