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16
"반갑습니다. 앤디입니다. 택건 형님이죠? 말씀 많이 들었어요"
오늘 데모도가 한 명 새로 왔다. 검은색 날렵한 선글라스에 육중한 체격 그리고 전체적으로 짧은 스포츠머리에 이마에서 정수리를 가로질러 뒤통수까지 길게 이어진 말갈기처럼 솟은 머리가 스트리트 파이터의 장기에프를 꼭 닮았다. 키가 좀 땅딸한 것이 어찌 보면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생긴 외모와는 달리 말과 행동은 사뭇 나긋나긋하다. 그는 과거 써니와 함께 지붕 일을 오랫동안 했다. 그는 불행히도 지붕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인해 발목을 크게 다쳐 그 이후로는 지붕에 올라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하우스 가드닝(Gardening, 조경) 일을 하고 있다. 지붕보다는 안전한 흙바닥을 밟기로 했다.
"앤디! 오늘 와줘서 땡큐!"
"에이 별말씀을요. 그리고 제가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다행히 저도 요 며칠 일이 없던 터라"
“참! 발목은 좀 어때?"
“이제 다 나았어요.”
“그래 그럼 다시 지붕일 시작해야지 큭큭”
“하하하 형님! 이 저 이래 봬도 장애인이에요 하하”
"짜식! 농담이야, 그건 그렇고 오늘 컬러 본드 지붕 얹힐 거야, 피치가 길어서 세 명으론 안될 거 같아 너의 힘이 좀 필요하다. 넌 지붕엔 올라오지 말고, 그라운드에서 택건이랑 같이 지붕 시트를 재단해서 올려, 내가 문이랑 위에서 받아서 인스톨할게"
"알겠습니다. 오늘 힘 좀 써야겠네요 하하"
컬러 본드(함석 패널) 지붕을 올리는 날이었다. 지붕의 가장자리 쪽 피치가 짧은 곳을 덮는 것은 셋이서도 가능했지만 집이 워낙 크다 보니 가운데 부분은 꼭대기에서 처마까지 8~9m가 넘었다. 그렇게 긴 패널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 인스톨하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그 긴 패널이 구부러지면 낭패다.
"써니 형님! 근데 오늘 바람이 좀 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뭐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은데 조심해서 해야지, 요 며칠 계속 비 오고 날이 안 좋아서 일을 계속 못했어. 그리고 일기예보에 내일부터 또 계속 비라서 오늘 지붕 다 덮어야 해"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만약 갑자기 강한 돌개바람이라도 불거나 하면 지붕패널과 함께 하늘로 끌려올라갔다가 자유낙하를 경험할 수 있다. 일이 시작되고 지붕 프레임 위에서 써니와 문이 줄자로 측정한 패널 사이즈로 불러주고 앤디와 택건이 바닥 잔디밭에서 컬러 본드를 재단했다. 앤디는 지붕 위에서 불러주는 길이를 컬러본드 양쪽에 표시하고 대각선으로 먹줄을 튕겼고 니블러(nibbler : 금속판의 일부를 긁어내어 모양을 낼 때에 사용하는 공구)를 이용해 먹줄 선을 따라 절삭해 나갔다. ‘뚜두두두두' 하는 금속이 절삭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판이 잘려나갔다.
"자! 택근형님! 어떻게 하시는지 알겠죠? 한 번 해보세요"
"아... 네 그럴까요 "
택건은 앤디가 건넨 니블러를 손에 들고 철판을 잘라나간다. 니블러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상당했다. 손과 팔에 힘을 주지 않으면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를 정도로 강한 반동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철판을 재단하다 보니 팔이 얼얼하다. 진동이 주는 피로도가 이렇게 큰 것인지 여태껏 알지 못했다.
"야! 빨리 올려 뜨거워진다!"
써니가 지붕 위에서 소리쳤다. 아침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대지를 태울 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전날 밤에 내린 비 때문에 젖어있던 땅에서 보이지 않는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태양의 열기와 밑에서 올라오는 더운 수증기는 한국의 찜통 여름과 호주의 따가운 여름을 섞어놓은 형국이었다.
호주의 여름은 태양과의 전쟁이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력한 태양이다. 낮에는 선글라스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태양빛이 강렬했다. 그래서 바깥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엔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었다. 팔토시와 창이 넓은 모자도 필수이다. 강력한 자외선에 눈과 피부가 상하기 십상이다. 호주 백인들의 피부가 엉망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곳에 백인들 피부암 발병률이 높은 건 이 강렬한 태양광과 무관하지 않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볕은 철판 지붕을 금세 고기 불판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신발 밑창이 녹아내릴 정도이다.
"써니 형님~ 지금 패널 올립니다!"
“Ok~ 빨리 올려!”
