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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01. 2019

필리핀 예배당에서 내가 깨달은 것

뷰티 인사이드 앤 뷰티 아웃사이드

   학교에서 알게 된 필리핀 친구들이 있다.


6명이 떼로 몰려다닌 여성 패거리들이다. 처음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당당함과 밝은 모습이 있다. 호주 오기 전 3개월가량을 필리핀 세부(영어공부 핑계로?!)에서 지내본 나는 그나마 그들의 성향을 조금 알고 있다.


  이렇게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다. 난 옆에 앉은 필리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다정하게 받아준다.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서는 "안녕" "감사합니다"를 남발하며 자기네들끼리 웃음꽃을 피운다.


  학교가 비자를 위한 전문학교다 보니 출석과 과제를 위해 학교를 나오는 학생이 많다. (물론 회계, 영어회화 등 자격증 및 학위 취득을 위한 코스도 있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학교가 붐빈다. 주중에는 생업(일)에 종사하고 주말을 이용해 학교에 나오는 것이다. 같은 반 학생끼리도 같이 수업에 참여하고 공통 관심사를 나누는 등의 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친해질 계기가 많이 없다.(다들 선생이 내어주는 과제를 하느라 정신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삭막하게 지낼 필요가 있을까? 삭막함이 싫어 여기 온 것 아니었나? 수업시간에 서슴없이 짧은 영어로 질문을 남발한다. 처음엔 좀 이상한 듯 보던 시선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온 학교 서로 웃으면서 과제도 하고 교제도 하면 좋지 않은가? 조금씩 수업시간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필리핀 친구들은 인해전술로 수업시간을 타갈로그(필리핀 공용어)로 장악했다. 조용했던 교실은 시끌벅적한 시장터로 변해갔다.


  그들은 크리스천(기독교인)이며 찬양단이라고 한다. 다들 각자 악기 하나씩 다룰 줄 안다며 여기서 성경을 가르치고 봉사하러 왔다고 한다. 일요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학교로 왔다고 한다. 나도 교회 다닌다고 하니 나를 둘러싸고 호기심을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역시 종교는 위대하다. 공통 관심사가 생기니 금방 친해진다. 자신들의 교회 명함 같은 것을 보여주며 다음에 시간 되면 꼭 놀러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사진도 찍고 즐거운 수업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교회는 Mt. Druitt Station 쪽에 위치해 있다. 내가 사는 곳(Lidcombe)과는 꽤 멀다. 트레인을 타고 40분가량을 가야 한다. 그곳은 여태 가봤던 다른 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역 주변에서 동남아 계통(필리핀)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간판과 거리의 느낌이 다시 세부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필리핀 사람과 사모아 쪽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시드니에는 지역마다 각 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다.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이 단연 1위로 가장 많은 것 같다. 가진 돈만큼 시드니의 알짜배기 땅은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시드니 중심에서 외곽 쪽으로 밀려나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번잡함이 싫어 외곽으로 나간 호주인들도 많다. 하지만 한 번 나가면 다신 돌아올 수 없다. 팔 때의 가격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시드니 부동산의 거품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조그만 2층 건물에 교회가 들어서 있다. 1층은 식당이고 2층이 예배당이다. 다들 예배준비에 분주해 보인다. 특이한 건 다들 유니폼 같은 하얀 드레스와 슈트를 차려입고 예배에 임한다. 의자도 붉은 천으로 덮여있고 뭔지 모를 경건함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게 된다.

찬양 중인 원더걸스

 바닥까지 내려갔던 묵직한 경건함은 음악과 찬양이 시작되고 조금씩 올라가더니 이내 사라져 버리고 다들 광란?! 의 찬양이 이어져 갔다. 필리핀 사람들의 그 특유의 성향을 알고 있다. 그들을 두 단어로 표현하라면 흥(興)과 희(熹)가 아닐까? 흥겹고 밝고 기쁘다.  


