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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25. 2024

기시감

데모도 ep17

[택건 형님 굿모닝! ^^ 뭐 하십니까?]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가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택건은 침대 위에 그대로 엎드린 채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더듬거렸다. 얼굴 앞으로 가져온 뒤에서야 힘겹게 눈꺼풀을 올리고 []이라는 가장 간단한 단어로 답장을 날리고 다시 눈꺼풀과 핸드폰을 덮어 버렸다. 이건 분명 답장하기 귀찮다는 의사 표현이다.


[자는데 어떻게 답장을 합니까? 하하]

 

"아놔! 뭐야 이건 아침부터  말장난이야?"

 

[일요일 아침부터  이러니 나한테?  정말 게이 아냐?]

 

택건은 아침부터 남자랑 이런 류의 말장난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귀찮고 짜증 났다. 만약 가인이 ‘한가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하필 택건의 이상형이 한가인이었다. 매일 아침 한가인에게 모닝 문자를 받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입가에 침을 흘리며 침대 위에서 누워 한가인을 상상해 본다. 얼굴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 구글로 한가인을 검색했다. 상상은 이제 바로 현실에 바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제 사람들은 상상하길 귀찮아한다. 아쉽지만 한가인은 시집을 갔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는 연예인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에이 설마요? 저도 여자 좋아합니다 하하하]


  실없는 답장이 날아든다. 한가인의 사진을 보다가 가인의 카톡 프사를 보니 잠이  달아났. 택건도 여자를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여자랑 주말에 데이트도 하며 나름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음양의 조화가 깨진 생활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택건은 푸념 섞인 한숨을 내쉬며 입맛을 다셨다. 여자 친구가 없던 시기에도 주말이면 소개팅을 하거나 여기저기 동호회를 찾아다니며 여자들이 있는 무리 속에 섞여 있었. 하지만 지금 여기 호주에서의 삶은 일과 휴식, 정확히는 잠이다. 먹고 자고 일하는  전부인 일상이 되었다. 호주의 생활이 단조로울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아는 사람도 없고 여기서는 어떻게 사교 관계를 넓혀야 할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친구만 믿고  낯선 땅에 친구는 심해 잠수부가 되어 나타나질 않는다. 수호가 핵잠수함급 잠수 능력을 보유했을 줄은 한국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한국에서 보아왔던 그의 모습과 이곳 호주에서의 그의 모습의 괴리가 여전히 택건을 혼란스럽게 하 있었다. 어떤 모습이 그의 본모습인지  수가 없다. 알아보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으니  길도 없다.

 

[오늘   없으시죠?]

 

  끊이지 않고 간헐적으로 날아드는 문자메시지에 잠을  수도 다른 무언가를  수도 없다. 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이러니?  들이지 말고 본론을 얘기해라!"

"큭큭큭 죄송해요 형님 같이 교회 가시 자고요"

"교회?"

" 제가 다니는 한인 교회요"

"?"

"교회 나가셔서 사람도  만나고 하시면 좋죠"

"교회 별론데..."

"우리 교회 이쁜 처자들 많습니데이"

"그래?  신데?"

 

그렇게 택건은 마음에도 없던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아니 없던 마음이 생긴 것이 맞다. 가인의 말대로 주말에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 인간은 홀로 살아갈  없는 존재 아니던가. 좋든 싫든 섞여서 살아야 한다. 도움까진 아니라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택건은 욕실로 가서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했. 가인의 이쁜 처자 얘기가 적잖이 신경 쓰이는지 옷장에 걸려있는   없는 옷을 놓고 고민을 했. 한국에 두고   많던 옷들이 아쉽다.

 

 외출 준비를 끝내고 일층 거실로 내려왔다. 데니얼의 귀요미  딸인 한나와 두나가 아침 일찍부터 TV앞에 앉아 만화를 시청 중이다.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 한나와 아직 말도 제대로  하는 동생 두나가 TV 속으로 빨려 들어갈 기세이다. 택건은 둘을 번쩍 들어 올려 TV에서 멀리 떨어뜨려 앉혔다.

 

"얘들아!  나빠진다. 이리 좀 떨어져서 보렴"

 

데니얼과 그의 아내 주말이면 늦잠에 빠져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주중에 맞벌이와 애들 등하교와 육아로 시달린 피로를 오늘 하루  풀어야만 한다. 호주는 아이들 등하교를 부모들이 직접 픽업해야 하기에 여러모로 애들 키우기가 피곤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호주의 보육정책에는 부모와 어른들의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게 당연하긴 하지만  희생을 법적으로 강제화하고  하고에 따라 사회의 인식은 달라진다. 물론 법적 강제성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게 가능하려면 그만큼 부모들의 각종 현실적인 부담을 경감해 주어야 한다. 호주 도로 곳곳에는 등하교 시간 아동보호구간(School Zone) 설정되어 있어 40km 이상 주행할  없다. 법규 위반  엄청난 과태료와 벌점이 부과되기에 아무도 감히 어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때문에 등하교 시간 많은 이들이 극심한 교통체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많은 이들의 인내와 배려가 아이의 생명을 하나라도  지킬  있다. 이건 자본주의 경제학적 논리로 보자면 다수의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손실이다. 때론 손해를 감수해야만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

 

한나야, 두나야  안 고파?”

“I’m hungry” ( 배고파)

“Me too” (나도)

 

한나와 두나 TV 시선을 고정한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그 사이 두나는 또다시 TV 바로 앞으로 조금씩 기어가고 있었다. 택건은 부엌에서 식빵을 찾아 토스트를 만들어 우유와 함께  앞에 가져다준다. 둘은 토스트를 오물거리며 다시 만화 삼매경에 빠져든다.