앤디와 택건은 앞 뒤에 서서 기다란 컬러 본드 패널을 들어 올렸다. 그 길이가 족히 7m는 되어 보였다. 길이 때문에 손으로 받치지 못하는 가운데 부분이 암소의 젖통처럼 축 늘어졌다. 그 무게가 만만치가 않다. 앤디가 컬러 본드를 머리 위에 얹고 지붕 처마 앞에 기대어 세워둔 사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택건은 잔디밭 밑에서 패널을 힘을 주어 밀어 올렸다. 써니와 문이 앤디가 올린 컬러 본드를 이어받아 지붕 끝으로 끌어올렸다. 네 명이 호흡을 맞춰 그 기다란 패널을 하나씩 덮어가기 시작했다. 택건의 온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빨리빨리! 빨리 올려 너무 뜨겁다"
"형님! 지금 바람이 좀 부는데 괜찮겠어요?"
"시간 없어 그냥 올려!"
이번엔 8m가 넘는 길이였다. 지붕의 가장 긴 부분이었다. 컬러 본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앤디가 다시 패널을 잡고 사다리를 오른다. 가운데서 써니가 받아서 문에게 전달했다. 문은 패널 끝을 잡고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다. 패널이 바람에 심하게 휘어지더니 뒤집어졌다. 다른 세 명이 강한 바람에 잡고 있던 패널을 놓쳤다. 패널 끝을 잡고 꼭대기로 올라가던 문은 바람에 펄럭이는 컬러 본드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문은 패널과 함께 5m 정도 공중으로 부양했다. 문이 패널에서 손을 뗐을 땐 이미 지붕을 벗어나 있었고 그는 10m를 자유 낙하해서 하우스 앞 잔디밭에 떨어졌다.
“쿵!”
"아아아악!"
"문~~ 괜찮아?"
"문형님!!"
"빨리 구급차 불러!"
그날 이후 진행하던 지붕공사는 중단되었다. 문은 골반 뼈가 부서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잔디밭에 떨어져 그 충격을 다소 완화할 수 있었다. 만약 콘크리트나 시멘트 바닥이었다면 그의 골반은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럼 아마 평생 불구가 되었을지도. 문은 8시간에 걸친 골반 접합 수술을 받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흑흑흑"
"죄송합니다. 제수씨"
사고 소식을 듣고 온 문의 아내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문을 바라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써니는 죄송하다는 말만 건네고는 다른 할 말을 잃은 채 그녀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서 있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쌍둥이 두 딸이 막대 사탕을 하나씩 손에 들고 빨고 있었다.
두 아이는 맑은 눈망울로 울고 있는 엄마와 고개 숙인 써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한 아이가 엄마를 울린 게 써니 때문인 걸 알았는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써니를 허벅지를 ‘뚝’하고 쳤다. 그걸 본 다른 쌍둥이 아이가 똑같이 따라 했다.
보험사에서는 지붕공사를 할 때에 추락 방지를 위해 지켜야 할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 것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은 써니를 위해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자신의 부주의로 안전장치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 안전장치는 애초에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써니는 법적인 책임을 피해 갈 수 있었다. 문은 자신이 당한 사고에 억울할 만도 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써니에게 갈 피해를 줄여주려 애썼다.
“봉빌더가 연락 두절이야”
“네!?”
“이 자식 여러 군데 사고를 쳤더라고”
나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문의 취업 스폰 비자(457)를 대신 지원해 주던 봉 빌더의 회사가 파산해 버렸다. 봉 빌더는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에 건축 공사를 벌여놓고 공사계약금만 가지고 잠적해 버렸다. 거기에 돈이 물린 수많은 한인 공사 계약자들이 소송을 걸면서 범행이 수면으로 드러났다. 써니도 그와 함께 진행하던 하우스 데크 공사의 잔여 공사비를 결국 받지 못했다.
들리는 소문에 봉빌더는 시드니를 벗어나 멀리 퍼스(Perth)로 도망갔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호주는 주경계를 넘어가면 다른 법이 적용되어 다른 주에서 파산을 했더라도 또다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악용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기를 치는 한인들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공소시효가 지나면 다시 돌아와 새롭게 다른 명의로 법인을 만들고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그래서 오죽하면 호주에서는 같은 한인을 믿지 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였다. 같은 동포라는 믿음의 고리가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친다.
문은 그 사고로 인해 다시 목수일을 하기 힘들어졌다. 접합 수술을 끝났지만 수술 중에 결국 미세한 신경 하나를 연결하지 못해 그 후유증으로 평생 신경약을 먹어야 했다. 재수술을 생각했지만 그건 개인이 치료비를 일부 부담해야 했다. 의료보험(Medicare)이 없는 그에겐 그 비용이 너무 큰 부담이었다.
게다가 기대했던 스폰 비자로 영주권을 취득하려던 꿈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수술비와 치료비 그리고 일을 못하는 동안의 급료는 보험사에서 지급되었지만 그 외에 써니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위로의 말과 소정의 위로금이 전부였다.
써니와 문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인생이 한순간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인간이면 누구나 계획하고 노력하며 원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한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도… 택건은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기로 했다. 가족의 내일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던 문의 내일은 그가 원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택건은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제가 아니었음에 감사합니다’
택건은 그날 자신이 아닌 문이 지붕의 제일 꼭대기에서 패널을 옮긴 덕분에 자신이 그 불운을 피해 갈 수 있었음에 속으로 감사했다.
내일을 위해 사는 자는 오늘을 위해 사는 자보다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