  필리핀에 있을 때도 느꼈다. 그들은 어디서든 음악이 흘러나오면 주체할 수 없는 흥도 같이 흘러나와 어느새 서로 어울려 가무(歌舞)를 즐긴다. 내가 만났던 필리핀 사람들의 얼굴에선 가난함을 엿볼 수 없었다. 가진 게 없다며 그늘이 드리운 한국 사람의 표정과는 달리 가진 게 없어 더 행복해 보이는 얼굴의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의 흥에 조금씩 융화되기 시작했다. 벽에 비친 빔프로젝터의 영어자막을 보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분위기가 익숙해지며 리듬과 분위기에 휩싸이며 눈을 감고 찬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익숙지 않은 영어 가사 때문에 감기 무섭게 떠야 했던 눈은 계속 가사를 뇌 속으로 퍼 나르며 바쁘게 번역까지 하느라 한국 교회에서 찬양할 때 보다 2~3배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30명 남짓한 인원이 조그만 예배당에 모여 신의 은총을 바라며 열심히 찬양과 기도를 드린다. 한 주간의 힘겨움도 그 속에 묻어 날려 버린다. 그들의 흥과 밝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신의 보살핌 속에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가식 없이 밝은 모습은 가끔 나로 하여금 없던 죄책감도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필리핀 뷔페

   예배 후 정갈하게 준비된 뷔페식 필리핀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다시 세부로 돌아간 느낌이다. 맛있다. 국만 빼고(너무 짜다), 가져다준 성의에 건더기만 건져먹어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식사 후 크리스마스 Greeting 사진 촬영을 한단다. 아직 11월도 안됐는데 벌써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 장식들이 가득하다. 사진을 찍어 교회 본사?! 본부?로 보내야 된단다. 찍고 또 찍고 수도 없이 찍어댄다. 촬영을 위해 짓던 나의 해맑은 미소는 조금씩 빛을 잃어갈 때도 그들은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뭐가 저리 좋을까?' 한국 같았으면 슬슬 짜증이 날 타이밍이다. 때 이른 호주의 두 번째 써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크리스마스 Greeting 촬영

   예배가 끝이 나고 다 같이 학교로 향했다. 신의 은혜를 너무 받았는지 다들 트레인에서 곯아떨어졌다. 헤드레스트가 없는 트레인의 의자에 목이 뒤로 꺾인 채로 쪽잠을 잤더니 뻐근하다.


"필리핀에서 내가 본 친구들은 다들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들 힘겹게 살고 있던데 너희들은 여기서 보수도 없이 성경과 악기를 가르치고 타인에게  봉사하며 살면 미래가 걱정되지 않니?" (분명 영어로 말했음... 다시 상기하려니 기억이 나질 않는다)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like them to do to you"  -Matt 7:12 -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마태복음 7:12)


   돌아오는 트레인에서 옆에 앉은 필리핀 친구와 난이도 높은 영어회화에 돌입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의 물음에 답했다. 그러며 나의 핸드폰 빌려 구글로 성경구절을 찾아준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로 가려고 선지자 인척 하지만 사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길이라 믿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며 살기에 바쁘다. 타인은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진정으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위한 헌신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세상이다. 뭐 요즘은 개도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우리 집 개도 눈치만 살피고 자기 손해 보는 짓은 안 한다. 이게 갠 지 사람인지 가끔 구분이 안된다)

   

  먹먹하다. 어린 그들에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직 너희들이 어려서 세상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야 현실의 벽에 이리저리 부딪치는 것 자체가 희생이라고 생각할 날이 올 거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과거 내가 사회 초년생 후배들한테 했던 얘기이다)


   "어린 자는 무릇 어른에게 지혜를 배우지만 어른은 어린 자에게서 자신의 속됨을 깨닫는다."

                                                                                                                        - 글 짓는 목수 -


   그들은 한국 사람들은 너무 예쁘고 잘생겼다며 연예인 이름을 줄줄 둘러대며 나에게 한국 예찬론 강의가 이어진다. (나보다 더 많이 안다.) 시티의 거리에 걸려있는 화장품인지 샴푸인지 모를 대형 뷰티 광보판에 있는 섹시한 여자 광고 모델을 배경으로 똑같은 포즈를 취해 보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을 바라며 보며 얘기한다.


 "Beauty inside is more important than Beauty outside"


  자신들의 마음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타인(한국인)의 외모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는 모습이 나로선 아직까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내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은 공존하지만 합쳐지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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