"빵빵!"


집 앞에 차가 도착했다. 나는 가인에게 줄 토스트와 내 것을 들고 집을 나섰다.

 

"자!"

"아이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안 그래도 교회 가는 길에 뭐 좀 먹고 갈까 했는데..."


가인은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었다. 택건이 건넨 따끈한 토스트를 우걱우걱 몇 입 씹지도 않고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참, 택건 형님, 목수 일은 이제 우찌 되는 겁니까?"

"~ 나도 몰라! 같이 일하던 형이 사고 때문에 잠시 쉬고 있어, 사장이 연락 준다는데 아직…"

"형님도 그만둬야 되지 않겠어요? 그거 어디 위험해서 일하겠어요? 형님도 지붕에서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고 우리 같이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몸뚱이가 전 재산인데..."

"! 불길한 소리  그만해라 말이 씨가 된다"

... 네네

"근데  교회 다녔었어?"

" 한국에 있을 때부터 계속 "

"  안 다닌 것처럼 생겼는데 의외네. 생긴  조폭인데 하는 행동은   판이란 말이야"

"하하하, 에이~  이러십니까 행님!  이래 봬도 신학대 나온 사람이에요. 선교사가 꿈인 사람입니다"

"! 선교사? 니가? 아서라! 믿던 신도들도  도망갈라

 

 가인은 한국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호주에  목적도 처음엔 선교였다. 예전에는 호주에서 선교나 포교활동으로 주어지는 비자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호주에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난 것도  이유가 한몫을 했다. 하지만 종교를 악용한 비자 취득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회를 가장 많이 활용한 이슬람교는 그들의 경전  말처럼 자손을 많이 낳아 포교하라는 말을 신봉하며 콘돔 회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피임 없는 다산(多産:대량 출산)으로 기독교 국가인 호주를 점차 이슬람 국가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이슬람 민족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포교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그러고 보면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동성애자들의 낙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이제는 기독교 국가라고 보기 어려울  같았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만들어가는 이곳은  하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국가가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호주 정부가 이민 정책을 전환했다. 지금은 포교활동으로 인한 비자가 제한되어 종교비자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가인 또한  꿈을 접게 되었다.


"형님 우리가  늦었네요 어서 들어가시죠"


교회 예배당 안은 이미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다. 예배당  단상 위에는 청춘 남녀가 섞인 찬양단이 기타와 건반 그리고 드럼을 치며 찬양 속에 심취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찬양단 가운데에  눈을 감고 양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움켜쥔  노래를 부르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말아 올린 말총머리가 리듬을 타고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발목 위까지 올라간 청바지와 하얀  무늬의 브이넥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마치 화사한 봄날 대학 캠퍼스의 새내기 여대생을 연상케 했다. 하얗고 앳된 얼굴에서는   없는 자신감과 기쁨 같은 것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흔히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찬양 속에서 성령님이 임하신 듯한 모양이다. 택건은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

 

그녀의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넋을 놓고 쳐다보며 걷다가 예배당 바닥에 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발이 걸려 넘어졌다. 육중한 무언가가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택건에게로 옮겨 놓았다. 그때 택건과 그녀가 눈이 마주쳤다.  장면 그녀도 목격했다. 그녀는 입가에 살짝 웃음을 머금고는 다시 시선을 청중에게로 돌려 찬양에 집중했다.


"형님! 괜찮으세요?"

"! 괜… 괜찮아"


이럴  아픔보다는 창피함이 더하다. 택건과 가인은 서둘러 사람들의 대오  빈자리로 숨어 들어갔다. 가인은 스크린에 비친 가사를 보며 찬양을 따라 불렀. 택건은 입을 다문  가만히 서서 단상 위에 그녀의 공연을 바라봤다.


어디서 봤더라…?”

 

그녀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가끔씩 낯선 사람에게서   없는 익숙함을 느낄 때가 있다. 사람들을 그것을 기시감(데자뷔 : déjá vu)라고들 말한다. 처음  사람에게서 느끼는 기시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시간과 장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만 존재하는 상태가   없는 관심을 불러일으켰.  느낌은  과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곳에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서 생긴 느낌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느 과학책자에서 보았다. 호주에 온 이후 하릴없는 기나긴 밤을 견뎌보려 책을 찾았다. 한국에선 수면제였던 책이 여기서 각성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두 존재하고 있다고…  과거와 미래는 모두 동시에 존재하지만 의식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은 과거와 현재만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미래에 겪을 일과 인연은 무의식이 기억하고 그건 데자뷔라는 설명할  없는 느낌 같은 느낌으로만 다가오는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택건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걸까?

 

단상 위의 그녀와 간헐적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모든 사람들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단상에 선 그녀가 택건을 더욱 의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이 좀 전의 돌발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히 마주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그녀가 무대 위 시선처리를 그렇게 하는 습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그녀는 그를 바라봤고 그도 그녀를 바라봤다.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다.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둘만이 느끼는 것이었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택건은 아주 묘한 감정이 피어났다.  기분이 이상하지만 싫지 않았다.

 

마치 서로는 시선이 마주치길 갈망하면서 막상 시선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는 듯했다. 시선을 통해 들어온 빛이 자신의 마음속을 훤히 밝혀 들여다볼 것만 같았다. 마주치는 시선이 어색하지만  묘한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다. 우연을 가장한 시선의 마주침이 늘어날수록 우연은 필연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예감을 가져다준다.

 

서로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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