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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30. 2019

마라토너스 하이

매일 이기는 삶

"마라토너스 하이(Marathoner's high)"

: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면 평안함이 찾아오는 시기


  난 달리기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과 과거 무리한 등산으로 상태가 좋지 않은 무릎 때문에 마라톤을 즐기진 않는다. (달리기만 하면 과거 군대 시절 구토가 나올 때까지 뛰게 했던 선임병들의 구보 고문의 악몽이 떠오른다) 수영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 이 마라토너스 하이 아니 스윔워스 하이(Swimmer's high)를 경험한다. 사실 과거 이 고비가 괴로워 두려워 운동을 거른 적도 많다. 아마 많은 이들이 운동을 결심했다가 이 고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운동이란 결국 참아내는 인내력과의 싸움인 것이다. 




  이른 새벽 꿀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수영장에 도착하면 나만의 훈련 루틴이 있다. 우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어준다. 차가운 야외 수영장 물에 뛰어들면 정신이 번쩍 든다. 특히 겨울철에는 수영장에 물에 몸을 담그는 것부터가 고문이다. 천천히 100m 평형으로 몸을 푼다. 본격적인 운동으로 돌입한다. 방수시계의 타임워치를 세팅하고 500m 자유형 랩타임을 측정한다. 이 때는 500m (편도 50m 수영장 5바퀴) 쉬지 않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수영한다. 

 

  보통 이때 마라토너스 하이를 경험한다. 첫 바퀴(100m)까지는 무난하게 돌파한다. 자세나 속도가 최상을 유지한다. 두 번째 바퀴(200m)가 되면 물과 근육의 저항이 커지는 것을 느끼고 호흡이 빨라 진다. 세 바퀴(300m) 째가 되면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주요 부위의 통증이 최대로 올라오고 폐가 터질 거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참기 힘든 통증과 호흡 곤란 속에 수영 자세가 흐트러지고 속도가 떨어진다. 보통 스트로크 두 세트에 호흡 한 번을 유지해야 하지만 이쯤 되면 호흡곤란으로 한 세트에 한 번씩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퀵턴(플립턴)을 해야 하는데 호흡 곤란으로 사이드 턴(오픈 턴)을 하는 굴욕도 저지른다. '그냥 멈추고 잠깐 쉬었다 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이때를 버티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100m가량의 1~2분 사이가 가장 고통스럽다. 이 구간을 견뎌내고 4바퀴(400m)째가 되면 평안함이 찾아온다. 호흡이 조금씩 안정을 찾고 팔과 다리의 통증은 일정하게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느껴진다. '오늘은 뭘 쓰지?' 이때 머릿속으로 새로운 영감이나 글감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바퀴째(500m)도 이 패턴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러면 나의 임계점(臨界點)은 올라가지 않는다. 마지막 50m를 남겨두고는 스퍼트(spurt)를 한다. 팔과 다리에 남은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 속도를 올린다. 이때 재수가 없으면 발에 쥐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씩 단축시키는 것이다.  랩타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핀(오리발)과 패들을 끼고 자유형 500m(5바퀴) 한 세트를 더 돈다. 이 때는 한결 편안하게 수영할 수 있다. 패들과 핀으로 팔과 다리에 저항을 올려 근력을 강화시킨다. 1km를 자유형을 다시 1km를 킥판 발차기와 접영, 배영 등 기타 영법들을 연습한다. 


  처음 수영을 시작했을 땐 마라토너스 하이가 50m도 가지 못해 찾아왔었다. 25m 실내 수영장 한 바퀴 도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리에 쥐가 나고 물도 먹고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일에는 마라토너스 하이가 있다.


  운동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운동뿐만 아니라 일과 관계에서도 이 마라토너스 하이를 경험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면 항상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이다. 아는 게 없으면 손발이 고생인 것처럼 그 고생을 겪어내고 나면 별 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온통 그 고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운 일을 많이 경험할수록 마라토너스 하이를 많이 겪게 되고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일이 단순하고 쉽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또 다른 마라토너스 하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보통 이 편안한 시기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대로 있으면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관계에서도 마라토너서 하이가 있다. 사람은 서로 같지 않기에 많은 충돌과 엇갈림이 있다.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 관계도 서로 부딪치는 갈등의 최고조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이 상황을 잘 넘겨야 한다. 이 상황을 넘기지 못하면 절교, 이혼, 원수 지간으로 변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지혜롭게 넘기거나 버텨내면 관계는 호전되거나 무감각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과거 처음엔 꼰대 상사의 갈굼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견뎌내고 나니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기고 이제는 웬만한 갈굼은 그냥 속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주변 다른 이들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인간은 본디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 아니던가 극한의 고통(마라토너스 하이)을 겪고 나면 그 이하의 자극은 어렵지 않게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참고 견디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나중에 자신도 그렇게 변해갈 가능성이 커진다. 뇌는 무의식 중에 그것을 견디면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 학교 선생들의 체벌, 상사의 욕설과 갈굼등이 당연하게 견디면 그것을 뇌는 합리화시켜 나중에 나의 행동에서 똑같이 발현된다. 악의 없는 관계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관계는 반전의 회복도 가능하다. 젊은 날 서로 산전수전을 겪은 부부가 노년에 좋아질 수 있는 건 힘든 마라토너스 하이를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젊은 시절부터 좋은 관계로 지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


  마라토너스 하이는 일종의 시련이 아닐까? 근육이 저항을 극복하는 운동을 통해 강화되는 것처럼 삶도 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고통)의 지속 반복을 통해 성장해 간다.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성장을 가져오고 현재의 안일함의 추구는 미래의 퇴보를 가져온다. 이른 새벽 일어나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글을 쓰며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은 지금 당장 나에게는 고통이지만 더 나은 미래를 가져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여명이 밝아온다.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이제 수영장으로 향한다. 또 마라토너스(수윔머스) 하이를 만나러...


 "좋은 습관은 비용은 현재에 치르며, 나쁜 습관의 비용은 미래의 치른다"

                                                                                -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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